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iothèque François-Mitterrand, BnF
어린 시절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을 떠올려보면 유독 아빠와 함께한 시간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침이면 깊이 잠든 양 볼에 느껴지던 까슬한 감촉, 무릎까지 오는 설원 위에서의 걸음마 그리고 나란한 발자국 소리, 주말이면 습관처럼 들렀던 작은 도서관에서 올려다보던 하늘 그리고 오래된 책 냄새 (엄마의 말을 빌리면 아기 시절부터 나를 클러치처럼 옆구리에 끼고 다니곤 했다고 한다).
결단코 딸 바보는 아니지만!! 돌이켜 보니 그 모든 것이 아빠만의 사랑 방식이었으리라.
그래서인지 나는 매우 수줍음이 많음에도 비쥬로 인사하기, 아무도 밟지 않는 눈에 소리 내며 흔적 남기기 그리고 창이 커다란 책 냄새 그득하게 나는 도서관을 사랑한다. 아마도 그 시공간 속에 내가 사랑받았던 감각이 새겨진 것이 아닐까. 그렇게 좋은 기억은 자라며 삶을 향유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그래서 나에겐 작은 원칙이 생겼다. 나의 내면을 가득 채우는 혼자 만의 여행길엔 도서관을 제일 먼저 찾는 것이다.
손꼽아 기다리던 12월의 파리. 그 첫걸음도 그렇게 정했었다. 사실 이번엔 운명 같은 이유도 덧붙여졌다.
“ 이번이 몇 번째 파리인지도 모르겠는데,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왜 이렇게 설레는지 모르겠어.
현지인의 시선에서 내가 만약 파리에 단 한 곳만 갈 수 있다면 어디를 가야 할까?”
함께 일하는 동료 파리지엔느 Elise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물었다.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두 눈을 반짝이며 나온 이름은 바로 프랑수아 미데랑 국립도서관. Oh là là!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짐만 풀고 바로 나왔다. Très Grande Bibliothèque 일명 TGB. 책으로 숲을 이룰 만큼 아주 커다란 도서관이다.
파리 13구에 센강을 바로 접하고 있는 중심가지만 이곳이 파리가 맞는 걸까 싶을 정도로 섬처럼 외따롭고 한가롭다. 그리고 정문에서 긴 계단을 따라 다리를 건너면 초록이 가득한 Parc de Bercy로도 연결된다. 비가 오고 바람도 부는 쌀쌀한 날씨라 추천코스인 계단에 걸터앉아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고 공원 산책까지 하진 못했지만, (다시 파리에 가야 하는 이유 저장 중!) 현대적인 건축물에 자연이 더해져 하나의 풍경이 되는 신비로움을 만끽한다.
네 개의 펼쳐진 책. 아무리 노력해도 한 장에 프레임에 담기지 않는다. 분리된 유리 프레임이 한 권의 책처럼 서로 마주 보고 서 있고 비워진 중앙은 낮은 정원을 품고 있다. 신기한 건 차가운 유리 프레임에 둘러 쌓여 삭막할 것만 같지만 숲처럼 우거진 나무가 허파처럼 숨을 쉬고 있어서 공간은 서서히 스며드는 빛으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건물의 외벽은 유리이지만 실내는 목재 최전 차양이 설치되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 빛을 조절한다고 한다.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다 언제든 하늘을 바라보면 자연의 빛이 수 놓인 노르망디의 소나무 뷰를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낭만인지.
도서관은 젊음으로 가득하다. 유리를 거울삼아 삼삼오오 모여 안무 연습을 하는 청년들이 넘친다. K-pop도 들리고 복합 문화공간인 내부로 들어가니 사진 전시회, 토론회, 문화행사로 모두가 분주하다. 들어서는 입구 서점에서부터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책, 카드, 그림에 빠져 도통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걷는 걸음마다 눈에 담고, 읽고, 해석하며 지나다 보니 오후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마치 여기 일부인 것처럼 원래 속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좋아서 밖이 어둑해져 가는지도 모르고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솔직히 1/3도 이해가 안 되지만 토론회에 들어가 듣기 평가처럼 집중해 들어보기도 하고, 카페테리아에 앉아 친구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바이브를 함께 즐기기도 했다. 사진전에 한참 빠져 있다가 작가 분이 직접 오셔서 작품을 직접 설명해 주시는데 번역기 없이 부족한 프랑스어와 바디 랭귀지로 끝까지 대화를 완성해 냈다. 좌절스럽지만 직접 부딪치는 건 언제나 최고의 공부가 된다.
이렇게 또 새로운 자극과 감각을 내면에 새기며 좋은 기억을 가득 담아 간다. 이 공간이 품고 있는 기록, 유산, 생태, 토론 그리고 뿜어내는 생동감과 이야기들에 한 뼘 자라난 기분이 든다. 아쉽게도 아직은 간신히 읽고 들으며, 책은 동화책밖에 살 수 없지만 다시 돌아오는 날엔 이 아름다운 언어로 좀 더 심층적인 관심사를 탐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 종이 숲을 떠나 도시의 중심으로 떠나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