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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저울질에 실리보다는 선한 행동을 선택하기를...

by 레알레드미
나는 누군가의 통제가 없다면 불법이라도 남몰래 행하고, 공짜라면 양잿물이라도 마시는 어리석고 비양심적인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선함을 저울질하는 시험에 들게 될 때, 실리를 따져 가장 먼저 버려지는 양심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역마살 탓인지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집에 있지 못하고 여행을 나섰다. 자동차는 더위를 머금어 찜통이 되었다. 옷을 벗지 않고 사우나 속에 뛰어든 꼴로, 우리는 벌겋게 익었다. 가로수들이 개처럼 늘어진 혀들을 헉헉댔다. 에어컨을 틀어도 차 안은 곧바로 시원해지지 않았다.


활옥동굴에 도착하니 땡볕이 머리를 달구었다. 이마에 땀이 흘러내리는 고랑으로 내천자가 새겨졌다. 매표소에서 카누 포함 15,000원의 티켓을 구매했다. 활옥동굴은 여름의 불볕더위에도 11~15도의 시원함을 유지한다고 했다. 동굴에서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긴소매 옷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니 서늘하여 맨살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동굴로 한참을 걸어 들어갔지만 입장료를 검사하는 사람이 없었다. 단속하는 사람이 없으니 티켓을 사지 않고도 들어올 수 있었는데 양심적으로 행동해서 돈을 날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건 누군가의 통제가 없다면 쉽게 불법을 저지를 마음을 가졌다는 뜻이었다. 그 마음을 깨닫자 스스로 선하다고 믿은 나 자신이 한심했고 실망스러웠다.


나는 여태껏 단속하는 눈을 피하기 위해 양심 바른 척 행동하는 위선자였던 것이다. 스스로를 잔디라 여겼지만 사실은 잡초였던 것이다. 당연히 지불하고 사야 하는 물건을 속여서 공짜로 얻고 싶은 위법한 본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보지 않아도 신호등의 붉은 불이 켜지면 정지선에 멈춘 사람을 찾는 '이경규가 간다'라는 예전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많은 사람들이 정지선을 지키지 않을 때 양심을 지킨 사람은 더 위대해 보였고 그 광경은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번 일을 통하여 내가 남이 양심 바른 척했지만 실리를 따져 가장 먼저 양심을 버렸음을 고백하고 부끄럽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였다. 본성은 가만히 두면 때가 낄 수 있으므로 단련할 필요가 지다. 이제부터라도 지켜보는 눈이 없을 때에도 스스로를 선하게 지킬 의지와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암반수가 고여 만들어진 호수에서 2인용 카약을 탔다. 물이 꽤 깊을 줄 알았는데 카약이 뒤집어져도 물이 성인의 어깨까지 밖에는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모양 빠지는 구명조끼는 입지 않았다. 내가 먼저 카약에 올라앉으니 맞은편에 석이 앉았다. 석이 서툴게 노를 저었다.


처음으로 카약을 탄 이 순간을 남기기 위해 동영상을 찍었다. 동영상을 찍느라 정작 구경해야 할 동굴 속 모습은 자세히 보지 못했다. 호수 중간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았다. 흔한 물고기라 생각하고 설핏 보았다. 나중에 이곳에 철갑상어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자세히 보지 않은 걸 후회했다.


동굴 내부는 LED 네온의 다양한 빛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로 꾸며 놓았다. 시원한 곳을 걸으며 사진을 찍으니 역시 이만한 피서지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뼈 빠지게 땡볕에서 일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느긋하게 동굴을 걷고 있으니 시간여행을 온 느낌이 들었다.


활옥동굴과 마지막 행선지인 구옥날다의 중간쯤에 위치한 국숫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해물칼국수와 만두 반 판을 시켰다. 만두 마니아인 석이 맛있다며 서울에 가서 먹을 만두 한 판을 더 주문했다.


구옥날다라는 카페에서 여행의 마지막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곳은 한여름이 아닌 봄이나 가을 무렵에 와서 바깥에서 차를 마시면 좋았을 것이다. 날 좋은 날 바람에 몸을 맡기고 건너편 산의 전경을 바라보면 나무들이 그윽하게 우린 차처럼 시야를 향기롭게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카페에 들어가 한옥으로 꾸며진 창을 배경으로 마루에 마주 앉았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해서 좋았지만 등을 기대지 않고 양반다리로 앉으니 불편했다.


석은 아메리카노를 나는 뱅쇼를 마셨다. 처음에 우리는 머리가 닿을 듯 가까이 앉아 있었다. 점점 우리는 기둥 쪽으로 기대며 널찍이 떨어져 말없이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나는 브런치의 글들을 읽었고 석은 youTube를 보고 있었다. 따로 다른 것에 열중하면서 그렇다고 혼자는 아닌 상태로 우리는 앉아있었다.


옆 테이블의 손님이 나란히 앉아 다정하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노안이 온 눈으로 핸드폰에 몰입하고 있는 석을 보았다. 다정함이 사라진, 있는 듯 없는 듯한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말없이도 편한 사이라서 좋은 것일까? 각자의 동상이몽에 취한 외로운 관계일까? 도대체 모르겠는 우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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