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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by 네오필리아노 Mar 16. 2025

내가 그를 처음 보게 된 때는 40대 중반쯤 일 거다.  사무실에서 가끔 지나치는 여러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기에 그 사람과의 거리는 울타리 안과 밖이었다.


가끔 내 울타리 밖을 지나치고 가끔은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면서 그와의 관계의 거리가 좁혀지기 시작한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우연처럼 만나지만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가 살고 있는 울타리 안으로 나도 가끔은 들어가야 했기에 그 거리가 더 좁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각자가 가진 울타리들이 허물어지고 커다란 한 울타리가 만들어지며 우리는 같은 울타리 안으로 닭을 몰아넣듯 넣어졌다.


어떤 울타리 안에도 우두머리가 있기 마련이다. 서로 다른 울타리 안에서 서로 다른 우두머리와 공존했었지만 세상의 변화는 울타리를 크게 만들기도 하고 작게 여러 개 만들기도 하고 새로 만들기도 하고 허물어 버리기도 한다.


새로운 것에는 설렘과 희망이 있기 마련이지만 두려움이 있기도 했다. 새로운 울타리로 인해 우리의 작은 울타리가 없어진 것은 반갑지 않은 현실이었다. 기나 긴 시간 동안 지켜왔던 울타리가 없어졌기 때문이고 그 안에서 인생을 배우며 한 사람의 몫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며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었었고 무분별하게 움직이는 브라운 운동과 같은 무질서 한 공간을 정리하고 체계를 만들며 안정적인 삶으로 만들어가며 살아온 시간과 사람들의 노력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순간이었기에 기쁨보다 혼란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만들어 왔던 울타리에 가끔은 외압으로 울타리가 무너질 위기를 만나기도 했었지만 언제나 슬기롭게 헤쳐 나갔고 그럴 때마다 울타리는 더 견고하고 튼튼해졌다고 믿었다.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울타리를 비우고 커다란 울타리로 이사를 가면서 비어버린 울타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여운만 남아 있었다. 가끔 기억 속에서 소환되어 안주로 삶는 추억이 되어 버렸다.


내분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그 안에 다시 작은 울타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울타리를 만들 때마다 무너지고 고장 났고 시간이 흘러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과거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울타리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피땀의 결과였던 점을 생각하면 단 시간에 잘 만들어질 리가 없었다. 그러던 중 가끔 아니 가끔이 더 자주 커다란 울타리를 보수하기 위해 착출이 되었고 작은 울타리는 미완성으로 버려진 채 손을 쓸 여력이 없었기에 흉물처럼 남겨져 버렸다. 어쩌면 과거의 집착하며 새로운 작은 울타리를 만드는 동안 붉어진 내부 갈등에 더 해진 외압 때문에 애초부터 울타리는 다시 만드는 일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선비

커다란 울타리의 우두무리는 선비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시대에 맞지 않는 별명, 그래서인가 그 별명이 주는 첫 느낌은 별로 좋지 않았다. 선비라 함은 말 그대로 선하고 어진 사람이어야 하건만... 별명이라는 것이 그 사람과 닮고 어울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되고 싶은 것이기도 한데 난 후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첫인상에서도 선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선비를 표방하는 선비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나의 가설 증명되어 갔다.


우리의 작은 울타리가 다시 세워지지 못한 이유도 선비의 외압이 컸다. 그러나 우리들 중 누구도 그 외압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거부하지도 반항하지도 않았다. 선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를 와해시켜갔다. 과거 울타리의 우두머리 그의 아래 수장으로 두고 그를 앞 세워 가랑비에 옷이 조금씩 젖어 들어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이 커다란 울타리에 물들어 가도록 만들어 가고 있었다. 난 선비를 표방하며 보이지 않는 칼을 휘두르는 그가 싫었다. 그의 그늘 아래 우리를 우리가 아니게 만드는 그가 너무 싫었다.


