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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J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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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elle J Jun 29. 2024

내 생에 최악의 홈스테이

당신은 카르마를 믿나요?





나는 해외 생활을 하면서 직접 겪은 몇몇 경험 이후에 모르는 한국인들과의 교류를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하고 웬만하면 나와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최대한 만나려고 하지 않는 편이다.




https://brunch.co.kr/@by-neuller/16


지난 글들에서 명시했듯 첫 해외 생활에서 또래 한국인들과의 감정이 별로 좋지 않았고 좁디좁은 한인 사회에서 나는 누군지도 모르고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이 꼭 나를 아는 듯 얘기를 하고 다닌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그래서 나는 해외살이 중에서 커뮤니티에서의 정모나 소모임, 한인 성당 등에 나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독일에 오고 내향적이고 폐쇄적으로 변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아예 모르는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거보다는 내가 직접 얘기를 해보고 어느 정도 파악이 되어서 경계가 풀어진 사람들과 만나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번에 쓰려는 글의 경험 이후에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










내게는 17살에 새 핸드폰을 산 지 3일 만에 놀러 가서 롤러블레이드를 타다가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져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생겨버린 아직도 무릎과 팔꿈치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흉터가 있고 그때 새 핸드폰을 분실한 적이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잃어버린 건 아니다.


그렇게 구른 뒤에 바지가 다 찢어지고 온통 팔과 다리가 피범벅이 되어서 보호소 찾느라고 정신없던 사이에 같이 놀러 갔었던 홈스테이 아줌마가 훔쳐갔었다.


핸드폰 사자마자 잃어버려서 어떡하냐고

관리 사무실에 전화해서 핸드폰 찾아주는 척

난리법석을 쳤었는데 당연히 못 찾았다.


약 1년 뒤 아줌마의 아들이 내가 잃어버렸었던 핸드폰을 갖고 노는 걸 보고 이거 어디서 났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1년 전쯤 줬다고 했다.


나는 그 핸드폰 모델이 처음 나온 날에 구매를 했고 마음에 들었던지라 분실한 난 다음날에 똑같은 모델을 사러 갔을 때에 이미 품절이라서 더 이상 안 나온댔는데..




애초에 이 홈스테이에 들어가게 된 거도 이 아줌마가 내가 원래 들어가려고 했던 홈스테이 아줌마에게 내가 그 집으로 들어가기 싫다고 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그분이 그 말을 듣고 오해하고 내가 그 집으로 이사를 하기 직전에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갑자기 이렇게 되어서 이걸 어쩌나 싶었는데.. 이 아줌마가 자기네 집에 방이 있다고 들어오라고 해서 결국 이 집으로 들어오게 된 거였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분이 우리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그 아줌마에게 내가 그랬다고 이러이러한 얘기 듣고 서운해서 오지 말라 한 거라고.. 좋은 관계이고 싶은데 그 얘기 듣고 나니 마음이 무겁더라면서 설명을 했고 엄마가 나는 그런 소리 한 적이 없다고 해명을 해서 오해가 풀렸다.








아무튼 그렇게 그 홈스테이에 들어간 후에 엄마가 한국에서 과자 같은 택배를 보내줄 때 늘 나에게는 1박스, 홈스테이 집에는 2박스를 보내줬는데도 학교 간 사이에 내 과자들을 훔쳐갔었다.


기분 탓인지 조금씩 없어지는 거 같아서 설마설마하다가 일부러 과자 넣어둔 가방 지퍼를 반 열어두고 가장 위에 올려둔 과자가 뭔지 기억하고 학교 갔다 왔더니 그 과자는 없어지고 가방 지퍼가 완전히 닫혀 있었다.


한 두 번이야 그럴 수도 있지 싶었는데.. 몇 번을 그러니까 우리 엄마에게서 택배를 2박스나 받아놓고 그러는 게 짜증 나서 남은 과자들을 전부 다 학교에 가져가서 내 개인 사물함에 넣어두고 원래 과자가 들어있던 가방 안을 책으로 채워뒀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날 네 과자 좀 먹어보자고 가지고 오라길래 다 먹었다고 했더니 그 많은 걸 어떻게 다 먹냐길래 그냥 학교 갖고 가서 친구들이랑 나눠 먹었다고 하고 말았던 적이 있다.




그 집 딸이 어린데도 체구가 굉장히 큰 편에 속해서 나와 체구가 비슷했는데 내 머리끈이랑 새 옷들을 자꾸 훔쳐가서 자기 딸 방에다 갖다 둬서 외출하면 딸 방에 몰래 들어가서 다시 갖고 오는 게 일상이었다.


그리고 당시 학교에서 정한 규정에 홈스테이는 $700 이상 받으면 안 됐었는데 그래도 한국 홈스테이라고 엄마가 한국 음식 좀 잘 챙겨 달라고 한 달에 $1000 내고 살았는데..

입버릇처럼 거짓말 하나도 안 하고 정말 모든 끼니때마다 하는 얘기가 이거 비싼 거라고... 심지어 너구리 라면 끓여주는 날에도 이거 비싼 거라고 하시던 분..



