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사과가 좋아, 배가 좋아?”
엄마가 후식으로 깎아온 배를 먹으며 아빠가 너에게 물었지.
너는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는 듯 쳐다보다가 ‘배가 더 맛있다’고 무심하게 대답했어. 그까짓 게 뭐가 중요하냐는 듯이.
“좋아하는 사람은 닮아간대
너랑 나랑 다른 점이 많은데. 너는 산 난 바다.
넌 사과, 난 배. 넌 짜장면 난 짬뽕...
다 다른데 이젠 너랑 같아.
사랑하는 동생!
생일 축하해.“
지난번 엄마 생일 때 큰 이모가 단톡방에 보낸 생일 축하 글이야. 네가 배 먹는 걸 보니 갑자기 다시 생각이 난 거지.
왜 그 생각이 났느냐 하면, 톡의 내용이 마치 연애편지 보는 기분이었기 때문이야. 우리가 카톡은 대화용으로 간단히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엄마와 큰 이모는 거의 매일 통화하며 지내는 사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친하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어.
그런데...
아빠가 예민하게 보는 건지 몰라도 글의 내용이 범상치 않아. 이건 정상적인 가족 간에 주고받는 대화가 아니거든. 사랑에 빠진, 그 사랑에 행복한 사람이 내뱉는 고백처럼 들렸단 말이야.
마치 “네 안에 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글의 내용만 보면, 두 사람은 거의 원수나 마찬가지야. 모든 게 정반대잖아.
그런데 이모는 “다 다른데 이젠 너랑 같아”라고 말하네?
뭐가 같다는 걸까? 이모도 바다 대신 산을 좋아하게 되었나? 배보다 사과를 더 좋아하나? 짬뽕 대신 최소한 짬짜면이라도 먹는단 얘긴가?
그러나 “다 다른데 이젠 너랑 같아”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바뀌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린 하나다’라는 확신인 거지. 사랑의 확신.
뭐가 이모에게 이런 사랑의 확신을 갖게 했을까?
그보다도, 어째서 이모는 이런 사랑 고백을 단톡방이라는 생활공간에서 하게 되었을까?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냐.”
우리가 TV같은 데서 자주 듣는 농담 중에 하나지. 가족 간에는 감정적인 진심을 교류하지 않거나, 표현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니까. 적당히 ‘그렇다 치고’ 넘어가는 거지.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엄마의 노력일 거야. 엄마는 큰 이모가 힘든 일을 겪을 때부터 성심성의껏 도왔고, 모든 게 좋아진 최근에도 거의 매일 통화하며 큰이모와의 유대를 강화하고 있지. 그 결과 큰 이모가 ‘이젠 너랑 같아’라고 고백할 만큼 심리적으로 밀접한 사이가 된 거고.
혹시라도 ‘별 것 아닌 톡 하나 가지고 너무 호들갑 아냐?’라고 생각할까봐 물어볼게. 너는 이제껏 살면서 ‘우린 하나다’라고 느껴본 관계가 있니? 어떤 공통의 일이나 사건에 일체감을 느끼는 경우는 제법 있지. 그때뿐이지만, 그게 사람들아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해.
남녀가 감정적으로 미쳐서 잠깐 하나라고 착각하는 경우는 많지만, 진심으로 하나라고 느끼는 사이는 쉽지 않아. 설혹 느낀다 해도 그걸 말로 공표하는 건 또 다른 차원으로 힘든 경지고.
“그게 인상적이었나 보네?”
아빠가 전에도 ‘연애편지 같다’고 얘기한 적이 있기 때문에, 너에게 그 얘기를 또 하자 엄마가 말했지. 엄마는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말했지만, 아빠는 ‘매우 인상적’이었어. 엄마가 잘 살고 있다는 증명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기도 했지.
또 하나 이유를 찾자면 ‘갱년기의 효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너하고 전혀 상관없는 갱년기라고 하지 마. 네 주변의 어른들 대부분이 갱년기를 막 지났거나 겪고 있으니까. 네가 사춘기를 겼었듯이 어른들은 갱년기를 겪게 돼.
갱년기...
사회 속에서 일과와 싸워가며 자신의 성채를 마련하던 시기가 지나고 안정되는 시기.
사회적 정체성이 완성되고, 이제는 서서히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게 되는 시기.
이성의 시기가 쇠퇴하면서 감정의 파도가 점점 커지는 시기.
자신의 취미에 집중하기도 하고, 그동안 등한시하던 개인적 욕망에 몰두하기도 하지.
정상적으로 유지되던 관계망이 해체되고, 부부간에도 새로운 변화가 도래하는 시기.
무난한 관계는 무너지고, 황혼이혼 등이 늘어나는 시기.
