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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에게 쓰는 편지

014

by 한량돌

안녕 도이야. 으아 춥다.

겨울이 벌써부터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어.

몸 건강, 마음 건강 잘 챙기자.


탄력 받아서 소설 연재 계속 하고싶었는데 금세 다시 막혀버렸어..

도이 너 얼른 무예 익혀야 하는데 말야.

작업 환경이 변해서 그런가 손에 붙지를 않아.



고수는 장비탓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고수가 아니다



다독(讀), 다작(作), 다상(想)이 물론 가장 중요하긴 한데 허허.

일단 글쓰기 작업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어.


기존에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노트에 소설 재료를 기록하기도 하고

메모장이나 워드에 떠오르는대로 두서없이 정리해서 그런가

이야기 진행이 머릿 속에서 정리가 안되는 것 같더라고.


정보를 찾다보니 소설 편집 프로그램이라는게 있더라!

워드나 한글은 지금하는 방식하고 크게 다르지않은 것 같고

프로 작가들이 많이 쓴다는 '스크리브너'를 써볼까 했다가

내가 쓰기엔 프로그램이 너무 무겁기도 하고, 백수인 주제에 몇 만원이나 되는 비용을 들이는게 부담스러워서 차선책을 찾아야겠더라고.


그러다 뮤블(Muvel) 이라는 프로그램을 발견했어.

https://muvel.app/

1인 개발자 인가? 정확히는 모르지만 소수의 사람들이 제작한 웹소설 창작에 특화된 프로그램이야.

인터페이스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글 쓰는데 필요한 유용한 도구들이 잘 갖춰져있더라고.

제목 없음.png 오 나의 뮤블


제목 없음2.png 와우! 한 눈에 들어온다구
제목 없음3.png 가볍지만 우습지않은 녀석

게다가 참 감사하게도 무료로 프로그램을 배포하고 있었어.

적당한 때가 되면 감사한 마음을 담아 후원해야지!


이제 한 발 더 파이팅 해서 너의 이야기를 써볼게!



새벽 맨홀 투입일은 처음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가게 되어버렸어.

고용주 측에서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해 공사 일자를 여유있게 잡아두셨었나봐.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됨에 따라서 자연스레 출근 일수가 줄어들었어. 처음 예상했던 금액에 6~70% 만 벌 수 있게 된 거지.

게다가 11월엔 두 번 밖에 못 나가고 끝나버리게 됐어. 나 같은 초짜 인력을 추가하기엔 앞으론 일이 너무 없대.


하루 일당이 시간 투자 대비 굉장히 고소득이라 혼란스러운 10월, 11월의 잔고가 기분 좋게 채워질 예정이었는데

당장 10월 카드값도 구멍이 나버려서... 결국 또 생활비 대출을 받아야 할 것 같아.


마침 친구네 근처에 쿠팡 물류 센터가 있던데 다다음주에 시작될 지역 살아보기 캠프 전까지 며칠 나가서 돈 좀 벌어놔야겠어. 그래야 조금이라도 대출 덜 받지.


그 재미없는 물류 센터를 또 나가야한다니.. 하루에 고작 10만 원도 못 버는 곳으로..


같이 맨홀 들어갔던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노가다 한 번 빠지면 다른 일이 눈에 안 들어온다는 말..


삶이 참 계획대로 되지를 않네.


아, 진짜 돈 때문에 스트레스 좀 그만 받고 싶어.

이 경제적 어려움을 역전 시킬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해. 아끼고 아끼는데 상황이 몇 년 째 변하지를 않잖아.


그래서 타지역으로 이사 가고나면 맨 처음 계획대로 대규모 막일 현장으로 들어갈까 해.

내년 상반기까지 어떻게든 잔고 돌려놔야지. 그리고 악착같이 돈 모으는거야. 일단 2년은 죽었다 생각하고..



거기 일 시작하려면 '건설안전기초교육'이라는 걸 미리 받아야 한대서 오늘은 그 교육을 갔다왔어.

남녀노소 없이 꽤 많은 사람들이 들으러 왔더라.

KakaoTalk_20251104_215805034.jpg 6만원과 4시간이 투자된 카드


교육이 끝나고 밖에 나오니 뉘엿뉘엿 해가 지고있었어.

친구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갑자기 기분이 굉장히 우울해지더라고.


나는 지금 뭘 하고있는걸까.

'내 30대는 저렇지 않을거야.' 라며 생각도 안했던 공사판 막노동이 지금은 내 최우선 목표라니.

그냥 멀쩡하게 공부 열심히 해서 그냥저냥한 회사 들어갔으면 지금쯤 1억은 모았을까? 아니 천 만원이라도 모았을까?

더이상 이사 걱정없이 집은 샀을까?


아니야 젠장, 그런 보살 같은 삶을 내가 견디기나 했겠어?


그럼 네 특이한 행보에 맞게 손가락이 터지도록 기타를 쳐봤어? 밤새 물레 돌려 봤어? 글 쓰기가 최우선인 하루를 보내보긴 했어? 내 창작물을 세상에 멋지게 보여주고싶다면서 대체 뭘 하고 살아온 거야 여태껏....



생각보다 맨홀 투입 일이 빈 시간이 많아진 덕에 산책, 달리기, 등산 같은 외부활동들을 많이 하게 됐어.

KakaoTalk_20251104_215805034_03.jpg 덕분에 이 짧은 가을을 풍족하게 누리는..
KakaoTalk_20251104_215805034_04.jpg 한 달에 세 번이나 등산을 한 건 살면서 처음이야.


이런 거라도 안 하면 하루하루가 비루한 느낌이 들어서 말야.

하여간 난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사람이라니까.



뜬금없게도 내일은 제주도에 가게 됐어.

지금 기거하고있는 집 주인 동기도 얼마 전 퇴사를 하고서 숨 돌리고 있는 터라

서로 짬이 맞는 김에 제주도에 가서 머리 좀 식히고 오자고 하더라고.

돈 없다니까 갚을 수 있을 때 갚으라고 하는데.. (좋은 친구는 많지만 돈은 없는 이유?)

아무튼 그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이래저래 같이 갈 수 있는 친구들 더 모아서 총 4명이서 2박 3일 동안 다녀오게 됐어.


여행의 설렘보다 현실의 답답함이 더 크긴 하지만.. 이왕 가는 김에 잘 놀고 오려고 해.


으아아아아! 어그러진 계획이야 어쩔 수 없는 거고!

흔들리는 마음은 딱 오늘까지만이야. 난 그냥 이렇게 주저앉고싶지않아.

KakaoTalk_20251104_215805034_05.jpg 덤벼라 세상아!!!!!!!


다녀온 사진들은 다음 편지에 동봉할게.

그동안 잘 지내고 있길 바란다.

또 연락할게! ~_~



ChatGPT Image 2025년 11월 5일 오전 12_55_48.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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