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 해외 도피 1회 차 진행 보고
아무리 여유 부리면서 놀러 다녀도 삶에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정신 똑띠 차리고 해야 할 것들은 꾸준히 지속하자.
그래야 더 많이, 더 자주 놀러 다닐 수 있게 될 거야.
# 함께하면 더 좋을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watch?v=oovbDy30-3s
<matcha. - ggg.>
먼저 안전하게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주신 친절한 대만분들과 서비스직 종사자분들, 낯선 여행자들, 그리고 동행자이자 투자자인 자나스 씨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얼른 일 해서 여행비 갚을게!♥)
첫 번째 해외도피처는 한국보다 아래쪽에 위치한 타이완(대만)이다.
어쩌다 보니 타이완은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다.
대학교 학부 시절 단체 여행이 처음, 전역 후 고등학교 친구들과 갔던 것이 두 번째, 그리고 이번 중부 도시 타이중 여행이 세 번째이다.
일주일 전, 급작스럽게 정해진 여행지이지만 타이완에서의 경험은 항상 좋았기 때문에 기대가 됐다.
해외여행은 6~7년 만이다.
뭐가 그렇게 정신없이 나를 몰아세웠을까. (근데 대체 돈은 다 어디에 쓴 거야?)
'나도 남들처럼 해외여행을 가야만 해.'라고 목멜 것은 아니지만,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은 정말 정말 가치 있는 일인데.
앞으로는 괜찮은 항공권이 있다면 짬을 내어 시간을 보내고 와야겠다. 먼저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일을 해야겠지.
자, 갈 길이 멀다! 3박 4일의 본격적인 여행 일기 드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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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차. 타이중 시내 탐방
2일 차. 대만 국민관광지 탐방 -호수. ver
3일 차. 대만 국민휴양림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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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어느 날.
새벽같이 일어나 출국 준비를 해야 했기에 비교적 공항과 가까운 곳에 사는 동행자 자나스 씨 집에서 하루 신세를 졌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9시경 이륙 예정. 출국 2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하기에 여섯 시에는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오늘부터 해외에서 '노는 날'이기에 역시 어렵지 않게 잘 일어났다.
오랜만의 해외여행이지만 여전히 감흥이 없다. 출국 심사를 해야 정신이 들려나.
우리는 인천 2 터미널에서 출발한다. 와.. 출국장이 사람들로 바글바글. 미리 공항 도착하지 않으면 정말 큰 일 나겠구나 싶었다.
약간의 정체가 있었지만 다행히 편의점에서 아침도 사 먹고 충분히 정비를 한 뒤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1일 차 타이중 시내 탐방
타이중까지 두 시간 반 정도의 비행시간이 소요되었다. 시차는 대만이 한 시간 느리다. 착륙도 잘했고 입국 심사도 별 일 없이 통과했다.
잠시 바깥을 나가본다. 아아, 날씨가 너무 훌륭하다. 후덥지근한 느낌도 없다. 그냥 시원하다. 밤에는 겉옷을 걸쳐야 할 것 같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한 시간 정도 걸렸을까. 가는 동안 이국적인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었다. 번체자가 적힌 간판들, 부렁부렁 소리 내며 달리는 스쿠터 행렬, 특이하게 생긴 가로수와 야자수들. 그래, 나는 지금 대만에 있다.
이윽고 역사가 깊어 보이는 어느 건물 앞에 내렸다. 1일 차 숙소는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나온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미리 맡길 수 있는지 물어본다. 오랜만에 쓰는 중국어에 혀가 꼬인다. 하하.
첫끼는 우육면으로 선택했다. 현지인들만 찾는 동네 식당이었다. 내 혀는 중식을 즐길 수 있게 패치가 되어 있는 상태라 맛있게 잘 먹었다. 여행하는 3일 내내 느낀 것은 한국 음식이 오히려 더 자극적인 것 같다는 거다. 우리네 외식업은 확실히 이전보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맛으로 변한 것 같다.
