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by 꿈꾸는 momo


“몸이 찌뿌둥해서 목욕탕에 몸 좀 담그고 와야겠다.” 얼마 전 물 좋다는 목욕탕을 알아내 혼자 다녀온 이후로 남편은 목욕탕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진 것 같다. 아이들이 나도 나도 하며 따라나서겠다 성화였다. 어쩐 일인지 단번에 “가자”하고 외치는 남편 말에 아이들은 폴짝거렸다. 세 아들을 데리고 가는 건 처음이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자기도 가자!” 남편의 말이 나에게 향했다. 눈이 커졌다. 그렇게 엉겁결에 따라나선 목욕탕.

아들만 셋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꼭 이렇게 나를 위로했다. “딸 같은 아들이 하나 있을 거예요. 아들 있으면 목욕탕 갈 때 아빠 따라가니까 그게 그렇게 좋대요.” 한 세대만 앞서 태어났다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을까. 나는 그저 웃으며 네네 말하면서도, 목욕탕이라고는 가지 않는 신랑을 떠올리며 아들 덕을 보기는 글렀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기회가 온 것이다. 급히 목욕가방을 챙기면서 마음이 들뜬 것 같다. 비누와 로션을 안 챙겨 온 건 나중에야 알아차렸다.


코로나로 공중목욕탕을 안 간지 3년쯤 된 것 같다. 그 사이 우리 아파트 앞 목욕탕은 문을 닫았다. 남편이 귀동냥으로 알아낸 목욕탕은 차로 15분쯤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새로 생긴 큰 목욕탕보다 싸고 물도 좋다는데 한눈에 봐도 오래된 목욕탕이었다. 카운터에 있던 백발의 주인아저씨는 남자아이만 주렁주렁 달고 온 우릴 보고 웃으셨다. 그리고 나에게 먼저 들어가시라며 여탕 키 하나를 건네주셨다. 낯선 곳에서 얌전해진 세 아들은 조용히 아빠 곁에 서 있었다. "좀 있다 만나." 나는 여탕 입구를 확인하고 혼자 탈의실로 들어섰다.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온 것처럼 생경한 마음이 들었다. 방학이라 하루종일 세 아들의 재잘거림과 분주한 움직임 속에 어지럽던 나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공간에 가만히 앉았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탈의실 옷장은 잠금장치가 소용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낡아 삐걱거렸다. 귀중품은 꼭 카운터에 보관해 달라는 사장님의 문구가 여기저기 붙어 있는 이유 같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마스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하는 홍보 전단이 붙어 있는 걸 보고 나는 잠깐 두리번거렸다. 마스크를 껴야 하나… 그러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아주머니 한 분을 보고는 그냥 마스크를 벗기로 했다. 목욕탕 입구에는 달목욕을 끊은 사람들 것으로 보이는 목욕 바구니가 철제 선반 위에 빼곡히 줄지어 있었고 조명이 꺼진 냉장고 안에는 각종 음료수가 소품처럼 버티고 있었다. 목욕을 하고 나면 차가운 식혜가 먹고 싶어질 것 같았다.


예상대로 목욕탕 안은 조용했다. 온탕 안에는 중년의 아주머니 한분이 몸을 담그고 계셨고 그 옆으로 이벤트탕, 열탕, 냉탕이 자리하고 있었다. 탕마다 디지털 방식의 온도 표시기가 달려있었지만 고장 난 회로가 있는지 숫자는 이상한 기호로 보였다. 맞은편에 건식, 습식 사우나까지 있는 걸 보니 규모가 꽤 큰 편이다. 사우나 옆에도 탕이 있는지 몇 분이 거기서 쉬고 계셨다. 나는 처음 온 티를 내지 않으려 최대한 차분하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적어서 그런지 습하고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탕에는 돌 두꺼비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요란스럽게 물을 쏟아내고 있었는데 이 소리가 없다면 너무 조용해서 오래 있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탕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세면대가 여러 줄로 늘어서 있었다. 공간이 꽤 넓었지만 빈자리가 많았다. 나는 아무도 없는 줄의 구석자리를 찾아갔다. 뜨거운 물이 지나가는 길목은 바닥이 허옇게 변해있었고 수전과 샤워기는 모두 칠이 벗겨져 새까만 흉터를 드러내고 있었다. 시설 좋은 목욕탕이 얼마나 많은데 왜 이런 목욕탕이 좋다고 하는 걸까. 김이 서린 거울에 샤워기로 물을 뿌려 거울을 닦아내며 이런 생각을 하는데 까칠한 입술에 부스스한 얼굴이 보인다. 축 처진 가슴과 뱃살이 슬프다. 얼른 몸을 씻고 탕 안으로 들어간다.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좋다. 나는 뻐근한 목과 어깨를 늘여가며 눈을 감고 이 기운을 만끽했다. 아까부터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나가시고 다른 아주머니가 들어오신다. 자손을 낳고 노동의 수고로 이어지는 삶이 발가벗은 몸뚱이에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모두가 그랬다. 나도 그럴 것이다. 그 노동의 흔적을 지우기라도 하듯 박박 때를 밀어 온몸을 발갛게 만드는 이들의 모습이 곧 나인 것 같아 난 다시 눈을 감았다. 몸을 더 데우고 싶어 열탕에 발을 담갔다. 뭘 섞었는지 몰라도 보리차 색이 나는 물에서 달콤한 향기가 났다. 향기가 몸속으로 스며드는 상상을 했다. 몸을 불리고 나면 제일 먼저 발을 살피게 된다. 굳은살로 무장된 발을 만진다. 어릴 적 엄마와 목욕탕을 오면 엄마는 늘 발뒤꿈치를 문지르는 데 열심이셨는데, 어느새 그게 내가 되어 있네. 보드랍고 하얗던 피부로 말갛게 웃던 아이로 영원히 살지 못하듯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들은 소멸을 향해 가는 거구나. 지난 몇 년간의 감정들이 묵직하게 가슴에 내려앉았다.


세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으로 복직을 한 나의 교직생활은 벅찼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내 옆에서 재잘대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달팽이관을 정상적으로 통과하지 못하고 어지럼증을 일으켰다. 내 손과 발이 조금 더 움직이면 될 것 같은 일들을 눈앞에 두고 때때로 풀썩 주저앉았다. 9살 아이들조차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학부모와의 끝나지 않는 대화에 지쳐갔다. 이제 역량이 안 되는 모양이다. 체력도 안 되는 모양이다. 교직에 오래 못 있을 모양이다. 체념했다. 교사로서의 자존감이 바닥인 채로 전근을 한 게 2022년이었다. 나보다 덩치와 키가 큰 5학년 녀석들을 만나기 전부터 떨렸다.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일까. 무엇을 하기 전부터 내 속은 하나님께 손 내미는 기도로 간절했다. 그렇게 한해를 여러 생각 없이 달린 것 같다. 감사하게도 이번엔 아이들과 참 행복한 한 해를 보냈다. 선생님을 만나 너무 감사했다는 아이들의 인사가 너무 고마웠다. 다시 일어설 힘이 생겼다. 내 육체는 쇠퇴해 가고 가르치는 방식들은 낡았을지 모르지만 내 마음만큼은 넉넉히 아이들을 맞을 힘 말이다. 아, 혼자서 목욕탕을 오니 이런 생각을 할 틈도 있구나. 왠지 자주 오자고 할 것 같다. 목욕탕 물이 좋다고 하니 한번 더 탕에나 들어갔다 와야겠다. 세신실에서 풍겨오는 오이팩 냄새가 향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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