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 피글렛과의 출장 쫑파티
몇 달을 미뤘던 치과 치료를 드디어 하고 왔다.
신경치료가 걱정하던 것보다 비싼 건 아니구나. 씌우는 게 비싼 거지..
통증도 생각보다 없어서 놀랐다.
다만,, 와 씨 이 갈리는 냄새도 냄샌데, 무슨 오징어 썩은 물 같은 거를 계속 뿌리나. 이게 약물인가? 메스꺼워서 토하는 줄 알았네.
씩씩한 어른 되고 치과 다녀서 다행(?)이다.
어릴 때 치과를 다녔다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공간은 두 말할 필요 없이 치과가 되었을 것이다.
작년 가을에 치아 보험을 타먹어서 이번에 보장이 적어지거나 못 받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최대한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완전 보장 기준은 이렇다. 가입한 지 1년 넘어야 하고, 이전 보험금 지급일에서 90일이 경과해야 한단다.
그런데 난 보험 가입 한지도 1년도 넘었고, 지난번 보험료 받았던 날에서부터 벌써 130일이나 지났다!
또 몇 십만 원이 깨지겠지만 빡빡한 삶에서 참 다행인 일이다.
집에 돌아왔다. 씻고 나오니 배가 너무 고픈데 병원에선 마취가 깨면 밥을 먹으란다.
이 안 아프고 약 안 먹어도 되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지만,,
피글렛에게 물어보니 상관없다고 한다.
자기도 마취 안 풀렸을 때 밥 먹어본 적 있다고.
그쪽은 오늘 저녁밥으로 뭘 드시냐 물어봤다.
오늘 새벽에 마라탕을 시켜 먹었다는데, 저녁으로 또 마라탕을 시켰단다.
이 사람아!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왜 그러는 거야!
#함께하면 더 좋을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watch?v=LC5IpUxKjyo
<노을 보면서 듣는 몽글몽글 일렉기타 playlist (cover) - Doridol2>
오늘의 일기 요약
매일 같이 서울에 출장 나가는 건 정말 쉽지 않았지만, 피글렛과 짬 날 때마다 나누던 대화는 가뭄에 단비처럼 소중했다.
복작한 사람들과 우악스레 진열된 갖가지 상품들.. 그들이 넘실대는 로비를 멍하게 바라보며 나눴던 평범한 대화들.
이 시대, 이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도 나눌 수 있던 시간. 난 그녀와 만날 시간이 빨리 오길 바라기도 했다.
또래와 한참 동안을 같이 일한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서울 자취 시절, 빌딩 내부 청소를 할 때 이후부터 지금까지
최소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 분들과 부대끼며 일해왔으니까.
푸바오가 알음알음 행사처의 근무 경력자를 수소문하다가 연이 닿아 이 행사장까지 오게 되었다는 피글렛.
그녀와 얘기를 나눠보니 마침 동향 사람이었다. 일반인보다 군인이 더 많은 곳이라 밖에서 동향 찾기 쉽지 않은데 신기하네.
피글렛과 나는 두 살이 차이 났다.
내가 중학교 3학년 일 때 그녀는 맞은편 학교의 신입생이었던 것.
어쩌면 중간에 있던 그 분식집에서 마주쳤을 수도 있는 그런? 삶의 한 시기에 그리 멀지 않던 곳에 있던 사람.
서로 추억 속에 있는 장소, 버스 노선 따위의 대화들을 나누며 그녀와의 마음의 거리가 꽤 좁혀지게 되었다.
역시 건설적이지 않은 이런저런 시답잖은 얘기를 해야 현장에서 시간이 잘 간단 말이지.
그러나 드라마는 평온하기만 해선 재미가 없다.
폐점 시간이 그리 멀지 않은 어느 저녁이었다.
어떤 까탈스러운 고객의 이런저런 요구를 경력자인 그녀가 나서서 해결해 보려다 적지 않은 돈이 펑크가 나게 되어버린 것이다.
사건 이후 밥도 안 먹고 한참을 멍하니 있던 피글렛은 그제야 밝은 얼굴로 말했다.
- 실장님, 방법을 찾았어요. 제가 현금으로 메꾸면 되겠네요!
나는 고개를 절레하고 물었다.
- 아니, 왜 돈 벌러 와서 일당보다 많은 금액을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거예요? 안 돼요 그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방법이 없다.
이 상황을 바로 잡으려면 문제의 고객을 붙잡고 결제 취소를 하던지 해서 해결을 해야 하는데
고객은 우리의 부족한 응대로 이미 10여 분을 기다리다가 화가 나서 가버렸고, 이젠 어디서 찾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인걸.
아니 그래도.. 그런 상황이지만 혼자서 다 짊어지고 가겠다는 피글렛의 말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녀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나도 여기 결제 시스템을 잘 몰라서 그녀가 맡아서 했던 건데. 내 잘못도 분명 있다고 생각했다.
그땐 내 통장엔 13만 원 밖에 없었지만,, 둘이서 힘 합쳐서 메꾸는 걸로 그녀를 잘 설득하고 이 사건을 종결시키기로 했다.
뭐 후회는 없다. 돈보다 중요한 건 세상에 너무나 많다.
이 일이 있고 나서 피글렛에게 뭔가 측은한 마음이 든 것 같다.
챙겨주고 싶다던지, 잘 됐으면 좋겠다든지 그런 느낌..? (짜식 >_<)
그리고 그다음 날, 고기 불판 모양의 천장을 보고 무심코 던진
고기 먹고 싶다는 내 혼잣말에 그녀가 반응했을 때,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 우리 행사 끝나고 고기 먹어요. 고생 많이 했으니까 제가 쏠게요.
아무튼 뭐.
그렇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종종 시간이 나면 보기로 했다. (그게 이번 주말이다 >_<)
삼십 살 먹고 서로 괜히 막 마음 떠보고 그러지 말고 확실하게 노선을 정해서.
만날천날 죽을 상으로 징징거리는 얘기만 일기로 남기면 너무 슬프니
앞으로는 이런 몰랑한 얘기들도 담을 수 있는 2025년이 되었으면 참말로. 바란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습니다.
~_~
출처
1. 대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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