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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기울어 마음을 내려놓듯이

by 레알레드미

늙어진 당신의 머릿속엔 하얀 벌레가 산다

벌레는 새로 돋아나는 푸르른 현재만 갉아먹는다

낙엽이 된 기억들이 온통 깜깜한 먹통이 된다.

간병인이 요양원이 당신의 집이라 일깨워도

당신은 그 집에 가고 싶다는 문장만 읊조린다

당신에게 그 집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 낙인

죽어야 없어질 인두로 지진 집착 같은 것


당신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한 그 집에 가보았다

문을 열자 닳아진 관절의 신음소리

공포에 질린 절규가 기어 나왔다

고립을 먹어치운 불안이 무성했다

침대의 그림자는 당신이 웅크린 웅덩이

나프탈렌향 하얀 국화꽃 같은 당신의 상징들

막힌 공간에 붙들린 상처 입은 짐승처럼

버려진 것들이 그리움에 항거하며

집도 당신처럼 늙고 낡고 죽어가고 있었다

집도 인정에 굶주리면 죽을 수 있구나


당신의 집에서 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다

지금은 소란하지만 점점 고독해질 노년을

미래의 내가 무엇에 집착하여 어떤 기억을 재생할지

당신을 닮아갈 불가항력의 병이 두려워졌다

피할 수 없는 삶의 패턴은 유효하고

예외가 될 확률은 의문부호이므로

스스로 내 마음의 허들을 낮춘다

바람처럼 한 곳에 마음을 묶지 않으면

불행을 늦추고 나 자신을 지키리라는 생각

하지만 그것도 끝장나야 보여줄 해답

미래의 그 무엇도 장담할 순 없지만,

정답 없는 일들로 속 끓이지 말자, 지금은

집착을 끊고 마음에 고요를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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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화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