우리의 울타리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거란 장담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우리만의 방패를 앞 세워 수시로 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나 언제나 패배하는 쪽은 내가 될 수밖에 없었고 상처받는 것도 나였다. 그럴 때마다 선비는 그가 가진 최신형 무기로 나를 대응했고 칼 한 자루, 방패 하나를 들고 대항하는 우리는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불나방일 뿐이었다.


선비는 아니었다.

시간 흘러 지나도 역시 그는 선비가 되고 싶는 사람이었는지 몰라도 선비는 아니었다. 하인들에게 관대하지 않은 양반을 흉내 내고 있었고 품 안의 자식만 품을 줄 아는 가장이었다. 그 품이 부럽지는 않았다. 동경하지도 않았다.


새로운 울타리를 찾아서

그래도 무던히 그 품 안에 들어 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품 안에 들기는 싫지만 작은 울타리를 제대로 만들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가까이 가려고 하면 할수록 자석의 같은 극끼리 만나는 것처럼 자기장에 밀려나고 있었고 다른 자석들도 동원되어 밀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 가고 있었고 나 또한 미운 오리 새끼로 그곳에서 살고 싶지는 않아 졌다. 내 앞에 놓인 것은 어둠과 그 어둠에 더해져 드리워진 짙은 안개일 뿐이었다. 내게는 나침반도 없었기에 어디로 방향 잡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없어지만 무작정 울타리 문을 열고 나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마음은 아직 그곳에 남겨져 미련 가득했지만 난 이미 울타리를 벗어나고 있었고 걷다가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 때 나의 초라한 모습이 들통나지 않기 위해 고개 숙이고 발 앞에 펼쳐지는 길만 바라보며 걸었다. 길을 걷고 있었지만 앞을 볼 수 없기에 제대로 걷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옮겨지는 발걸음 하나하나에는 문을 열고 나온 울타리 안을 생각하게 만드며 꽤 오랜 걸음을 걷는 동안에도 마음과 정신은 한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악몽과 같은 시간이었다.


황무지

제대로 된 이별도 하지 못한 채 나는 추방 아닌 추방을 당했다. 추방이라고 하기에 과장되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잠시 남겨두고 온 내 마음은 아직 이별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고 온 나를 다시 내가 있는 자리로 돌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을 짐작은 했지만 그 짐작보다 더 오랜 시간 방황했었다.


방향을 몰라 오랜 시간을 방황했지만 가야 할 곳은 알고 있었기에 물어 물어 도착한 곳은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그곳에는 울타리도 없고 모여 있는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깊은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 낯선 광경 속에서 나는 압도되었다. 그렇지 않은 척하며 목도리도마뱀이 갈기를 펼쳐 위협에 맞서려는 것과 같이 보이려 했었지만 그 자세로 오래 버티기란 힘겹고 불편한 일을 뿐이었다.


절망하며 원망하며 후회하면서도 버리고 온 울타리 안에서 조용히 살 것을 괜한 오지랖을 부린 것인 아닐까란 생각의 굴레에 챗바퀴를 돌고 있었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져 있었다. 선비는 나에게 원수가 되는 순간이었고 나의 고통만큼 시련만큼 그리고 쌓이고 쌓인 원망들을 고스란히 되돌려 주고 싶은 마음을 가슴 깊이 새겨졌다.


이방인

난 주인공도 아니고 객도 아닌 나 자신에게도 낯선 존재로서의 이방인이었다. 낯설면 안 될 것 같은 곳애서 낯선 이방인이었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그 황무지에서는 나도 다른 사람 모두 자신에게 조차 낯선 이방인이었다.


이방인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난 신뢰받고 존경받던 사람이었다. 내가 이방인라는 새로운 삶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던 순간, 나를 추종하는 사람들조차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이방인으로 살아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도 방황을 했다. 이해할 수 없었고 내 빈자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그들도 어떻게 무엇이라도 할 수 없었기에 그저 허망할 뿐이었다. 공허만이 맴돌았고 난 공허를 선물하고 온 사람이 되었다. 그곳을 떠난 후 한참 후에 내가 떠나야 했던 이유는 소문을 타고 돌았고 그 소문에 어이없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세상을 잘못 살아오지 않은 것에 감사하는 순간이었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빠르게 지나갔다. 온갖 후회를 되새김질하는 순간에도 시간은 무심히 흘러지나고 지나갔다. 그 되새김길이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이방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순리를 따르는 것뿐이었다. 순리를 따르며 기회를 포착하고 탈출의 기회를 노리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난 결국 탈출을 하지 못하고 볼모로 잡히고 말았다.


