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 퇴사를 앞두고
치과 치료가 끝났다. 어금니 바로 앞니에 금으로 크라운을 씌웠는데, 왠지 그것만으로도 기계 인간이 된 것 같다.
하늘이 감사하게도 내 삶이 계속 이어질 수 있게 해 준다면 앞으로도 치과 방문은 계속되겠지,,
아무튼간에 작년부터 치료를 질질 끌었음에도 신경치료도 한 번으로 끝나고
별 탈 없이 다시 맛난 것들을 먹게 해 준 내 회복력과 내 보험에게 감사를 표한다.
# 함께하면 더 좋을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watch?v=10zxBMvH23s
<부유감(浮遊感) - Niwamori Piano>
- 네, 아뇨. 약속 없습니다. 지금요?? 네 알겠습니다.
퇴근해서 한창 씻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맥가이버에게 전화를 받고 근처 고깃집으로 불려 나갔다.
- 너 마음 확실히 정한 거야? 그러지말구 잘 생각해 봐~ 사장이 나보고 좀 잡아달라는데 아이고 참.. 아 밤에 잠을 못 잔데요! 글쎄~
맥가이버 님까지 나서서 부담스럽게 왜 이러시나..
푸바오가 얘기를 했는지 작업장 대부분이 내 퇴사 소식을 알고 있었다.
저는 지금 집도, 절도 없지만요. 이미 마음 굳혔습니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출근하는 하루하루가 고통이랍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이 배에서 내려야겠습니다.
나의 도자기 인생에 관해서는, 여러분들께서야 물론 알 바 아니시겠지만.. 조금 늦어지긴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내 도자기를 들고 세상에 나오렵니다. 방법이야 어떻게 됐든요.
퇴사 날짜가 눈앞에 보인다. 한 달을 어떻게 또 버티지 싶었는데.
평소와 달리 칼! 퇴근해서도 밀려있는 일기와 소설을 쓰지 않고 그냥 지냈다.
생각 없이 놀고 쉬는 밤 몇 개, 맥없이 지쳐 쓰러졌던 밤 몇 개, 피글렛과 자기 전에 하는 통화 몇 개가 합세하니 그런대로 나의 2월은 빠르게 지워져가고 있다.
낮 동안의 일터에서는 뭐, 말 그대로 고통스럽다.
직업적으로 내일의 희망과 비전 없이 돈벌이(카드대금 납부)를 하기 위해 (그저 돈 때문에 바로 퇴사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인내만 하면서 노동을 한다는 건 정말 정말 꽃 같은 일이다. 요 몇 년 전의 내가 그랬듯 또다시 먹고, 자고, 싸고, 일만 하는 소가 되어버렸다는 걸 느끼게 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일들은 거의 끝이 보인다. 오늘은 부산에 도매 납품이 있어 20박스 가까이 되는 그릇들을 용달에 실어 보냈다.
그제 어려 보이는 여자분이 신입으로 들어오셨는데, 이 사람 없었으면 발주 기한을 못 맞췄을 거다. 아휴.. 지겨워..
푸바오는 이 사람에게 인수인계를 하라고 했다.
그 분과 처음 대화를 나눴을 때 그분이 말했다. 원래 제빵 하던 사람인데 손목이 안 좋아져서 쉬고 있는 거라고.
여기는 손목을 갈아 넣는 곳인데.. 애초에 인수인계를 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퇴근 무렵 나는 푸바오에게 말했다.
- 그분 뭐 별 말 없던가요? 무슨 일 하는지도 모르고 왔다던데. 오늘 포장하는 거 보니까 울상이던데요.
푸바오는 말했다.
- 그런 게 어딨어. 시키면 하는 거지 뭐.
바오 씨 당신도 참 절레절레입니다. 그 여자분은 이번 주 금요일까지만 하고 그만두겠다고 한다.
아무튼 일주일 동안 고마웠어요! 빵순양.
