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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Aug 25. 2022

딸에게 쓰는 편지 79; 너도심심한 게 싫어?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립니다.”    

 

이 말 때문에 잠시 온라인이 시끄러웠는데, 가끔 있는 구설수라고 봐야지. 요즘 말장난이 심하니, 이참에 또 한 번 놀아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을 테고. 올해 촌가 작년인가 어느 정치인이 ‘무운을 빕니다.’라고 하면서 놀린 경우도 있고 하잖아.     


‘심심한’ 논란이 심심치 않게 퍼져가는 걸 보다가 문득 “죄 없는 ‘심심한’이라는 말이 참 구박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사람들이 ‘심심하다’는 말을 좋아했다면, 설령 문맥에 맞지 않게 쓰였더라고 이렇게 들고 일어나지는 않았을 테니까.    

 

심심하다...

네이버에 보니 세 가지 다른 뜻이 있네?   

  

1.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2.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

3. 음식 맛이 조금 싱겁다.    

 

최근의 논란은 1과 2를 섞어서 시비가 된 것이고, 내가 문제를 삼고자 하는 것은 1번의 경우야. 대부분 이 뜻으로 심심하다는 말을 쓰고 있지만 나는 이 해석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어.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첫째. 심심함과 하는 일은 사실상 아무 관계가 없어. 일이 있는데 심심한 경우도 있고, 일이 없지만 심심하지 않은 사람도 많아. 그러니까 이 전제는 땡!

둘째. 심심함과 지루함은 전혀 다른 장르야. 우울함과 불쾌감이 다른 감정인 것처럼. 이것도 땡!

셋째. 재미가 없다는 건 어느 정도 맞다고 할 수도 있는데, 포인트가 좀 달라. ‘재미’의 뜻을 쾌(快)라고 보면 맞지만, 낙(樂)이라고 보면 틀려. 심심함은 ‘쾌’가 없는 게 아니라 넘어선 단계거든. 안빈낙도(安貧樂道)라고 하잖아?     


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보통 우리 인간의 감정을 세 가지로 나누면 ‘고(苦) 쾌(快) 사(捨)라고 한다고 해. 괴로움, 기쁨, 담담함이지.

이 세 감정은 정반합 변증법처럼 서로 순환해. 어떤 낯선 상황을 닥치면 먼저 괴로움이 오지. 그 다음 그걸 다루어가면서 기쁨이 솟아나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덤덤 담담해지는 과정을 거쳐.

    

이러한 익숙해짐, 덤덤 담담의 상태가 바로 심심함의 상태지.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갈림길을 맞이하는 거야. 이 심심함의 상태를 부정하면, 앞에서 정의된 것처럼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고 생각되고 다시 괴로움의 상태로 떨어지게 돼.


이 심심함을 긍정하고 즐길 수 있을 때 우리는 다시 새로운 국면, 더 높은 차원의 고통과 맞서게 되는 거지. 우리의 인생이란 이 고-쾌-사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     

큰 과정으로 봤을 깨 ‘어릴 때는 괴롭고, 커서는 즐겁고, 늙어서는 심심하다.’고나 할까?

다시 말하면 ‘몰라서 괴롭고, 알아서 즐겁고, 벗어나서 심심하다.’가 되겠지.     


자연스러운 성숙의 과정이지만, 문제는 우리 사회가 심심한 상태를,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과정을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거야. 그래서 심심함을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말로 악당취급을 하는 거지. 계속 스트레스 상태에 있도록 유도하는 거야. 그게 ‘쾌락’이나 ‘성공’ 자아실현‘ 등의 이름을 달고 있더라도 스트레스는 스트레스지.    

 

그러면서 심심함을 계속 폄하해. 심심함과 ‘무기력’ ‘무능’ ‘게으름’ 등을 연관시키지. 전혀 다른 말인데도 일부러 섞어 쓰면서 우리를 현혹해. 우리는 제대로 심심해 본 적이 없어. 세상이 우릴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거든. 끊임없이 자극하고 충동질하잖아. 뭐든 하라고.     


사랑하는 딸!

너도 심심한 게 싫어? 만약 그런 생각이 든다면 다시 한 번 너를 살펴봐. 정말 심심한 걸 싫어하는지. 또는 ‘심심한 건 나쁜 거’라는 선입관에 조종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시동을 걸기 전 자동차는 조용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지.

‘부릉!’ 시동을 걸면 엔진이 돌아가지만 역시 조용해져. 약간 RPM이 올라가 있긴 하지만 스트레스 상태는 아니야. 에어컨도 되고, AV장치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어. 쾌적해. 이 상태가 바로 ‘심심함’의 상태야.     

기어를 넣고 차를 움직이면 엔진의 출력이 올라가고 속도도 높아져. 스트레스가 심해지는 거지. 긍정하면 ‘쾌’고, 부정하면 ‘고’야. 또, 사고의 위험이 있으니까 어느 정도의 긴장은 필수.   

  

심심함과 무기력을 혼동한다면 시동이 걸려 있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구분하면 쉬울 거야. 시동이 걸려 있다면, 즉 삶의 활기가 살아있다면 심심함이고 그게 꺼져있다면 무기력인 거지.     


시동이 걸린 채 정지해 있는 자동차...

언제든 속도를 높이며 달려 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자동차...

그러나 속도가 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있는 자동차...

그게 바로 심심한 사람의 상태야. 싫어할 이유가 전혀 없는 거지.   

  

그러니 만약 네가 ‘심심한 건 싫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네가 아직 심심할 뜻이 없다는 말이야. 자동차의 속도를 높여서, 어딘가를 질주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지.


좋아. 기어를 넣고, 마음껏 달려봐.

최대한 속도를 높여서, 즐거움의 스트레스를 한계치까지 올리고 달려.

어떤 스트레스도 에너지로 삼을 젊음이라는 기름이 가득 있으니까!


굿 럭~!!

  --- 항상 딸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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