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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의 크기

by 맛술

아이를 낳으면 바로 ‘모성’이라는 게 생기는 줄 알았다. 하지만 모든 게 낯설었다. 작은 아기를 안는 것, 모유를 주는 것, 목욕을 시키는 것,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 나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서툰 손길로 늘 한발 늦게 나는 아이를 챙겼다. 분명 사랑하고 이쁜 아이지만, 불현듯 아이의 존재가 버겁기도 힘들기도 했다. 난 정말 모성이 없는 걸까?라는 죄책감까지 들었다.


우리의 시간이 쌓이고 내겐 없을 것 같던 모성도 점차 생겨났다. ‘언제쯤 엄마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엄마가 될까?’라는 물음표의 시간들 속에서 때때로 ‘제법 엄마 같다!’라는 느낌표의 찰나도 있었다. 새벽 두 시 갑자기 잠에서 깨 열 나는 널 발견했을 때, 밑반찬을 한 번에 3개씩 만드는 나를 보며, 집을 나서는 너의 모습을 보며 무사히 돌아오길 바랄 때, ‘엄마’하며 팔 벌리고 뛰어오는 너를 볼 때, 엄마에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았다.


모성애의 사전적 의미는 ‘암컷 생물이 자신의 새끼를 아끼는 마음’이라고 한다. 모성의 알려진 위상에 비하면 뜻은 소박했다. 새끼를 아끼는 마음.

눈사람을 만들 때도 작은 눈덩이로 동네 한 바퀴를 굴려가며 점점 키워간다. 나의 모성 또한 우리들의 시간을 구르며 점점 커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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