새로운 울타리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고 그대로 멈춰서 주저앉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갈등하며 시간을 축내고 있던 순간에 내게 손을 내민 사람들이 있었다. 그 손이 썩은 동화 줄이라 할지라도 나는 잡아야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렇게 나는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지만 운이 좋았다. 싹은 동안줄인 줄 알았던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기우였다. 미지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세상을 잘 알지 못하는데서 온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어쩌면 난 울타리 같은 것은 다시 세울 수 없다고 체념했던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나에게 몰아 친 폭풍 속에서 정신을 놓고 길을 잃었었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환경 새로운 마음 가짐을 가지게 한 나를 갈아 넣어 우리의 울타리를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말 많고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 곳 하지 않고 땅을 파고 울타리를 세우고 모진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온 힘을 다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그 시간들은 꿈결 같아 깨어나 그 꿈을 되짚어 보고 싶다는 생각들을 했었지만 그럴 겨를 조차 없을 만큼 틈이 없었기에 달리고 달려 새로운 울타리를 만드는데 모든 신경의 촉각들을 동원했었다. 그 울타리가 비록 견고하지도 않고 늑대가 불어대는 입김엔 언제든지 날아갈 수 있는 울타리였는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영역 표시를 하는 것으로 우리의 울타리는 자리를 잡았고 브라운 운동을 질서 정연한 운동으로 바꾸어 놓았다.


끊어내다.

조금씩 선비는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기억 저편으로 밀려났다. 비로소 선비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울타리를 짓기 시작하며 진절머리 나도록 끈질기게 연결되어 있던 끈을 끊어 내었다. 한결 홀가분 해 진 마음과 과거의 잔재들로 가득 찬 뇌의 한 부분을 깔끔하게 도려내고 새로운 것들로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그 과정이 순탄하고 쉽지 않았고 매우 더디고 답답한 순간들로 가득했지만 악연의 끈을 끊어낸 것만으로도 모든 것은 축복이었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

몇 년쯤 지나고 우리의 울타리는 매우 견고해졌다. 나의 뇌에도 새로운 것들이 자리 잡고 또 몇 년을 살아갈 수 있는 무기가 되어 주었다. 그 무기는 울타리를 더 크고 견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가끔은 우리는 울타리 밖으로 나아가 밖에서 바라오는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지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떻게 비추어지는지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른 울타리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의 울타리가 더 견고해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협력하면서 정신없이 지내는 동안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내가 떠나온 그 울타리의 수장이 드디어 그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속으로 참 오래도 해 먹었다. 참 고소하다는 생각이 들며 나의 새로운 울타리는 그 사람 앞에 조금 더 당당해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예전 같으면 전화도하지 않았을 것이고 혹시 반대로 연락이 왔다면 욕을 퍼부었을지도 모르지만 먼저 전화를 건 나는 그에게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잠시 정적이 있었던 시간과 “그래도 전화를 해 주는 사람은 너뿐이다.”라는 말에 나는 통쾌함을 느꼈다. 그가 내뱉은 짧은 문장 속에 그가 살아온 삶이 괜찮은 삶이 아니었다고 인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세상에 못된 사람이 있을까?

상황이 사람을 못된 사람으로 만들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기에 조금은 이해를 할 것 같기도 했었고 그래서 연락을 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곳을 떠나올 때 비워 버린 뇌에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어서 내가 원수로 생각하던 사람을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바꾸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시간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은 것에 변화를 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고 그 시간은 치유의 시간이 되고 한 걸음 더 성장하는 시간이 되며 모든 걸 해결해 주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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