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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현 Apr 09. 2022

‘저항의 순간’을 바라보며

토드 필립스, <조커>

 순수하기만 한 노력은 필패한다. 노력이 순수할 때,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뒤따르리란 믿음은 순진하고 어리석다. 당신은 조금 더 철저히 목적을 위해 움직였어야 했으며, 그것이 타인에 대한 걱정보다 우선되었어야 했다.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순수하게 노력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오판, 그것이 당신의 소중했던 삶을 앗아갔다.



Joker, 2019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 잠언 6:5


 당신의 안온한 삶이 무너졌을 때, 그것이 비록 누군가의 거짓으로 점철된 세계일지라도 나는 슬펐다. 당신의 삶이 무너짐으로 인해 당신의 세계는 순수를 잃어갈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저 스크린 속에 펼쳐진 세계의 버팀목이었다. 언젠가 읽었던 소설에서, 세계의 비밀을 알아챈 등장인물들이 소멸된 것처럼 당신의 각성은 곧 세계의 붕괴를 뜻했다.


 나는 저 스크린 너머 세상의 질서가 파괴될 것을 아파했다. 마차를 짊어진 말을 붙들고 흐느꼈던 니체처럼, 내가 미쳤다고 느꼈다. 저 너머의 세상에는 더 이상 서로 간의 신뢰가, 친절이, 사랑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이 당신에게 각성이 필요치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어쨌든 당신은 진실을 마주해야 했으니까.


 바닥을 쳐본 자만이 저항의 무게를 질 수 있다. 바닥을 치는 것이 두려워 순간순간마다 반항하며 삶의 가벼움만을 지고자 하는 자는 이상을 꿈꿀 자격이 없다. 불편함에 때때로 반항하며 후일을 도모하는 것은 도망과 다름없다. 근본적인 저항을 통해 바닥을 치는 서러움을 극복하는 경험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잠깐 동안 잃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현재의 삶과 부여된 운명에 저항하여 무언가를 반드시 취해야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또 다른 운명이라고 느낀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 운명에 타인은 개입할 수 없다.


 각성 이후 당신의 삶과 그 연쇄작용이 옳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잘못되었다고도 볼 수 없는 것이다. 당신 세계의 질서는 내가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리고 내가 관여할 영역도 아니다. 그것이 감독에 의해 정의되든, 관객의 카타르시스에 기여하였느냐의 척도로 결정되든지 관계없다. 나는 판단하지 않겠다. 그러나 당신이 진정 버틸 수 없었던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표면적으로는 세계의 진실일 것이다. 당신의 지독한 가난과 아픈 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당신의 삶은 태생부터 잘못되었다. 그리고 하필 당신이 아버지라고 여긴 이는 냉랭하고 무책임한, 평가적 시선으로 당신의 삶을 조소하며 조커의 탄생을 도왔다. 머레이에 대한 당신의 존경과 선망은 그의 태도로 인해 환영이 되었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어머니의 이야기는 수치스러운 거짓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이 버틸 수 없었던 전부일까. 아니다. 나는 당신이 선망했던 ‘두려움’이 각성을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머레이의 아들이라는 ‘위대한’ 이야기와 그 뒤에 목도한 진실은 두려운 존재가 될 뻔한 당신의 기대를 낭떠러지에 떨어지게 하였다. 기형도의 시처럼 당신의 희망은 질투였던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질투로 두려움을 선망할 수 없었던 당신은 두려움 그 자체가 되기로 했다.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던 당신은 이제 더 이상 사랑을 찾아 헤매지 않는다. 그리고 두려움이 된 당신은 타인에게 질투가 없는 희망이 되기도 했다. 세계의 질서를 전복하고 두려움의 울타리에 함께 서며 새 시대의 중심이 되겠다는 희망 말이다. 그것을 희망으로 부를 수 있을지는 다시 말하지만 내가 판단할 소관이 아니다.


 어쨌든 당신은 벗어났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을 되찾은 것일지 모른다. 내가 파헤치고자 한 ‘저항의 순간’은 체념으로 끝맺는다. 더 이상 당신을 동정하지 않겠노라는, 당신의 변신을 아파하지 않겠노라는 체념 말이다.



- 크리스토퍼 놀란, <다크 나이트>(2008)

- 토드 필립스, <조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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