밥을 먹고 나서 버블티를 최초로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춘수당'을 찾아 한 잔 했다. 가게는 아담했다. 맛이 굉장히 안정적이었고 잔이 예뻤다. 현지인들은 식사를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직 한국에서는 카페에서 볶음밥, 국물요리 등을 먹는 경우는 흔치 않아서 신기했다.
우리는 버블티를 해치운 뒤 가게에서 나와 건너편 도보에 앉아 잠시 햇살을 즐겼다.
이후에는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서울 성수동의 카페들처럼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카페 겸 디저트샵 두 곳을 방문했다.
카페 탐방을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꽤 흥미로웠다. 남자랑 말고 사랑하는 사람과 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ㅋㅋ
내일부터 차량 렌트가 예약되어 있기에 기념품을 미리 사놓기로 정한 우리는 오래전 한국에서는 발을 뺀 까르푸를 가기로 했다.
아, 그전에 타이중 기차역을 구경했는데 거기도 참 좋았다. 기념품 샵에서 팔던 과일 아이스크림 맛이 아직도 생각난다.
해외에서 가장 재밌는 것 중 하나가 마트 탐방인 것 같다. 이 나라 사람들이 뭘 먹고, 뭘 쓰고 사는지 알 수 있어서 재밌다.
까르푸는 24시간 운영을 한단다. 여기는 꽤 큰 규모의 마트들이 대부분 24시간 운영을 하고 있었다. 날이 더워 야간 생활을 많이 해서 그런가?
나는 누가크래커, 금문고량주를 조금 샀다. 돌아가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주어야지.
양주 가격이 참 괜찮아서 자나스는 술을 여러 병 샀다. 그가 항공사에 문의해 보니 기내 반입은 150ml가 넘지 않는 술만 가능하고, 나머지는 위탁수하물로 맡겨야 하는데 알코올 도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략적으로 5L까지 사 갈 수 있다고 한다. (항공사마다 규정이 다를 수 있으니 꼭 확인해 보고 구매하는 게 좋겠다.)
숙소 체크인 시간이 됐다. 무겁게 가방을 채운 우리는 일단 숙소로 돌아갔다가 저녁 시간에 야시장을 찾기로 했다.
붕 뜬 시간에는 뭘 했을까?
이거 정말 기분이 째진다. 해외에서 하는 달리기라니!
마침 달리기를 좋아하는 둘이라 근처 공원에서 5km 정도를 뛰고 나서 정비 후 야시장에 가기로 했다.
금방 옷을 갈아입고 타이중 공원으로 향했다. 시내에 차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륜차 이용량이 원체 많기 때문에 시내는 온통 매연 냄새가 그득하다. 공원 안쪽으로 뛰지 않으면 목이 아플 정도라 크게는 못 돌고 짧은 코스를 반복해서 뛰었다. 땀이 줄줄 새지만 바람도 시원하고 기분은 날아갈 것 같다.
숙소에 돌아와서 여유 부릴 시간은 없었다. 샤워를 하고 바로 출발해야 온전히 야시장을 즐길 수 있기에 빠르게 외출 준비를 했다.
해외여행에서의 낭만은 달리기 말고도 또 있다. 바로 자전거 타기.
'Ubike'라고 서울의 따릉이 같은 것이 있는데 승차감은 UBike가 더 좋았다. 대여도 어려운 편이 아니다. 야시장까지 거의 40분 가까이 달려야 하는 거리여서 체력적인 부침은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야시장까지 자전거로 간 게 너무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대만이 인도에서 자전거 타기는 조금 애매한 환경이라, 오토바이 도로를 함께 달리는 경우가 많다. 위험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전문 배달선생님들의 곡예 운전이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에 비해, 대만의 이륜차는 남녀노소 모든 이의 삶과 함께하는 이동 수단이라 그런지 안전하고 매끄럽게 도로를 탈 수 있었다. 무엇보다 타이중의 밤 풍경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눈에 담을 수 있었기에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자전거를 빌려서 이동할 것 같다.
