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이 불손하고 불경하기만 한 걸까? 확신에 가득찬 믿음이 행하는 무차별한 무절제의 공격. 인간이 확신하며 저지른 획일화의 폭주는 전쟁에서 살상의 주된 무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보는 물체의 완벽한 모습도 굴절될 우려를 가진 연약하고 불완전하며 상대적인 빛의 반사 대상일 뿐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믿음을 확신하기 전에 그 절대성을 의심하는 사유는 반드시 필요하다. 확신하는 믿음 또한 인간이 불완전한 빛의 한쪽 면만을 본 시선일 수 있기에 믿음이 의심과 함께 흔들리듯 나아가는 것을 불손하거나 불경하다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동쪽창 앞에는 무엇을 두는 것이 좋을까?라는 강의를 들었다. 강사님은 "우리는 자신이 본 것에 대하여 그 실체를 확신하지만 본다는 것은 불완전하고, 연약하고, 상대적인 것이며,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사과를 본다면 그것은 사과 그 자체가 아니며 우리가 본 것은 사과에 반사된 1억 5천 년 킬로미터 거리의 태양에서 출발한 빛을 본 것으로 우리 눈으로 날아온 빛의 앞모습만 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제주도에서 도깨비 언덕에서 둥근 물체를 굴려 위로 굴러가던 상황을 생각하였다. 우리가 보고 확신하는 상황들의 불완전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몇 억 광년을 거쳐 물체의 단면에 반사된 불완전하고, 연약하며, 상대적인 것을 빛을 본 행위를 확신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으므로 겸허히 내가 본 것이 확실한 것이 맞는지 의심하며 사유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나는 콘클라베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 속 주인공인 로렌스 추기경은 서거한 대주교 자리를 선출하는 단장으로 선거를 총괄하며 연설에서 "확신은 일치의 가정 큰 적이며, 관용의 가장 치명적인 적이라며 믿음은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에 살아 숨 쉬는 존재인 것이라면 오직 확신만이 존재하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없고, 따라서 믿음도 필요 없을 것이라"라고 말했다. 이 영화에서의 이 연설이 내 마음을 깊이 사로잡았다.
나는 로렌스 추기경의 어둠이 있어 빛이 있듯, 의심이 있기에 믿음이 있다는 말을 들으며 의심이 꼭 불손하거나 불경하다는 생각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틀러는 아리안인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해 열등하고 위험함 인종인 유태인을 학살한 사건을 저질렀다. 이 확신의 광기로 인해 많은 유태인이 수용소에서 학살당했다. 사실상 전쟁은 인간의 야망과 권력 다툼으로 발생되기도 하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선을 구축하는 길이라는 확신하에 전쟁이 일어나곤 한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자신의 신념을 확신하고 스스로를 신의 자리에 세워 인간의 다양성을 말살하려고 일으키는 전쟁에 합리적 의심을 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강사님은 "우리 눈은 직진한 빛이 반사 대상(먼지, 수증기)이 있을 시에 빛의 앞모습의 총합으로만 볼 수 있으며, 그렇기에 빛의 옆모습은 볼 수 없다."라고 하셨다. 그 예로 "우주가 깜깜한 까닭은 반사대상이 없기 때문이며 달은 지구처럼 태양빛이 비춰도 반사대상이 없어 깜깜하다."라고 말씀하였다.
한동안 나는 어둠 속에 있는 것을 두려워했다. 직장 생활을 너무 열심히 하여 나타난 번아웃 증상이었다. 좁은 공간에서는 숨을 쉴 수가 없었고 잘 때 눈을 감으면 누군가 목을 조이는 것 같았다. 영화관에서 불이 꺼지면 두려움이 엄습해 죽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태양을 등진 밤조차도 반사대상이 없어 깜깜할 뿐 우주 속에 빛은 항상 우리 곁에 채우고 있다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조차도 빛을 품고 있는 우주일 뿐이니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님은 어둠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자연의 선물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어둠을 두려워하는 내게 위안을 주는 말씀이었다.
지금도 나는 잘 때 창가에 빛이 들어오는 공간에 있어야만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어둠은 정신을 안정시키고 수면의 질을 높여서 활동 에너지를 비축해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주니 어둠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고마워해야 한다고 강사님의 말씀에 앞으로는 천천히 어둠 속에 고요히 잠든 나를 회복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수영장 속에 들어가면 물의 압력이 내 몸을 조여오는 환상에 나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그 말을 하면 사람들은 나에게 너무 예민한 것 같다며 웃었다. 자신들은 물속에서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우리가 우주의 압력을 자연스럽게 느끼듯이 물도 어둠도 두려움의 대상으로 느끼기에 내 몸이 부자연스럽게 반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해칠 것 같다는 불안이 두려움이 되고 내 몸이 긴장하여 그런 반응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자연의 선물을 마다하고 불안과 두려움을 채우고 죽어가는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해한 자연을 해를 끼치는 존재로 생각한 내가 스스로를 가둬 내가 나의 천적인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나를 자연스럽게 자연과 한 몸이 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