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려면
나라는 무기를
내려놓아야 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맨몸의 무방비 상태
당신이 내 옆에 누워
아주 친밀하게 시를 읽는다
손톱이 젤리처럼 말랑말랑
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순진한 숙녀가
당신을 찾아왔다
그녀의 겨드랑이에
갓 구운 잉크향의 시집이 있다
당신에게 시를 배우러 온 숙녀는
핑크빛 뺨을 가졌다
그녀는 잘 익은 복숭아
달큰한 향기에 현기증이 일었다
당신이 나에게
이별을 고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당신의 옷자락은
빙하기의 눈발처럼 단호하다
발꿈치의 서릿발 동상,
손목의 빗금 친 자살흔
당신이 밀어낸 낭떠러지
나는 암흑의 문턱에 있다
당신에게 나는
잡아먹을 듯 탐욕하는 속눈썹
월마다 자생하는 선홍색 자격지심
당신을 짓뭉개 올가 맬 치명적인 집착
당신은 나에게 중용을 모르는
불한당이라 말한다
당신의 바람기가 결국
우리를 파탄 냈지만
나는 당신을 잡아먹는
사마귀의 숙명을 지녔다
그 액운을 끊어내고자
붉은 부적을 지닌 꽃으로
차라리 애증으로
단장을 도려낸
상사화가 되리라
선운사에 가면
꽃무릇 같은 내가 있다
이별한 당신은 매년 이맘때
시집을 들고 이곳에 온다
그리하여 나의 기일은 태양보다 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