열심히 발을 굴려 드디어 대만에서 손에 꼽는 크기의 거대 야시장인 '펑지아 야시장'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나서 일단 맥주부터 한 캔 때려 마셨다. 우리는 중요한 경기를 앞둔 선수처럼 마음을 비장하게 먹고 야시장 안으로 향했다. 소시지, 주유소 칵테일, 어묵탕 등등.. 대부분의 음식들이 맛있었다. 알고 보니 '나 혼자 산다'에도 나왔던 야시장이라고 한다.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왔는데 유명한 곳이었다니. 이럴 때 또 기분이 좋아진다.
여기서 그 악명 높은 두리안을 처음 경험했다. 냄새는 그렇게 심하진 않았다. 숙성된 망고에서 나는 가스향 정도랄까?
맛은 어떨까 한 입 베어 무니 이게 웬걸? 양파와 감자? 고구마? 를 갈아서 샐러드처럼 만든 맛이라고 해야 할까. 왠지 쌀밥 생각이 났다.
매체에서 처럼 그렇게까지 혐오할 과일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어느 어묵탕 집의 좌판에서 야시장을 돌며 사온 각종 음식들을 깔고 앉았다. (여기는 남의 음식 가져다가 같이 먹어도 별 신경 안 쓴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과일인 '석가'와 '찹쌀 선지'? 같은 것들을 먹었다. 금문고량주도 한 병 꺼내 컵 대신 수저와 뚜껑에 따라 마시며 즐겼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야시장의 향기에 젖어가며 1일 차의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2일 차 호수 관광지 탐방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거리에서 사 온 간식거리들과 편의점 현지식으로 아침을 먹은 뒤, 근처 스타벅스에서 콜드브루 두 잔을 샀다.
아주 기분 좋은 출발이군.
우리는 차량을 렌트해서 움직이기로 했다. 남은 2, 3일 차 일정은 교외로 이동할 참이라 주어진 여행 시간을 최대로 쓰기 위함이었다.
해외에서 운전이라니!! 한국에서 여행 준비를 하면서부터 너무 신이 났다. 나는 운전하는 걸 좋아하기도 해서 더 기대가 됐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져버리고 말았다.
국제운전면허증 (ICP)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운전면허증 뒤에 영문으로 된 거 발급받으면 된 건 줄 알았지..
그럼 그건 대체 어디에 쓰는 건데.. (알아보니 아직 허용 국가가 계속 추가되는 상황이라고 // 그래서 여행지 해당 사항 꼭 알아보고 필요할 경우 미리 만들어서 가야 한다.)
나는 현지 렌트업체 직원에게 방법이 없겠냐며 양해를 구했지만 적법한 과정을 통과하지 않은 우리가
운전 중 문제가 발생할 시 현지 렌트 업체도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고 했다.
방법이 있겠나.. 그냥 차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중국이나 동남아 어디보다는 법의 힘이 강한 나라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간 공부해 온 대만 운전 방법도, 이틀 치 렌트 비용도 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나 같았으면 16만 원 정도 되는 렌트비를 '멍청비용'(자신의 무지로 벌어진 일를 수습하기 위해 들이는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했겠지만, 동행자 자나스 씨는 어떻게든 상황을 바로 잡으려는 사람이었다. 우리의 실수로 벌어진 상황이지만, 렌트 어플과 현지 렌트사를 오가며 노력했고, 결국 전액 환불을 받아냈다! 불행 중 정말 정말 다행이었다.
우리는 정신줄을 잡고 다음 목적지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2일 차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지만 어쨌든 다음 일정을 시작했고, 약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시간 동안 3일 차 일정까지 이동 계획을 짤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
정말이지 계획 짜기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여행 시간은 한정적이기에 짬짬이 이국적인 대만 중부의 풍경을 힐끔거리며 추후 이동 계획을 짰다.
* 아무래도 해외에 나가면 구글맵을 많이 쓰게 될 텐데 대만에서 사용해 보니 구글맵 교통정보를 100% 신용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없어진 노선도 있고, 소요시간도 엉망이라 꼭 현지인에게 교통정보를 교차 검증 해보기를 추천한다. 대부분이 친절하니 얼타고 있는 관광객을 잘 도와줄 것이다. 버스 도착시간은 아래 어플을 활용하면 좋다. 실시간으로 타이중 버스의 위치를 보여주는 어플이다.
