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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니즘에 이골이 난  돌멩이의 잃어버린 일기장

038. 야반도주 진행 보고

by 연두 돌멩이 Mar 13. 2025

1일 차>

12시 넘어 느지막이 일어났다. 밤새 망할 택배 포장하는 꿈을 꿨다.

내가 도자기를 검수하면 피글렛이 마무리(?)를 하는 기괴한 꿈이었다.

후.. 그리고 늦게 일어나니까 확실히 더 피곤해.

그래도 자발적 백수란 이렇게 좋은 것이다.

아직은 일요일이라 별 감흥은 없다. 평일에 놀아야 기분이 날 것 같아.


피글렛과 검은 코트로 여행 옷을 맞췄다. 거울 앞에 서보니 제법 잘 어울리네.

처음 행선지는 둘 다 안 가본 지역으로 정하기로 했다. 후보지는 제천, 단양, 문경, 영월 중 한 곳.

첫날은 네이버 룰렛을 돌려 정했다. 결과는 충북 제천!

가보자고!가보자고!







# 함께하면 더 좋을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watch?v=FHyvYQbxTmw

<�������� 올드카로 시골길 드라이브 할 때 듣는 플리 - SNAiL SHOP>





차에 짐을 싣고 도로를 달리니 이제야 여행 가는 실감이 난다.

우선 제천 시청을 찍고 달렸다. 일단 청사에 도착하고 나서 어디로 갈지 정하기로 했다.


난 이제는 기역부터 히읗까지 계획 짜서 움직이는 여행은 이젠 못하겠다.

무계획이 더 신나기 때문이고. 우연에서 오는 만족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대하면 실망하기 마련이니까.


제천 시청은 청사를 신축한 건지 시내 외곽지역에 시청이 있네? 아주 빤짝빤짝한 게 딱 새 건물 같다. 관리가 잘 된 건가.


어디로 갈까 찾아보니 가까운 곳에 '의림지'라는 오래된 저수지가 있다.

마침 어디서 많이 들어본 곳인데, 가봐야겠다.




의림지는 한 번쯤 와볼 만한 곳이다.

전시관도 정비가 잘되어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스탬프를 찍으며 즐거운 관람을 했다.

구경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어둑한 곳에서 거대 빈백에 누워 영상물을 감상하는 공간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 편안하다. 여기 누워서 오늘의 숙소를 정하기로 했다. 평일이라 관람객이 많지 않아 가능했다.

현지 주민도, 관광객도 사랑하는 의림지 현지 주민도, 관광객도 사랑하는 의림지 


숙소를 정하고 전시관을 나가 관광지 산책을 했다.

노후화된 놀이기구들을 지나 용추폭포까지 걸었다. 오우 꽤 장엄한걸? 걷는 내내 날씨도 너무 좋았다.

멀리서 풍겨오는 닭꼬치 냄새에 출출해진 우리는 슬슬 다음 목적지로 이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엔 재래시장에서 식사를 할 계획이었다. 의림지에서 나와 시장 근처에 잡은 모텔로 이동했다.

화장실이 투명해서 그렇지 ;; 우리 둘 다 만족스럽게 휴식할 수 있던 공간이었다.

느긋하게 짐을 풀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자 이제 시장으로 가보자! 



정말이지 막걸리 한 잔 쭈욱 들이켜고 싶은 저녁이다.

시장에 가기 전 숙소 카운터에 앉아있는 사장님에게 길을 물었다.


- 제천역 쪽에 한마음 시장이 나은가요? 중앙시장이 나은가요?


사장님은 카운터에서 나와 손짓, 몸짓으로 설명을 보충하며 말했다.


- 한마음은 볼 것도 없어요. 중앙시장으로 가셔요. 그리고 빨간 어묵은 길거리에 있는 거 먹지 말고 시장 안쪽에 있는 곳에서 사 먹으세요.


매운 어묵? 빨간 어묵? 이거 부산에서 시작된 건 줄 알았는데 제천이 원조라고 한다. (무지에서 오는 우연하고도 즐거운 깨달음이 바로 이런 것이겠다.)

시장에 들어가니 곳곳에서 빨간 어묵을 팔고 있다. 인상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의 좌판으로 간다. 식욕을 돋울 겸 2천 원어치를 사 먹었다. 그리 비싸게 느껴지지도 않고 좋다. 특별한 맛은 아니고 보이는 그대로의 맛을 보여준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빨간 소스에 속이 싸해지니 뽀얀 막걸리가 더욱 마렵다.


이리저리 둘러봤는데 문을 닫은 곳이 많다. 흠.. 시장 밖으로 나가 피글렛과 손을 잡고 걸으며 식당 수배를 이어 본다.

해결이 나지 않아 어느 버스 정류장에 앉아 카카오 맵을 켠다. 마침 엉덩이를 따땃하게 데워주는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제천시 훌륭하네

이래저래 저녁 식사 장소를 찾아보지만 역시나 벌써 영업을 마치는 곳들이 많고, 막걸리를 취급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난감하네.. 


핸드폰 속에서 10여 분을 헤매다 결국 보물 하나를 발견한다.


여긴 너무 만족스러운 식사 경험을 느꼈기에 상호명을 남긴다.

이름은 '우성순대'.

시장 내부에 위치해 있다. 붐빌 때는 대기도 해야 하는 맛집이었다.


나오는 음식이나 반찬들이 정갈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막걸리 터는 곳으로는 충분히 흡족한 곳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리를 꽉 채우고 있었고, 외국인도 가족 단위로 와서 식사하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순댓국 하나와 순대곱창 볶음을 시켜서 맛나게 먹었다.