오늘내일은 출장 행사 준비를 하면 될 것 같다. 시간이 후루루룩 가겠지.
그러다 정신 차려보면 행사장에 서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될 것이고, 그 순간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릇을 팔고 있을 거야.
드디어.. 끝이다.
작업장을 떠나면 야생의(?) 돌멩이로서 3월을 채워가야 한다.
일단 부모님이 걱정하는 건 싫기에 일단 조용히 있으려고 한다. 퇴사를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진 모르지만.
뭐 종종 아버지가 그걸로 어떻게 먹고살려고 하냐고 걱정했는데, 오히려 좋아하려나.
18년도에 전역 직후, 그간 모은 돈으로 이곳저곳 쏘다닌 이후로는 일을 쉰 적이 없던 것 같다.
물론 내가 근면성실한 자식은 아니고, 내 씀씀이가 기록된 카드값을 매달 갚아야 하니까 쉼 없이 일을 했던 거지만.
이유야 어쨌든 이번에 퇴사하면 좀 쉬고 싶기도 하다.
다시 일을 구하는 그 공백의 시간을 내 지갑이, 내 정신이 버텨줄 수 있을까 걱정스럽긴 하지만.
마침 4월 중순에는 중국을, 5월 초엔 몽골에 가기로 해서 어디 직장을 들어가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그래서 그냥 일일 알바 같은 걸 하면서 5월까지 버텨볼까 싶다.
그러면서 내 본인만의 것들을 단련하고. (평화로운 일상보다 더 힘들 걸 알고는 있지만..)
먹고살기 위한 다양한 일상을 보낸다면 내 일기가 더 재밌어지긴 하겠네.
전역 직후에는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괜찮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물론 취직 생각은 전혀 없이 허황된 꿈이나 꾸고 있었지만.
그때의 꿈이 일종의 정신병 같은 게 아니었을까라는 결론을 내리고 나서부터는 일단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아야 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서 당연스레 자소서와 면접으로 하루를 지워가는 거지 같은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몇 개월을 보내고 나니 뼈 아픈 결론만 남더라.
'지금도 별 볼일 없이 후진 인간인데 이건 뭐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게 되면..
아무리 노력한들 경쟁력 없는 싸구려 부품이나 되어버리겠구나. 결국엔.'
그 깨달음 이후, 나는 그냥 내 안의 소리를 듣고 움직이기로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대략 7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오늘까지의 내 삶이 순항 중인지는 모르겠네.
지금 내 삶의 지향점은 글로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간 나는 하루키처럼 지독하지 못했다. 재즈바를 운영하면서도 틈틈이 글을 퇴고한 작가 지망생이었던 그와 나는 달랐다.
나는 하루종일 노동에 치어 사는 것도 서러운데, 졸리고, 피곤하고, 술 고픈데 아득바득 실력을 갈고닦는 밤 시간을 불평하며 보내왔다.
글로 먹고살 수 있는 삶으로 향해 가기 위해서 이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키보드를 불태워 봐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진짜 더 늦기 전에.
그렇지 않으면 어제와 오늘의 내가 그랬듯 소처럼 먹고 싸고 자고 일만 하다가 자기 비하에 빠져 죽어갈 것이다.
자자, 움직이자.
- 빠른 시일 내로 내 고정지출 파악해서 관리하기.
- 내가 달에 얼마를 벌어야 하는지 판단하기.
- 왜 그만큼 벌어야 하는지 나와 충분한 토론하기.
- 글쓰기, 영상 편집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기.
일을 구할 때?
- 내 관심사와 맞는 일을 구하기.
- 안 해본 것 하기. 수당보다 경험을 우선시하기 (당장 배가 고플지언정.. 막일/생동성/보험 같은 거 제외)
- 내 판단을 열렬히 믿고 지지하고 응원하기.
아우 그것도 좋은데.. 일단 자자.
일기 하나를 2주를 쓰고 앉았네,,
아무튼 고생 많으셨습니다. ~_~
출처
- 대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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