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 왜 그래 정말
출장이 끝나고 돌아오니 작업장 사람들이 좀 바뀌어 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닉네임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 이번에도 깝깝한 징징이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이 일기장을 입수하신다면
들여다보는 동안 부정적인 마음이 전염되지 않도록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함께하면 더 좋을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watch?v=ZoBIvVxxPUM
<조용한 독립 서점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플레이리스트⎹ relax playlist ⎹ - 블루플리>
남자 두 분과 여자 한 분이 새로 오셨고 온화할모님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만족스러운가요? 꽃분할모님.
새로 온 분들께 짧게 인사를 드리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나의 노동을 크게 덜어주던 요주의 인물, 깔깔이 형님도 오랜만에 만났다.
- 아유, 오셨어요? 허허
얼굴이 더 까매진 것 같다. 생각보다 힘들었나 보다. 여기 돌쇠 역할 참.. 그렇죠..?
다시 작업장에 복귀한 지 3일 차.
깔깔이 형님은 내동 갑갑하고 뚱한 표정으로 일을 했다.
그러다 종종 짬이 생기면 내게 커피맛 사탕을 쥐어주며 한 대 피고 하자고 했다.
오늘도 숨 돌리는 시간이 왔다. 문득 깔깔이 형님을 바라보니 오늘은 뭔가가 툭. 끊어진 모습이다.
내 눈빛을 읽은 듯 이윽고 그가 말했다.
- 실장님. 저는 그만해야 될 것 같애요. 저희 어머니가 투석하셔야 해서 참..
이 세상엔 마음 쓰린 일이 왜 이렇게 많을까. 아직 내가 다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다.
형님이 진갈색의 담배 필터를 씹으며 말했다.
- 그건 그렇고 여기 그릇 종류도 너무 많고. 아휴 젊은 사람들이 와서 해야지 나 같은 사람은 못 해!
또 이거 하다가 저거 하다가 하나도 제대로 못 끝내고 이게 뭘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안 그래요?
'알다마다요. 제가 1년을 그렇게 일하니까 주중이 참 꽃 같더랬죠.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는 사람이 구해지면 바로 나가겠다고 한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파이팅 해봐요 우리.
화요일 저녁. 푸바오는 나를 붙잡았다. 쿨한 척하는 찐따같이.
- 나는 네 선택을 존중해. 그치만 한 번은 잡아야 예의잖아? 임금도 다시 얘기해 보고 인력도 충원해 줄게. 너 할 일 조금 줄여서 야간에 네 작업하면 되지 않니? 어쨌든 너 인생 네가 사는 거니까. 너 선택 존중해. 그래도 금요일까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얘기해 줘. 사장이 초짜라 에휴..
- 저기요. 돈 벌 거였으면 여기 올라오지도 않았어요. 눈에 훤하다구요. 지금보다 더 밖으로 나돌면서 그릇 팔고 택배나 싸다가 울화통 터질게.
나 당장 그만하고 싶은데. 매일같이 이렇게 한숨 쉬면서 하루 끝내기 싫은데. 아직 바쁜 게 눈앞에 보이니까 참고 꾹꾹 일하고 있는 거라고요.
라고 말 했으면 시원하니 참 좋았겠지만 현실은 이렇게 막댕이로 살 순 없으니까.
-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괜히 여지를 주고 싶지는 않아요. 3월 초에 그만두겠습니다.
요즘도 당연히 그렇듯 쌓인 주문 건들을 정리하고, 출고 준비를 하면서 다 같이 분투하며 CS 처리를 하고 있다.
매일같이 팀 모두가 극 고통을 받고 있다. 행사 끝나고도 쉽지 않은 하루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배송이 잘못 가는 건, 그래 그렇다 치자. 더 얹을 말도 없이 우리가 문제인 거니까.
더 중요한 건 내가 돌아오고 나니 그릇 포장 방법이 딱 봐도 위험하게 바뀌어 있었다는 거다.
고객에게 이런 말도 들었다.
'이건 택배사 잘못이 아니라 애초부터 포장이 잘못된 것 같다. 누가 도자기를 이런 식으로 싸서 보내냐.'
평소 포장이 아무리 많아도 달에 파손 CS 가 2~3건 있을까 말까였는데 지금은 4번 보내면 한 번은 깨졌다고 연락이 온다.
죄송하다죄송하다죄송하단 말이 추천 검색어 나오듯 줄줄- 샌다.
행사장에 온 적도 없는 CS 매니저 두 분은 이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심장이 떨리고 잠도 잘 못 잔단다.
푸바오는 다 나한테 왜 이래 라며 (아 진짜 박치기를 그냥) 하염없이 한숨을 쉬며 머리를 싸맨다.
나는..... 아 진짜 X 팔려서 정신을 못 차리겠다.
온라인 판매 전문이고, 해외배송도 종종 하고 있고, 요즘 협찬도 많이 들어가고 있고 온갖 이빨을 까며 (물론 사실을 기반으로 한..) 열심히 물건 팔아다 놨는데 이게 지금 무슨 광경인지.
올바른 의사결정을 위한 물품 재고 파악은 이미 내 손을 떠난 지 오래고 눈앞에 쏟아지는 물줄기를 틀어막기 급급하다.
그렇게 냄비 째로 러그에 쏟아진 라면 치우는 마음으로 하루 종일을 구르다가 7~8시 되어서야 퇴근.
남은 한 달 끝까지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일하고 떠나려고 하는데..
당최 하루에 한숨을 어찌나 많이 뱉는지..
쉽지가 않네요 정말.
~_~ 휴.
고생 많으셨습니다.
출처
대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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