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노을
우리는 발을 통해 세상 위에 서있는다. 내가 딛고 있는 ‘공간’은 다양하게 불리며 나의 많은 부분을 결정짓고는 한다. 그곳은 한 민족이 부대끼며 태어난 국가일 수도, 소중한 가족이 함께 지내는 거실일 수도 있겠다. 이 ‘공간’과 발을 맞닿은 채, 나의 정체성은 무언가에 의해 무서운 속도로 채워져 나간다. 나는 한국인이면서, 부모님의 아들이기에 지금의 삶이 구성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나’에 대해서 논하고자 할 때, 과연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제외하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집중이 필요할 때, 집을 떠나 도서관, 독서실 그리고 카페를 찾는다. 우리는 우리의 주변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나의 사유 속에는 공간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나는 사유가 서 있는 곳을 ‘광장’이라고 불러보고자 한다. 어디로든 갈 수 있으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광장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세상을 건축하기 시작한다. 광장에 건축된 각자의 세상은 너무나도 다양했다. 가족으로 가득 차기도 했고 사랑으로 꼼꼼히 채우기도 하였으며 권력, 이념, 성공에 지배되기도 하였다. 각자가 원하는 세상을 건축하지 못한 채로는, 그 사람의 삶이 시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끝내 본인이 원하는 세상을 찾지 못한 채, 끊임없이 광장을 방황하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각양각색으로 크고 웅장하게 지어진 건축물들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가족으로 이루어져 있던 울타리가 투병하던 혈육의 영정사진과 함께 송두리째 뽑히기도 한다. 사랑으로 가꾸어가던 정원이 이별의 슬픔과 함께 짓밟히기도 한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향해 좇아가곤 하지만, 이내 좌절하고 상실하기도 한다. 나의 광장을 아름답고 멋있고 뚜렷한 무언가로만 채워나가려는 욕심이, 나 자신을 불안정한 사북자리 위로 몰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너져 내린 광장은 곧 나의 삶을 붕괴시켰고, 나를 채우던 것들이 일순간의 공허함으로 바뀌는 것은 슬픔을 넘어선 감정이었다.
모든 것이 막막한 상태로 산책하며 문득 들었던 감정이 있다. 내가 이 길 위를 걸으며 조금은 행복해지고 위로받고 있다는 것을. 공원 벤치에 앉아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밤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나를 채워주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지금까지 나의 삶을 너무 거창하고 뻔한 것에서만 찾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어서, 생각보다 꽤나 많은 사람이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는 것이 예뻐서, 내가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서, 가끔은 내가 배우는 내용이 재밌어서 삶을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들의 광장에는 크고 웅장한 빌딩은 없을지라도, 고즈넉한 마을과 아늑한 모닥불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발자국을 어디로 옮기는가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뀐다. 당신이 걷는 곳이 ‘공간’이든 ‘광장’이든 흔하지만 소중한 가치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더 둘러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