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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에게 쓰는 편지

011

by 한량돌

도이 안녕!

날씨가 꽤 시원해졌다.

정오에 차 안에 있어도 그렇게 덥지가 않네. (물론 에어컨은 켜져 있지만.)


나는 물류 창고로 일하러 나왔어. 처음 와보는 곳인데, 나름 괜찮은 것 같아.

아예 며칠 쉬면 좋으련만,, 여건이 만만치 않아.

이번에도 일 관뒀다고 생활비 대출을 받을 수는 없잖아.

그래서 당분간 여기서 밥 값 벌 것 같아. 당장 또 목돈 들어갈 텐데, 곳간 채울 수 있을 때 채워야지.


지금은 점심을 먹고 차 안에서 쉬고 있어. 오랜만에 마음 편한 상태에서 누가 해놓은 밥 먹으니까 좋네.

펜션에선 당최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어. 끼니 시간도 매번 늘어졌다 빨라졌다 했고.

그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좀 나아진 느낌이야.

정신적 스트레스 없이 시키는 대로 멍청 노동(?)하니까 요 며칠 무기력했던 것도 좀 나아졌고.

하여간 난 가만히 있는 게 더 힘든 사람이라니까.


그나저나 왜 이렇게 몸에 타투가 가득인 사람들이 많은 거야. 심지어 아주머니들도 그렇고. 나는 약과야.

여기 사람들 연령대가 낮기도 하고, 아무래도 특이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

하긴 나도 특이한 놈이긴 해.

머리카락은 새치가 반이고 흐리멍덩한 눈에다 새까맣게 탄 얼굴과 팔뚝.

아고... 모르겠고.. 잠 온다.



물류센터 출근 2일 차야. 1일 차에 현장에서 나눠 준 신발을 신고 일했는데 발이 하도 아프지 뭐야.

예라이, 하루치 일당 투자해서 오늘은 괜찮은 안전화를 사서 신고 일 했어.

물론 알고는 있었지만 드라마틱하게 상황이 좋아지진 않더라. 작열감은 여전하고 발이 욱신거리긴 해.

그래도 이거라도 신어서 다행이지..... 아! 하루 종일 놀고먹고 싶다!


창 없는 지하에서 8시간 넘게 구르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고 정신이 몽롱해. 현장이 후덥지근해서 더 그런 것 같아.

그렇게 일하고 밖에 나오면 세상이 어색해 보여. 웃음이 나.

퇴근해서 좋은 건지, 그냥 밖이라서 좋은 건지.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고 저 앞 논바닥에선 바람이 불어오고 있네. 흐으읍..... 하!



정신이 좀 멍한 것 같아서 집에 가다가 차를 세웠어.

화면 캡처 2025-09-10 212310.png 터벅터벅 ㅏ이고 발바닥아

일단 내일까지 출근을 하고 나름의 포상 휴가가 시작될 예정이야.

이번 주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파주에서 군 생활하는 친구 놈이랑 시간을 보내기로 했어.

그리고 일요일에는 다른 지인들과 강화도로 새우를 먹으러 가기로 했어.

당장 생활비가 걱정이라 약속을 주저했는데 너 나 할 것 없이 돈 생각하지 말고 그냥 오라고 해서,,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겠네.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쭉 '강원도 삼척을 걷다!' 여행이 준비되어있어.

나 포함 백수 두 명이랑 전기 노가다 친구 하나. 총 세 명이서 가기로 했어.

걷는 거 참 좋아하는데. 드디어 오래오래 걸을 수 있겠구먼.

도이 너에게도 즐거운 소식 남길게.



그리고 이건 계획 중이지만,, 10월 말쯤 이사를 갈 예정이야.

여행 같이 가는 친구 중 한 놈이 넌지시 같이 가서 일하자고 하더라고. (내가 오히려 더 극성으로 같이 가자고 했..)

나도 더 이상 이곳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는지라.. 일단 가보려고 해. 역마살이 다 차서 곧 터지려고 하거든.


그곳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대. 현장이 거대해서 전국적으로 유명한가 봐.

친구는 이미 그 현장에서 1년 정도 일을 했던 녀석이고, 자기가 아는 팀이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자리 잡을 수 있는 상황이래.

나도 뭐 악으로 깡으로 군 생활해냈고, 3년 가까이 컨테이너 공장에서 굴렀던 놈이라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일단 좋다고, 해보고 싶다고 친구에게 말해두었어.


일단 마음의 결정이 내려지고 나서 그 일터랑 우리가 살 지역까지 짬짬이 정보를 습득하던 중에, 그 현장에 대해서 의문이 자꾸 들더라고.

저번 편지에 일단 돈을 벌어야겠다고 얘기까지 했지만.. 이거 또 하늘도 못 보고 살면서 지쳐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야. 그래선 펜션이랑 다를 게 없을 거 같더라고.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겁만 오지게 많아져가지고 이거..)

근데 어떻게 해. 그런 상황에서는 나를 제대로 구동시킬 수가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는데. 글쓰기는 또 저- 멀리로 갈 것 같은데.


그럼 뭐 하러 친구 따라 이사 가냐고? 사실 이 나이 먹고 보증금 천만 원이 없기 때문에,, 혼자 타 지역으로 이동할 방법이 없어. 허허..

... 네가 존재하는 그곳보다는 안전한 세상이라지만 이래저래 비참한 일이 생기네.

하긴.. 너도 쉽지는 않았지. 미안,,



마음 독하게 먹으면 할 수 있는 건가.. 작가 생활이 간절하지 않은 건가..

아..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지금의 내가 최우선이야.


그러다가도 돈을 저축할 수 있을 만큼은 벌어야 몇 년 뒤엔 어디 지방 시골집이라도 사서 살지 싶기도 하고..


아니 일단 무작정 돈 모으는 게 먼저가 아니고! 에너지 소모가 크지 않은 일을 최소한 하면서

글이나 내가 좋아하는 활동 쪽으로 조금씩 금전적인 이익을 만들어내야지! 싶기도 하고..


하여간 지금 머리가 다시 팽팽 돌고 있어.


일단! 이사는 갈 거야.

그동안 여행도 다녀오고, 차분하게 생각 정리도 하고, 과감하게 이런저런 행동도 해보면서 잘 지내볼게.

주어진 오늘의 삶을 내팽개치지 않는 거. 그게 너와 나의 강점이잖아.

물론 오늘도 머릿속에 있는 너의 모습을 눈앞으로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ㅋㅋ


너도 다음에 볼 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


아 참, 아무리 봐도 하슬이가 너 좋아하는 거 같던데?

퉁명스럽게 굴지 말고 좀 잘해봐. 맨날 그렇게 죽상 해서는 안돼야.


그럼 또 보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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