늘 본인은 아주 너그럽고 쿨한 사람이라고 하던 그분의 홈스테이에서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지내면서 나는 5시 반이었던 귀가 시간에 정확히 딱 3번 늦어본 적이 있다.


왜냐하면 당시에 홈스테이 집에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어서 레포트나 에세이를 써야 하는 경우에 나는 방과 후에 오후 5시까지 문을 여는 학교 도서관 컴퓨터로 과제를 했어야 했다.


아직도 너무 기가 막혀서 세월이 그렇게 오래 지났는데도 내가 늦었던 시간까지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데

(5시 33분, 5시 35분, 5시 38분)

내가 과제 때문에 늦은 걸 뻔히 알면서도

처음에는 30분, 두 번째는 1시간 10분, 세 번째는 1시간 40분 동안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문을 막고 현관문 앞에서 화를 내서 나는 집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가방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현관문 앞에 서서 그 기나긴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 후에 한 번은 귀가시간보다 4분 정도 늦을 거 같아서 서둘러서 귀가하는 길에 조금 늦을 거 같다고 전화를 했다가 별것도 아닌 걸로 전화했다고 전화로 20분 내내 잔소리를 듣다가 집에 도착을 했고 도착 후에도 한참을 더 혼이 났다.


여름에 얇은 끈으로 된 게 아닌 일반 민소매를 입었다가 본인 남편 꼬시려는 거냐고 옷 똑바로 입으라는 소리도 듣고..


엄마와 통화할 때에 계속 안방 전화기로 엿들어서 아줌마가 외출했을 때나 엄마랑 제대로 된 통화가 가능했고

매일 내가 화장실 물 내리는 횟수 확인하고 휴지 얼마나 쓰는지 확인하고

본인 기준에 화장실 자주 가는 거 같으면 가지 말라고 하고

휴지 많이 쓰는 거 같으면 휴지 칸 수 정해주면서 거기에 맞춰서 쓰라고 그러고

샤워 시간 10분 넘기면 빨리 나오라고 나올 때까지 화장실 문 두드리고

빨랫감을 내놔도 본인 기준에 안 맞으면 더 입으라고 하고..









매일매일 저러니 저 때 진짜 너무 힘들어서 정신병 걸리는 줄 알았다.



학교에서는 친한 친구들한테 홈스테이 얘기하면서 매일 울고 자필 유서 써서 학교에 보내놓고 이 집에서 목매달고 죽어버려서 집값 확 떨어뜨리고 귀신 되어서 쫓아다녀 버릴까..라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정말 진지하게 했었다.


이거 말고도 여러 일들이 많았는데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당장은 이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난다.




엄마가 나중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얘기를 해도 다 믿지를 않았던 게 너무 정도가 심하니까 어떻게 사람이 그러냐고 그냥 홈스테이랑 안 맞으니까 그 집 빠져나오려고 오버해서 말 지어내는 줄 알았는데 그 집 아들이 잃어버렸던 내 핸드폰을 갖고 있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이건 내가 오버해서 지어낼 만한 급을 넘으니 그제야 믿으셨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에 있었던 모든 한국인 홈스테이 학생들이 나올 때마다 그 집 부모님들이 전부 한국에서 쫓아와서 대판 뒤집고 나왔다고 한다.




이거 말고 다른 일들도 너무 많은데 그냥 다른 건 모르겠고..


그 당시 홈스테이비로 한 달에 $1000나 받으면서

매일매일 단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돈돈 거리더니 요즘 티브이에 나오고 잘 나가는 그 집 애들 둘이 많이 벌 테니까 더 이상 돈돈 거리지는 않겠구나 싶기도 하고..


그리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나는 그 아줌마에게서 받은 폭언이랑 마음의 상처 때문에 아직까지도 트라우마처럼 가끔 악몽에 시달리고 울면서 일어나고 답답하고 떨쳐내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싫고 짜증 나고 아직도 가끔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고 너무 화가 나는데..


인생은 카르마고 인과응보라고 보통은 업보가 자식한테 간다는데 그 집 애들 잘 나가는 거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가 싶다.




진심으로 내 기억 속에서 없었던 일처럼 싹 다 지워버리고 싶은데 너무 안타깝게도 눈빛 말투 목소리 표정이 다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나는 사람 이름과 얼굴을 남들보다 기억을 좀 더 잘하는 편에 속하는데 보통 때는 괜찮은 이 기억력이 이럴 때는 참 원망스럽다.



저 때의 나에게 돌아간다면 참 마음고생 많았다고 고생했다고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참 눈물 나게 안쓰럽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중 하나인데 어린 17살짜리에게 정말 그렇게까지 하고 싶었을까..


시간이 그렇게나 오래 지났는데도 아직도 생각하면 화가 나고 나이가 들어서 생각을 해보니 어떻게 막내 조카뻘에게 그럴 수가 있는지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더 지나야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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