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gazine WEAVE Oct 30. 2022

자연스러운 사랑

글. 늘윤

Photo by Yujin Seo on Unsplash


 시월의 바다는 참 예뻤다. 가족과 즉흥 부산 나들이를 간 날, 그 바다가 있었다. 부랴부랴 표를 끊고 무궁화호에 올랐을 때 하늘은 시리도록 맑고 쾌청했다. 주말 아침의 늦잠이 조금도 그립지 않은, 집을 나설 수밖에 없는 날씨였다(적어도 내게는. 아빠와 여동생은 잤다).


 점심이 되자 구름 없는 해는 더욱 빛났다. 어찌나 뜨겁고 눈부신지 남동생은 죽 버티다가 캡 모자를 샀다. 모자와 긴팔로 둘둘 무장했던 나는 소매를 걷어붙였다. 엄마도 내색은 안 했지만 약간 더운 것 같았다. 해운대역에서 해운대로 우리는 바닷내음을 동력 삼아 한낮을 걸었다. 빽빽이 이어진 상업지구와 보도블록. 인파 가득한 횡단보도에 콘크리트 계단까지 지나자 마침내 널따란 모래사장이 펼쳐졌다.


 사부작사부작. 때 탄 운동화가 설탕 같은 흰 모래 속에 파묻혔다. 걸어간 모래밭 끝엔 은하수가 있었다. 새벽이 담긴 짙푸른 물결. 파도를 따라 출렁이는 물비늘. 눈앞에 가득한 푸른빛은 바닷물보단 청명한 밤하늘 같았다. 나는 소금기둥처럼 멈춰서서 연신 감탄했다. 해안선에서 수평선까지 햇살 알갱이가 빼곡했다. 하얀 빛은 빈틈없이 수 놓여, 수면에서 자개 껍데기가 살랑이는 듯했다. 모래사장에 밀려온 파도 또한
머금고있던 깨끗한 광채를 방울방울 터트렸다. 해와 바다, 모래가 가득한 풍경 속에서 내 마음도 덩달아 환해져갔다.


 그날 바다는 핸드폰 앨범 속에서 여전히 잘 넘실대고 있다. 잠들기 전, 가슴이 헛헛할 때면 나는 시월을 불러온다. 눈부신 바다를 보고도 변함없이 허하다면 터치 한 번으로 다른 시공간을 찾는다. 애인과의 데이트를 반복하기도 하고, 가족, 고양이, 하늘, 맛집…. 침대에서 꼼짝 않고 전자화된 추억을 파고든다. 한참이고 갤러리를 맴돌다 보면 일상에 대한 이질감이 솟구친다. 시간을 박제하여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대단한 시대인지를. 그리고 박제를 갈라 작위를 쑤셔넣는 요즘이 얼마나 다난한 시대인지를.


 영상문화에는 이데올로기와 권력이 스며있다. 이미지가 ‘소비’될 때 사람들은 효용을 얻기도 하지만 주체와 객체 사이, 불균형한 욕망의 관객성을 은연중에 되풀이한다. 고급 액자에 이미지를 가두고 경제적 가치를 매기기도, 역으로 스스로가 이미지와 영상에 가둬져 통제되고 기록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까만 액정에 둘러싸인 우리는 좀처럼 휴식할 수 없다.


 『예술과 나날의 마음(문광훈, 2020)』에서 저자는 ‘자연에 대한 취향’을 말하며 제인 오스틴의 『맨스필드 파크』를 소개한다. - "여기에 휴식이 있네! 자연은 모든 근심을 가라앉혀주고, 마음을 황홀하게 만들지! 자연의 숭고함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세상의 악과 슬픔은 아마도 적어지겠지. 저런 풍경을 관조함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으로부터도 좀 벗어날 거야." - 맨스필드 파크』의 주인공인 패니는 자연의 풍경을 ‘관조(官租)’하는 습관이 삶의 악과 슬픔을 줄인다고 말한다. 저자는 패니가 '자연에 대한 취향'을 학습했기에 다른 인물과 다르게 허영심을 품지 않았고, 
진정으로 ‘바라보는 기쁨’을 가질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자연에 대한 취향'의 연장선에서, 저자는 도가 철학자인 장자를 불러온다. 장자는 제인 오스틴과 시대도 지역도 달리했으나 마찬가지로 ‘좌망(坐忘)’, 즉 관조를 말했다. 좌망이란 ‘손발이나 몸을 잊어버리고, 귀와 눈의 작용을 쉬게 하며, 몸을 떠나고 앎을 버려서, 크게 통하는 일과 같아지는 일’이다. 일을 멈춘 후 비로소 마음의 안정과 고요를 얻고, 그로 인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는 장자의 가르침은 자연과 관조를 잊은 현대인에게 큰 울림을 준다.


 오늘도 나는 자연을 보았다. 아주 가까운 자연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내가 눈 담은 건, 집 앞 골목의 저무는 하늘이었다. 파란 어스름 아래로 빨갛고 노란 노을빛이 칵테일처럼 과감히 번져 흐르고 있었다. 나는 지난 시월에 그랬듯 멈춰서서 사진을 찍었다. 질감, 명암, 양감만으로 순수하게 벅차오름을 주는 자연. 그리고 따라오는 내면의 성찰. 나는 아마 조용히, 관조의 장막을 둘러주는 자연을 평생 사랑할 것 같다.



이전 08화 떠 있는 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