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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Oct 07. 2022

딸에게 쓰는 편지 80; 헬스 예찬!


“운동을 좀 해볼까 해.”     


왜 휴학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 네가 한 대답이었지. 내심 ‘무슨 대단한 운동을 하려고 휴학까지 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방 사라졌어. 그저 핑계에 불과한 얘기일 수도 있는 거니까.     

그렇게 휴학을 하고 이제 한달... 두달... 한 학기... 두 학기의 반을 지나가는 지금! 네가 진짜로 운동을 시작했어. 네가 선택한 운동은 바로 헬스!     


굿 초이스!

요가 얘기도 나왔고 필라테스 말도 나왔지만 결국 헬스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 그리고 이제 PT를 받은 지 네 번쯤 됐는데, 소감이 어떠니? 할 만 한가?    

 

사랑하는 딸!

네가 헬스를 선택한 게 얼마나 탁월한 선택인지 잘 모를 것 같아서 아빠가 자세히 얘기하려고 해. 세상에 운동이 그렇게 많은데 왜 헬스여야 하는지를.     


일단 구기종목이 아닌 것, 좋아. 구기 종목은 도구를 다뤄야 하고, 그 기술을 배우는 게 목적이지. 그 과정에서 몸이 건강해지는 건 덤이고.     

그 다음. 몸으로 하는 운동 중에는 격투기도 있고 여러 분야가 있어. 태권도룰 4단까지 땄으니 네가 잘 알겠지? 좋은 운동이긴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너의 선택으로는 헬스보다 못해.     


그렇다면 왜 헬스가 좋은 선택인가?

헬스는 완전히 나에게, 내 몸에만 집중하는 운동이야. 구기 종목처럼 다른 것에 신경 쓸 필요 없고, 단체운동이나 격투기처럼 다른 사람을 의식할 필요도 없지. 나만, 내 몸만 생각하면 돼.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몸을 쓰지만 대체로 ‘쓰는 것들만’ 쓰게 되지. 어떤 운동들은 특정부위만 가혹하게 사용하기도 하니, 그런 경우는 ‘몸을 위해’ 운동한다기보다 ‘내 욕심을 위해’ 몸을 혹사한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고 해야 할까?     


헬스는 달라. 혹사당해서 지쳐있는 근육에 힘을 더하고, 평상시 소외되어 약해진 근육을 강화시켜서 몸 전체에 골고루 활력이 넘치게 해. ‘힘의 공정과 평등’이 내 몸에서 실현되는 거지. 일상생활에서 들러리에 불과했던 부분부분들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주인공으로서 당당한 대접을 받게 되는 거야.   

  

그렇게 몸의 구석구석을 운동시키면, 다시 말해서 내 몸을 골고루 사랑해주면, 온 몸에 힘이 생기고 활력이 돌게 되지. 힘은 사랑의 결과이고, 사랑은 차면 넘치게 돼. 남을 사랑하는 단계로 넘어간다는 거지.     

뭔가 세상 속에서 일을 해보고 싶어진다는 말이야. 그게 나를 뽐내고 싶은 마음이건 세상을 위해 뭔가를 하려는 마음이건 상관없어. 분명한 건 나를 사랑하는, 내게 향했던 시선이 남에게, 세상 속으로 나가게 된다는 점이야.   

  

하지만 쉽게 되지는 않을걸?

벌써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막상 운동이 생각대로 되지 않아. 네가 등운동을 한다고 쳐보자.

손- 팔- 어깨= 등의 경로로 힘이 전달되어야 등운동이 되는 건데, 어라? 힘이 등까지 전달이 안 돼. 처음에는 등은커녕 어깨근육에도 힘이 안 가지. 그저 손과 팔목에만 힘이 집중되어 낑낑거리게 돼. 근육이 서로 연결이 안 되어있거든. 

    

그때야 비로소 알게 되지. 아! 내 몸이 내 맘대로 안 되는구나. 내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구나. 내 힘이, 내 사랑이, 골고루 나눠지지 않았구나...

근육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효율적으로 힘을 처리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거지.    

 

그렇다고 실망하진 말라고. 너는 이제 막 헬스를 시작했잖아? 네 몸을 제대로 사랑하기로, 사랑이 네 몸 구석구석 골고루 전달되도록 정의로운 몸을 만들기로 작정했잖아? 시작은 반이고, 네가 마음을 먹은 것만으로 이미 네 몸은 방방곡곡에서 자유와 평등과 정의의 환호성을 지르고 있을 거야.     