이곳의 온도와 습도, 서비스와 맛까지 전부 좋았다이곳의 온도와 습도, 서비스와 맛까지 전부 좋았다

여기는 제천에 오게 된다면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이다. 무조건!




2일 차 >

막걸리 세 통은 수면 활동에 이롭다.

숙소에 돌아와 후식을 먹고 나서 씻고 둘 다 기절했다.

창문을 열고 잤는데 입이 안 돌아간 걸 보니 방이 참 따뜻했나 보다.

숙소 앞은 왕복 4차선 도로인데, 평일인데도 참 조용하다.

제천. 참 마음에 든다.


잠도 안 오는데 이렇게 된 거 아침 운동을 해야겠다 싶어 자고 있는 피글렛을 두고 홀로 나왔다.

밖에 나오니 서늘하지만 공기가 꽤 맑았다. 달리기 하기 너무 좋은 날씨였다.

운동용 이어폰을 귀에 꽂고선 제천역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5분쯤 달렸을까 자꾸 신호에 걸리니 달리는 재미가 없어졌다. (그냥 저질 체력이라고 ㅎ ㅐ..)

멀리 야트막한 봉우리가 보인다. 저기나 올라갔다가 숙소로 들어가야겠다.


낮은 정상에 오르니 이곳의 이름은 정봉산. 선조들이 의병으로써 외세에 맞서 장렬히 싸웠던 격전지이기도 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제천은 이곳을 포함해 7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다. 제천 시민의 정신적 상징이란다. 이야기를 잘 풀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적인 힘이 있는 공동체는 생명력이 강하다. 그리고 질기다.

제천짱123제천짱123



숙소에서 여유롭게 준비를 마치고 나왔다.

제천에서 떠나기 전에 청풍호를 구경하고 가기로 했다. 여기 케이블카가 아주 그만이란다. 

그전에 밥부터 먹어야지.


간밤의 과식 덕인지 든든한 식사보다는 시원한 국물이 당겨 어느 막국수 집으로 향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와서였을까 막국수는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우리는 기다리겠다고 했고, 30분 정도가 흘러 비빔 하나, 물 하나. 수육 막국수 2그릇을 받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7


여기도 맛이 특이하고(맛있게) 정갈해서 상호명을 남긴다. 가게도 깔끔해서 더 좋았다.

이름은 '제천막국수'.

사장님이 연극이나 성악을 하셨는지 목소리가 대장부다. 부럽네.

여기도 재방문 의사 있다. 역시 어르신들이 많이 찾으시는 식당에는 이유가 있다.




밥 먹고 들른 어느 구제샵에서 / 역시 집사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고양이만 보면 어쩔 줄 모르는 피글렛밥 먹고 들른 어느 구제샵에서 / 역시 집사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고양이만 보면 어쩔 줄 모르는 피글렛


청풍호까지는 거리가 좀 있었다. 식곤증도 이내 우리를 찾아왔다. 일단 주차를 하고 한 숨 때리고 놀기로 한다.

탑승장에 도착하니 역시 평일이라 여유로운 관광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남들 일 할 때 노는 삶.. 남들 놀 때 일하는 삶.. 너무 좋아!!!)

우리는 가장 구석으로 들어가 주차했다. 문을 살짝 열고 시동을 끈다. 기분 좋은 실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손을 잡고 잠시 도란도란 떠들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니 기분이 더 상쾌하다. 이제 기계의 힘을 빌어 청풍호의 풍광을 감상하러 가보자.


매표소 앞에서 표를 할인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한국 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디지털 관광주민증'을 발급받으면 인당 2천 원씩 할인을 해준다고 한다. 개꿀!


입이 심심해서 간식 판매점에 있는 호두과자도 한 봉지 산다. 호두가 참 실하게 들었지만 누가 봐도 이건 오버쿡이다. 이렇게 딱딱한 호두과자는 처음이야.


평일 이슈로 빈 통으로 움직이는 케이블카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우리도 단 둘이서 큰 케이블카를 하나 분양받았다. 낯선 사람과 함께 15분을 이동하면 서로 불편할 텐데 다행스럽다.  


한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리지 않게 중앙에 앉았다. 이윽고 케이블카가 속도를 내자 피글렛이 무섭다며 내게 딱 붙는다. 꽤 겁이 많은 녀석이군. ㅋㅋ


통창으로 만들어진 케이블카라 꽤 스릴감이 있다. 주민들이 일궈놓은 밭, 어로 활동하는 사람들, 어느 공기관의 연수원이 보인다. 케이블카는 점점 더 위로, 정상으로 향한다.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은 이제는 봄이 되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전망대 곳곳을 쏘다니며 우리의 머리카락에, 검은색 코트에 따스한 햇살을 먹인다.


고도가 높아 바람은 좀 차지만 기분은 너무너무 상쾌하다. 이리저리 굴곡진 청풍호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9


눈이 즐거운 풍경을 볼 때

입이 즐거운 식사를 할 때

이 순간 혼자가 아닌 둘이어서 참 감사하다.


혼자 이곳에 왔다면 좀 다른 느낌의 여행을 했겠지.

그런 여행도 즐겁겠지만 나는 아직 그 외로움을 온전히 느낄 각오가 되어있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나는 새로움을 바라고 불분명한 순간을 즐긴다.




아직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는 모른다.

남은 여정이 꼭 지금처럼만 같기를. 



다음 일기에 계속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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