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7 ; 영주
영주에서 이틀 밤을 보낼 예정이었지만 계획한 여행 일정은 딱 하나였다. 부석사에 다녀오는 것.
어디서, 몇 시에, 몇 번 버스를 탈 지 아무것도 생각해두지 않았다. 그저 아침에 눈 떠지는 대로 일어나서 게스트하우스 매니저에게 부석사 가는 방법을 물어보면 되겠지 싶었다. 아침 8시. 방음이 안 되는 게스트하우스 탓에 밤새 뒤척이다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게스트하우스는 여전히 한밤 중 같았다. 인기척도 없었다. 결국 부석사에 가는 방법은 네이버에게 물어 찾았다. 네이버에 훌륭한 가이드가 많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버스 도착까지 남은 시간은 10분. 다음 버스는 1시간 후에 도착이었다. 숙소에서 걸어서 6분 거리에 있는 정류장에 버스보다 빠르게 도착해야 했다. 부랴부랴 양말을 챙겨 신고 채 빗지도 못한 머리를 정리하며 달려 나갔다. 다행히 버스보다 빨리 정류장에 다다랐다.
버스의 종점인 부석사까지는 30분 정도. 정류장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는 몇 개의 표지판을 지나 부석사에 도착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절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큰 기대를 갖고 왔던 탓일까, 주차장에서 마주한 부석사의 모습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커다란 주차장을 빙 둘러 있는 온갖 천막들이 이곳이 절인지 한여름 계곡 옆에 임시로 생긴 백숙집인지 헷갈리게 했다. 마치 축제가 열린 캠퍼스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판대에서는 사과, 꿀, 버섯, 풍기 인견으로 만들었다는 스카프까지, 안 파는 물건이 없었다. 곧 주차장 중앙으로 화려한 반짝이 의상을 입은 트로트 가수가 등장할 것만 같았다.
황급히 주차장을 벗어나 절 입구로 향했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오르막길을 계속 따라 올라갔다. 10월 말이라는 날짜가 잊힐 정도로 땀에 흥건히 젖었다. 입고 있던 경량 패딩을 벗어 들었다. 오르막길이 끝나기 무섭게 가파른 돌계단이 등장했다. 고개가 절로 뒤로 젖혀지는 순간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 접질렸던 발목이 불안했다. 그만두고 내려가야 하나 고민됐지만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서라도 무량수전은 보고 돌아가야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잔뜩 성이 난 발목을 달래 가며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유현준 교수가 부석사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건축의 시퀀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 내용이 꽤나 인상 깊었다. 지금처럼 커다란 주차장이 들어오기 전에 부석사는 산속, 그것도 아주 깊은 곳에 위치한 절이었다. 높은 산길을 오르고 가파른 돌계단까지 점령하고 나서야 비로소 무량수전을 만날 수 있었다. 무량수전이 만약 평지에 위치해 있었다면 지금만큼의 웅장함을 선사하지는 못했을 확률이 크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상태로 마주했기 때문에 몇 배의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게 바로 건축의 시퀀스이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지어진 커다란 주차장이 역설적이게도 부석사의 웅장함과 감동을 반감시킨다. 부석사보다도 규모가 훨씬 큰 주차장을 보고 무량수전에 올라오면 부석사의 규모가 생각보다 작게 느껴진다. 또한 아무리 부석사 입구에서부터 무량수전까지 힘겹게 올라가야 한다고 한들 주차장까지는 편안하게 온 것이 사실이기에 그만큼 감동도 덜하다.
오늘 내 경험만 봐도 그렇다. 어떻게 보면 부석사의 첫 관람지는 주차장이라고 할 수 있다. 주차장에서 느끼는 감정이 부석사에서 느끼는 첫 감정일 테고, 나에게 가장 먼저 각인될 부석사의 첫인상일 것이다. 오늘 내게 부석사는 한여름 계곡의 백숙집이었고 시끌벅적한 마을 축제였다.
건축의 시퀀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동시에 엄마가 안치되어 있는 추모공원이 떠올랐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화장한 유골을 파주 용미리 추모공원에 모셨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에 자주 들릴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처음 한 달 간은 일주일에 두 번씩은 엄마를 보러 갔었다. 엄마에게 다녀오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운전면허가 없는 나는 집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마지막엔 결국 택시를 타야 엄마에게 닿을 수 있었다. 왔다 갔다 소요되는 시간만 해도 4시간이 훌쩍 넘었다. 험난한 여정을 뚫고 엄마의 납골당 앞에 서면, 그렇게 눈물이 났다. 엄마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난 버린 게 실감 나서. 손을 뻗었을 때 닿는 것이 엄마가 아니라 차가운 대리석이어서.
엄마의 49재가 있던 날, 형부가 큰 차 한 대를 렌트했다. 언니네 가족과 이모들, 나와 동생은 덕분에 차를 타고 편안하게 엄마를 보러 다녀올 수 있었다. 차로는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그때 새삼 느꼈다. 여기가 이렇게나 가까웠나?
그날 이후로 엄마에게 가는 빈도수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아서였는지, 엄마가 가까이에 있다는 걸 깨달아 버려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서울에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강원도를 배낭여행을 시작한 지 3일 만에 빠져나왔던 것처럼, 나는 미련 없이 엄마의 추모공원에서 빠져나왔다. 추모공원에 다다르기까지의 시퀀스에 커다란 주차장이 생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