남성은 감성적이 되고 여성은 억세진다고 하는 시기...
호르몬 변화가 주된 원인이라고 해. 남성은 여성호르몬이 많아지고, 여성은 남성호르몬이 많아지면서 성격에 변화가 행기는 거지. 그 결과, 그동안 물밑에 있던 잠재적 문제들이 표면에 드러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지.
아빠 친구 중에 이혼한 친구가 있는데, 그 이유가 ‘부부싸움을 하면 지지 않는다’는 거였어. 그 동안은 싸움이 극에 달하면 여자가 져줬는데, 그러지를 않더라는 거지. 왜겠어? 여자에게 갱년기가 온 거지.
갱년기는 기회야. 자신의 본면목을 발견하고, 그동안 사회성이라는 틀에 갇혀있던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기회. 청소년기에 감정 폭발의 시기를 겪듯이, 그렇게 갱년기에도 감성의 폭발을 경험하는 거지.
두 갈래의 길이 있어. 하나는 부정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긍정의 길이야.
내면에 부정을 쌓아두고 살아왔던 사람은 그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겠지. 그걸 부정하면 우리는 더 폐쇄적인 심리상태로 들어가야 해. 점점 상대에게 벽을 쌓는 거지.
그 부정적 에너지를 긍정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해. 내가 평소에 하지 않던 나쁜 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까. 화를 낼지도 모르고, 금지된 어떤 행동을 할 수도 있어. 전에부터 나의 부정적 에너지를 다루는 습관이 있다면 문제없지만, 처음 그런 에너지를 느끼면 두려워지지. 나쁜 사람이 될 것 같거든.
아저씨 아줌마들의 특징이 뭔지 아니? 뭐, 상식적인 얘기니까 알고 있겠지. 뻔뻔함이야. 대한민국 아저씨 아줌마들은 뻔뻔하고 용감해. 그 용감한 뻔뻔함이 바로 자신의 에너지를 긍정하는 데서 나오는 거야. ‘그래, 이게 나다! 어쩔래?’ 하는 자세.
이게 갱년기의 힘이야. 나의 진면목을 추동하는 힘. 이제껏 사회인으로 살아온 것을 넘어서, 새로운 도약을 하려는 힘. 나를 찾아가려는 원초적 욕망...
이 갱년기의 힘으로 나아갈 세 갈래 길이 있어.
하나는 일어나는 원초적 자아를 계속 억누르고 계속 사회적 자아를 키워나가는 길. 대체로 성공한 사람들은 이 길을 가기가 쉽지.
또 하나는 원초적 욕망이 나의 목적이라고 믿고 그것에 몰두하는 길. 나를 가꾸고 내 욕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하지.
마지막은 사랑의 확산. 인간의 모든 에너지는 궁극적으로 ‘사랑의 힘’이라고 생각해.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은 에너지라는 거지.
우리는 평생 두 번의 에너지 폭발을 겪어. 사춘기와 갱년기.
사춘기는 자기애의 폭발이야. 자아가 빅뱅을 일으키면서 세상의 중심임을 선언하지. 사실은 세상에 종속되는 시작점일 뿐이지만.
반면 갱년기는 핵융합 폭발이야. 세상에 저당 잡혀 있던 자아가 해방되면서, 정말로 세상의 중심이 될 기회를 맞이하는 거지. 그걸 기회로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이 넘쳐 주변을 사랑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사랑하게 되는... 이상적인 그림일 뿐이겠지만 그래.
“좋아하는 사람은 닮아간대
너랑 나랑 다른 점이 많은데. 너는 산 난 바다.
넌 사과, 난 배. 넌 짜장면 난 짬뽕...
다 다른데 이젠 너랑 같아.
사랑하는 동생!
생일 축하해.“
이 갱년기의 이모는, 아빠가 보기에,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 같아. 진짜 사랑을 말이지. 자신을 사랑하면서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와 다르면서 엄마와 같다고 해. 아바타가 된 거지. 사랑의 확산...
사랑하는 딸!
어쩌면 아빠는 큰 이모가 부러웠는지도 몰라. 사랑을 하면서, 사랑을 말하면서 늙어가는 그 모습이. 아빠도 너한테 늘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편지에서 뿐이지. 일상에서, 진심으로, 당연하게 말하는 건 쉽지 않아. 마음에 있는 것과 표현하는 건 전혀 다르거든.
다른 이야기지만, 네가 이번에 휴학을 한 것도 아빠는 네가 너 자산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거라고 봐. 너를 위한 시간을 갖게 된 거잖아. 그렇게 너를 사랑하기 시작해서, 그 사랑이 남에게로 확산되길 기도할게. 엄마에게, 그리고 아빠에게, 또 그 밖의 사람들에게도.
--- 갑자기 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지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