곡절 끝에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도착한 곳은 일월담이라는 관광지였다. 이곳은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고산지대의 호수 관광지로 장제스의 어머니를 기리는 츠언탑, 서유기의 삼장법사를 모시는 현장사, 대만섬의 오래된 주인인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 볼거리 많고 풍광 좋은 곳이다.
애매랄드 빛 호수에서 페리와 케이블카, 자전거를 타며 즐길 수 있는 만족도 높은 곳이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몇 해 전부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 같았다.
우리는 앞선 사고(?)로 인해 늦게 도착한 덕에 케이블카는 타지 못했다. 케이블카를 타야 소수민족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아쉽다.
그리고 2일 차 역시 자전거를 타고 호수 변을 돌 계획이었는데 그것도 못 할 뻔했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던 것이다.
(이래서 무계획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어느 정도 여행 관련 정보를 잘 갈무리하고 있어야 하는구나.. 놓치는 게 너무 많아진다.)
힘들었는데 자전거 못 타서 아쉽지만 그래도 잘됐다며 일찍 쉬려고 돌아가는 길에 지나가던 우리를 본 자전거 렌털샵의 직원이 우리를 다시 불렀다.
그냥 해 질 때까지 편하게 타고 자기 가게 앞에만 잘 세워놓아 주라며 배려를 해준 것이다. (대만 사람들 너무 친절해.)
2일 차 자전거 타기도 정말 정말 행복했다.
아침부터 일월담을 충분히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조급한 마음으로 호수를 둘러봤기에 추후에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다시 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끝장나게 자전거를 타고나서 저녁으로 뭘 먹을까 돌아다니는데 끌리는 곳이 없었다. 그러다 여기 소수민족식 세트 음식을 파는 곳을 찾았는데, 마침 우리가 머물던 숙소에 딸려있는 식당이었다. 그냥저냥 맛있게 먹었지만 살짝 아쉬웠다. 편의점에서 뭘 좀 더 사서 술 한 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저녁상이었다.
자나스는 식당에서 또 빛을 발했다. 이곳은 서비스비를 10% 지불해야 하는 레스토랑이었다. 자나스는 종업원에게 우리가 여기 숙소에 머물고 있는데 따로 우대사항이 있는지 물었다. 갓난아이를 업고 일하는 젊은 종업원은 투숙객은 서비스비를 따로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이런 거 물어볼 생각조차 못했는데 그에게 하나 또 배웠다!
우리는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바로 앞의 편의점에서 숙소에서 먹을 술안주와 내일 있을 트래킹에 대비한 식량들을 사서 복귀했다.
개운하게 씻고 나와 테라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호수의 밤공기와 함께 우리는 취해갔다.
3일 차 원시림(?) 하이킹
풍광이 좋은 곳에서 자니 숙취도 없네. 여섯 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3일 차 일정을 시작했다.
나는 사실 3일 차 일정을 가장 기대했다.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걸어라 돌멩아'의 첫 해외 촬영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의도했던 영상 콘셉트 상 날씨가 꾸리꾸리하고 안개가 끼길 바랐었는데 (전설의 고향 느낌으로 영상을 찍고 싶었다.) 의도치 않게 날씨가 너무 맑아서 영상이 재밌을지.. 걱정이 된다. 그래도 해외 촬영의 위대한 첫 시작이니 소중히 작업해서 올려봐야겠다.
일월담에서 버스를 타고 더욱더 깊은 산간 지역으로 가야 한다. 우리의 목적지는 시터우.
마음 같아서는 이 기회에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원숭이들을 마주하는 하이킹을 하고 싶었으나, 여건이 되지 않아 행선지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해발 1500m가 넘는 산간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야자수에서 대나무로, 대나무에서 침엽수림으로 식생이 변해갔다.
여기는 한국인 여행객을 단 한 팀만 만났을 정도로 아직은 현지인들이 더 많이 찾는 지역이었다.
