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보
MBTI가 지금처럼 유행하기 훨씬 전이었던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처음 검사를 해본 것이 거의 10년 전 일이다. 이후 10년 동안 꾸준히 다시 검사를 해보면서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절대 바뀌지 않았던 하나의 타입은 N이었다. 이는 인식기능이 감각형(S)이냐, 직관형(N)이냐에 대한 것인데 S는 자신이 오감을 통해 받아들인 경험을 바탕으로 정보를 파악하고 상황에 적용한다. 그래서 S유형의 사람들은 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답을 내놓기를 선호한다. 반대로 N유형의 사람들은 경험보다는 상상과 직관에 의존하며 가능성을 중시하고 비유적인 묘사를 선호한다. N인 나는 이 차이점마저도 비유적인 이미지로 떠오른다. S의 경향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땅에 단단히 발붙이고 있고, N의 경향성이 강할수록 발이 땅 위로 점차 떠 올라 있지 않을까?
발이 땅 위에 떠 있을 것 같은 화가 하면 떠오르는 한 인물이 있다. 바로 스페인의 국민 화가라고 불리는 호안미로다. 호안미로 그림에서는 공중을 떠다니는 개체들이 자주 등장한다. 별과 새는 물론 사람들이나 여러 색깔의 색점, 괴생물체들도 자유롭게 캔버스 위를 유영한다.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을 때면 마치 화가가 만들어낸 자유로운 환상 속에 들어가있는 것만 같다. 놀랍게도 이러한 독창적인 그림 스타일은 호안미로가 본 환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야심 차게 열었던 전시가 실패로 돌아가고 수중에 가진 돈이 없어 극단적으로 몇 날 며칠을 굶게 되었을 때 그는 기아 상태에서 환시를 보았고 그 세계를 캔버스에 옮겼다. 그리고 곧 그 그림들은 세상을 매혹하게 된다. 이처럼 호안 미로의 그림 세계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 중심적인 뿌리를 두고 있지 않기에 “르네상스 후기의 회화 전통을 버리고 원근법, 중력, 부피가 주는 환영, 음영, 색에서 해방된 공간을 만들어냈”다고 평가받는다.
호안 미로가 흥미를 갖고 회화에 자주 등장시켰던 소재들은 몇 가지로 추려질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그는 ‘발’에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화가였다. 1962년 드니 슈발리에와의 인터뷰에서 호안 미로는 “발의 형태와 기능은 항상 흥미로웠다. 발이 인간을 땅에 연결시켜주지 않는가.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연결을 떼어놓는 것도 발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한다. 그의 그림 <Mano apresando un pájaro>를 살펴보자. ‘Mano’는 엄지발가락 끝을 의미하고 ‘apresando’는 잡다 ‘un pajaro’는 새라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이는 <새를 잡는 엄지발가락>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엄지발가락이 연장된 부분에 새의 얼굴이 있고 그 아래쪽으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새와 엄지발가락 끝부분이 다시 연결된다.
자유로이 하늘을 나는 존재인 새가 사람의 발에 잡혀있는 이 그림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발은 주로 땅에 맞닿아있는 신체 부위이므로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야 하는 새를 붙잡는 장애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화면 왼쪽에 제시된 발의 형상을 계속해서 들여다보니 그것이 날개의 형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새의 얼굴 아래쪽에 다시 연결된 엄지발가락의 끝부분을 새의 날개로 본다면 발이 가진 비상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그림으로도 읽을 수 있게 된다.
이번 학기에 문학, 미술사, 예술철학, 이론, 비평에 관한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 시간 동안은 너무 즐겁다가도 곧잘 두려움이 몰려온다. 내가 당장 실무에 적용될 수 있는 실용적인 기술을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인 걱정이 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하는 공부들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사회적으로 쉽게 ‘무용’하다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배우는 일이 근본적으로 재미있다. 어쩌면 나는 소위 ‘현실적’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공상적이거나 이상을 좇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호안 미로가 땅에 닿아있는 발에서 비상의 가능성을 발견했듯이, 반대로 나에겐 현실적인 문제들과 동떨어진 듯 보이는 인문학이 더 진정하고 깊은 의미의 리얼리티를 발견하는 창으로 역할 한다고 생각한다.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이 혹여 절망적일지라도 호안 미로의 그림에는 그 너머의 의미와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위대함이 있다. 그처럼 밤에서 새벽의 기운을, 겨울에서 봄의 기척을 예지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걱정이나 두려움 대신 희망을 간직한 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