한 두 달 만에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차음 네 몸은 자리를 잡을 거야. 여기저기 아프기도 하겠지. 그런 근육통은 그 아이들이 기뻐서 내뱉는 함성이야.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는 열광적 반응이고.     


그렇게 꾸준히 운동을 계속하다보면 코어(Core)가 잡히기 시작해. 코어근육이란 말 많이 하잖아? 일부러 코어근육 운동을 하지 않아도, 골고루 헬스를 하다보면 너 스스로 몸의 중심에 어떤 힘이 축적되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야. 기수련을 하는 사람들이 하단전에 기를 모은다고 하는데, 같은 이치로 네 몸의 핵심이 든든한 힘을 마련하게 되는 거지.     


그게 네 몸이 건강해졌다는 증거야. 코어의 그 힘은 네가 코어근육을 단련해서 얻어진 게 아니고, 네 몸의 구석구석이 서로 연결되어서 생겨난 거지. 전국의 교통망이 잘되어 있어서 서울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아.     


그 과정에서 자부심이, 몸부심이 생겨나. 출처를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생겨. 그렇다고 ‘내가 왜 이러지?’라고 의아해 하지 마. 그건 네 몸의 구석구석에서 네게 보내는 감사의 소리니까. 그동안은 말로만 네 몸이었다면, 이제는 진정한 네 몸의 주인으로서 대우를 받고 있는 거니까. 너의 세포와 근육과 피와 살들이 네게 충성하겠다고 약속하는 거니까.    

 

여기서 잘해야 돼. 가끔 여기에 취해서 자기애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거든. ‘야! 헬스가 최고구나!’라고 생각하는 거야. 말하자면 ‘헬스 중독자’가 되는 거지.

왜 그런 일이 생기냐면, ‘나’라는 생각이 ‘몸’에 갇혀버렸기 때문이야. 자부심 몸부심 얘기를 했지만, 몸부심이 자부심을 잡아먹은 거지.    

 

몸부심은, 자부심은, 네가 너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야. 또 너를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출발신호이기도 하지. 충분히 사랑을 받은 네 몸이, 네 몸 방방곡곡의 근육과 피와 살들이, 세상 속으로 나가서 뭔가를 하고 싶다는 함성이야.  

   

다른 차원의 헬스가 필요한 시간이 된 거지. 처음 헬스할 때 내 몸 근육이 내 말대로 되지 않은 것처럼, 내가 세상에서 뭔가 하려고 해도 내 맘대로 되지 않을 거야.

당연하지. 네가 네 몸과 통하지 않않던 것처럼, 세상과도 통해본 적이 없으니까. 내 몸이 내 사랑을 못 받았던 것처럼, 세상도 내 사랑을 못 받았으니까.     


하지만 이젠 사랑의 방법을 알잖아? 헬스를 통해서 너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았듯이, 네 사랑의 근육을 키워나가면 차츰 하나로 통한다는 걸 알잖아? 생각으로만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사랑의 행위가 중요하다는 걸 알잖아? 네가 작정한 무게가 어떻게 목적한 부위 근육에 전달되는지 알았던 것처럼, 세상을 향한 사랑도 그렇게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질 거라는 걸 알잖아?     


사랑하는 딸!

이제 내년이 되면 너는 4학년이 되고, 곧이어 세상으로 나가게 되겠지. 그러고 보면 절묘하지 않니? 헬스를 시작하면서 너는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는 거야. 아빠가 항상 얘기하듯, 네 세상을 펼치려고 너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을 마련한 거지.   

  

네가 잘 알다시피 아빠는 별로 말이 없는 사람인데, 유독 너한테만은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되니 뭔 일인지 몰라. 오늘도 ‘헬스 시작한 거 축하해!’ 한마디면 될 것을 주절주절 여러 얘기를 해버렸으니 어째? 아빠가 비평하는 걸 좋아하니, 네 헬스에 대해 비평을 했다고 생각해줘. 원래 비평은 작가가 본능적으로 만들어서 미처 모르고 있던 부분을 일깨워 주는 역할도 하거든. 아빠는 너에 관한 한, 최고의 비평가가 되고 싶어.     

굿 럭~

    --- 헬스 시작한 딸을 대견해 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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