돌아가는 차편의 압박으로 일단 멀리 떨어진 '삼림계'라는 곳부터 가려고 했으나, 우리가 알아본 버스 편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다. (이때부터 시터우 터미널의 할머님이 우리를 계속 도와주었다. 짐도 무상으로 맡겨주시고. 현지인들도 줄 서는 법부터 해서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지 모른다. 감동 그 자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시터우 터미널 바로 앞에 있는 '자연교육단지'로 먼저 발길을 돌렸다.
자연교육단지는 엄청나게 큰 수목원이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었고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았다.
타이중을 여행한다면 한 번쯤 들러봐도 좋을 곳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기서 운 좋게 원숭이도 볼 수 있었다.
자연교육단지에서 나와 삼림계로 향했다. 여기 대표 볼거리는 홍룡폭포. 이건 뭐 무협지에 나오는 수련 장소가 따로 없다.
삼림계도 꼭 가보시길 바란다. 가셔서 여유롭게 곱씹고 오시길 바란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망우삼림'도 근처에 있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다시 시터우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 진짜 열심히 살아서 느긋하게 여행 다녀야지..! 너무 아쉬워라..
다시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 시터우로 돌아왔다.
타이중 시내로 돌아갈 때까지 시간이 좀 남는다. 우리는 터미널 근처의 요괴마을을 마지막으로 구경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요괴마을은 규모는 작지만 일본풍의 분위기를 잘 조성해 놓은 곳이다. 사진 찍기도 좋고 아이들도 좋아할 관광지였다.
여기도 안개가 싹 껴주었으면 더 재밌었을 텐데 날씨가 너무너무너무 맑아서 아쉬웠다.
우리는 반쯤 혼절한 상태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타이중 시내로 향했다.
중국 노래를 들으며 꾸벅꾸벅 졸다가 타이중의 노을을 보고 정신이 들었다.
어리벙벙하게도 내려야 할 기차역이 한참 멀었는데 사람들이 막 내리는 걸 보고 우리도 따라 내렸다.
잘못 내린 곳도 기차역이긴 한데 우리로 따지면 KTX가 서는 고속철도역인 듯했다.
우리는 아직 택시 타본 적이 없으니 경험 삼아 숙소까지 택시를 타보자며 합리화를 했다. ㅋㅋ 여행 내내 합리화로 점철된 우리의 스케줄들.. ㅋㅋㅋ
우리가 가진 남은 돈을 모두 합쳤더니 딱 택시비를 낼 수 있었다. 우리는 바보처럼 기분 좋게 웃고 숙소로 들어갔다.
자, 타이중에서의 마지막 밤이야. 저녁은 뭘로 장식할까?
자나스는 뜨끈한 국물을 먹고 싶다고 했다. 구글맵을 뒤져보니 야외에서 훠궈를 먹는 식당을 발견! 평점도 좋다. 이곳으로 가자.
이 집에 도착해 보니 카드 결제는 안되고 무조건 현금만 받는다고 했다. 둘 다 생각 없이 현금을 다 써버린 터라 방법이 필요했다. 마지막 식사는 야외에서 현지인들과 호흡하며 먹기를 원했던 우리는 근처 ATM기에서 카드대출? 을 받아서 돈을 뽑고 ㅋㅋㅋㅋ 마지막 현지 식사로 9만 원어치를 먹었다!
이 집 훠궈의 특이한 점은 밴댕이 같은 걸로 보이는 마른 생선으로 육수를 내어 나오는 맑은 육수로, 한국에서 흔하게 먹던 그 기름진 빨갛고 하얀 훠궈 육수가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넓고 얇게 저민 두부피를 한 번 더 튀긴 것을 또 육수에 넣어 먹는다는 것.
또 한국에서 먹어보지 못한 생선 사리(라고 해야 하나..?)가 있었다는 것. 우리는 농어를 먹었는데 꽤 괜찮았다.
그렇게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타이중에서의 왁자지껄한 마지막 밤을 보냈다.
5월 전까지 운이 따른다면 아직 두 번의 해외 도피 기회가 남아 있다.
남은 여행들도 꼭꼭 씹어 야무지게 소화시켜야지. 그리고 남은 25년도 알차게 보내보자.
그전까지 짬짬이 일 할 만한 기회들을 잡아봐야겠다.
일단 자자.
고생 많았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