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시간 여행
친정 동네에 오면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나왔던 초원사진관 같은 사진관이 아직 존재한다. 게다가 그 시절에나 어울릴 법한 이발소도 몇 군데 남아있다. 멀찍이서 지나가다 보면 추억을 부르는 정감 있는 곳이긴 하지만 웬만해서 직접 손님으로 들어가 볼 용기가 생기지는 않는다. 장사가 될까, 몇십 년 단골손님이나 가겠지, 궁금한 마음에 괜히 문을 열었다가 다시 나오기도 멋쩍을 것 같아 안을 구경할 기회는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난 이발소에는 갈 일 없는, 여자가 아닌가.
그러다 50년 동안 이발소를 운영하셨다는 분이 교회를 나오시면서 아버지는 그곳 단골고객이 되셨다. 시골에서는 서비스의 만족도보다 인맥이 선택의 결정적인 조건일 때가 꽤나 많다. 이왕이면 아는 사람 집에 갈아줘야지 하는 심리가 보통으로 존재하는 곳이다.
시작된 장마에 바깥활동이 제한되다 보니 외할머니 집 TV 채널이 돌아가기에 바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에는 없는 TV라 아이들은 외갓집만 오면 먼저 TV 리모컨을 들고 나한테 온다. 주말의 예외적인 허용이라지만 장시간 멍하게 TV 앞에서 시간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동생들이 낮잠 자는 동안 첫째 아이를 데리고 덥수룩한 머리를 정리하러 가기로 했다. 그 이발소에 한 번 갈아줄 기회가 생긴 것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해서인지 궁서체로 쓰인 간판 옆에서 돌아가고 있는 이발소 표시등이 꽤나 운치 있게 느껴진다. 반쯤 열린 문에는 파리를 쫓는 발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유리판 밑에 초록색 부직포를 깐 응접 테이블과 황토색 소파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안쪽에선 호호백발의 어르신 한 분이 머리손질을 받고 계셨다. 풀을 빳빳하게 먹은 하얀 모시옷을 정갈하게 입으신 걸 보면 아침 일찍이 저 쪽 동네에서 버스를 타고 마실을 나오신 게 분명했다. 말없이 앉아 계신 어르신들 앞에서 왠지 공손한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이는 소파 팔걸이에 폴짝 걸터앉아 엎드린다. 우리를 본 주인 내외분이 반갑게 웃으신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소품들이 널려 있다. 떨어진 머리칼을 비로 쓸어 정돈하기까지 수만 번은 반복했을 바닥은 닳아서 윤이 나고, 덩치 큰 미용의자는 곳곳이 벗겨져 있다. 곧 무더운 여름으로 넘어갈 숫자 달력과 저혼자 시끄러운 TV, 습한 기운을 안고 도는 선풍기는 어디가 고장 났는지 따닥따닥 같은 간격으로 소리를 낸다.
손질을 끝내신 어르신은 겉옷 안 주머니에서 묵직한 통장지갑을 꺼내신다. 은행에서 받았을 통장 비닐에는 통장만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종이들과 함께 반으로 접어 넣은 현금이 들어있었다. 그것을 조심스레 꺼내 계산을 치르는 행위까지는 아마 수분이 걸릴 법했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는 사람은 없었다. 느릿느릿한 시간이 흐르는 공간이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그동안 주인아주머니는 두 잔의 율무차를 우리 앞에 내주신다. 어릴 적, 아빠를 따라 나가면 가끔씩 얻어먹곤 하던 다방의 쌍화차를 앞에 둔 기분이었다. 아이와 나는 새로 먹어보는 음식처럼 조심스럽고 기분 좋게 홀짝이며 컵을 비워냈다. 계산을 치르신 후에도 어르신은 가실 생각이 없으신지 우리 앞에 앉으신다.
사모님, 25번에 전화번호 하나 저장해 줄 수 있으실까
한참이나 아랫사람일 나를 사모님이라 부르시며, 어르신은 명함 한 장과 3G 핸드폰을 건네셨다. 그 정중한 부탁을 어찌 거절할 수 있을까. 나는 흔쾌히 네 하고 대답했지만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내 눈과 손은 한참을 헤매다 겨우 단축번호 25번에 새로운 연락처 저장하기를 완료했다. 묘하게 뿌듯한 기분이다. 어르신은 고맙소 하고 인사를 하시며 또다시 소파에 푹 기대어 앉으신다.
6살짜리 아이가 손질받기에는 왠지 어색할 공간이지만 다행히 아이는 기분이 좋다. 아이 머리칼을 손질하는 일은 오래돼서 이제 어색하다며 주인아저씨가 웃으신다. 요란한 무늬의 장판을 입힌 널빤지가 이발의자 손잡이에 걸쳐진다. 키가 작은 아이를 그곳에 올릴 참인가 보다.
아이는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그 자리에 올라앉았다. 주인아저씨는 아이에게 흰 가운을 두르고 바리깡이라 하는 이발기로 대충 머리를 손질한 후 본격적인 가위질에 들어가셨다. 50년 동안 그랬을 아저씨의 가위가 싹싹 소리를 내며 아이의 머리 위에서 춤을 추었다. 이제 거의 다 된 것 같다 여기면 또 빗질과 가위질을 반복하셨다.
자 이제 됐다. 면도 한 번 해 볼까.
작은 면도칼로 마무리를 하시나 했는데 아이의 이마와 목에 벽지 풀을 바르듯 굵고 둥근 붓으로 비눗물을 바르신다. 재미있는 장면에 큭큭 웃으며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아이도 우스운지 연방 키득키득 거리며 거울 속의 자신을 관찰한다. 18세기경까지 유럽에선 이발사가 외과 의사를 겸하고 있었다고, 왠지 하얀 가운을 입으신 주인아저씨의 오래되고 묵직한 면도칼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요새 젊은 엄마들은 아이가 다칠까 봐 면도칼을 못 들게 한다는 말씀을 하시며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아주 신중하고 조심스레 짧은 머리칼을 고르신다.
아이는 치약 냄새가 나는 샴푸로 두 번이나 머리를 감고 나서야 말끔해졌다. 아이가 힘들어 움직이려 할 때 복숭아로 꼬았다며 주인아주머니는 천도복숭아를 한 쟁반 내오신다. 올 들어 처음 만나는 복숭아까지 대접받으니 황송해진다. 잔돈은 안 주셔도 된다며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었으나 거스름돈이라며 3000원을, 또 아이스크림 사 먹으라며 아이에게 3000원을 쥐어주신다. 결국은 실랑이 끝에 아이에게 쥐어준 3000원만 받았으나 어찌 됐든 별 이득 없는 장사를 하신 건 아닌지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다. 그 와중에 복숭아가 맛있다며 온 입가에 복숭아 물을 묻혀가며 먹던 아이는 남은 한 개까지 손에 쥐고 일어난다. 우리는 배부른 마음으로 느린 시간을 걸어 나왔다. 우리가 나온 뒤에도 아까 그 어르신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