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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에게 쓰는 편지

012

by 한량돌

도이야 오랜만이야.


펜션 도망 후, 숨 좀 쉬자며 이곳저곳 돌아다니길 열흘 째.

모든 일정이 끝나고 집에서 알맞게 뭉개졌을 그때쯤 네게 편지를 보내려고 했는데..

저런, 벌써 3주가 흘렀네.


하하.. 요약하자면 자알! 놀았고, 돌아와서는 물류 센터 가서 용돈 벌이했어.

놀았던 사진들 같이 동봉할게.

난 황해가 싫어
새우 먹으러 갔는데 새우 사진은 없네
계획은 계획일 뿐 집착하지 말자
걸으면서 돈 벌 수 있는 방법은 캐시워크뿐일까?

삼척에서 열심히 걷고 있는데 가을비가 어찌 그리 내리시는지.

어느 날은 도저히 걸을 수 없어서 남자 셋이서 멍하니 하루를 보낸 날도 있었어.(그것도 참 귀한 시간이었지.)

그래서 계획했던 일정을 다 소화하지는 못 했어.

그래도 자발적 힘듦을 이겨낸 뒤에만 맛볼 수 있는 뿌듯한 감정은 참 달달했어.

다시 삼척을 찾을 이유를 가지고 돌아오기도 했고.

무튼 좋은 여행이었어.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3일 정도 몸을 회복하기로 했어.

체력이 진짜 거지가 됐더라고. 이거 이거 다시 몸에 기강 좀 잡아야겠어.

암튼 잘 쉬면서 밀려있는 개인 작업을 해야겠다 마음먹었지.


그런데.. 이번에도 글은 써지지 않더라. 아니 어쩌면 쓰고자 하지도 않았던 것 같아.

그 어느 때보다 시간적인 여유가 많은 시기인데도 글을 못 쓰는 걸 보면

충분한 집필 시간 확보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던 거야.


글쓰기 습관은 안 만들어져 있지, 막상 시작하자니 막막해서 엄두가 안 나는 거지.

그러다 보니까 그냥 평소처럼 유튜브를 몇 시간씩 보고, 혼자 폭음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들이 많아졌어.

다음 날엔 후회감과 함께 눈 뜨고, 그 지난한 하루가 반복되는...


그깟 글 써 내려가는 거 참 별 거 아닌데, 뭐가 무섭고 걱정되어서 자판을 치지 못할까?

아니 애초에 누가 봐줄 사람도 없는데 뭐가 그렇게 겁나는 거야.

쓰레기 같은 소설 뭐 하러 쓰냐고 누가 욕이라도 하냐구.


으아아아아!! 다시 시작해야겠어.

글 쓰는 습관을 만드는 것부터.

추구하는 삶을 망치는 것들은 버리고

추구하는 삶을 채우는 선택과 행동을 하는 것부터.



어제 부로 물류 센터는 그만 나가기로 했어. 일 하던 사람들하고 문제가 생긴 건 다행히 아니야.


첫 번째 이유 -> 이미 다음 달 고정 지출 금액을 넘겨서 일을 했기 때문이야.


두 번째 이유 -> 손목, 발, 허리가 오지게 아파. 이제 30대 중반인데 삭신이 왜 이렇게 쑤시는지.

4일 일하면 3일을 쉬어야 컨디션이 돌아오는 것 같아. (정말 그렇게 살고 싶다.)


세 번째 이유 -> 바보 노동(?)을 통한 번아웃 극복 작전이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아서야.

기계처럼 시키는 대로 움직이면서 푼돈 버는 게 벌써 지겨워졌어.

고작 보름 정도 바짝 일 한 것 같은데 하여간 양은 냄비 같은 녀석.. 허허..

아무튼 다시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그리워지네.


그리고 결정적 이유!

매력적인 밥줄을 찾았어. 그게 뭔지 궁금하지? 뒤에 적을게.


이제 몇 개월 간 바닥을 내리치던 화살표를 꺾어서 위로 올라갈 시간이야.

여전히 불확실한 것들 투성이지만 말야. 왠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물류 센터, 이제는 안녕



이번 10월 달은 새로운 지역 이사 준비를 하면서 색다른 노동으로 생활비를 축적해놓으려고 해.

떤거냐면! 바로바로..


지하철에 고인 물을 펌프를 이용해서 밖으로 빼내는 작업야!


운행이 종료된 뒤에 시작하는 거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4~5시까지가 근무 시간이야.

일당으로 20~25만 원 정도 챙겨주겠다고 하더라고.

가까운 친구가 소개해준 일인데, 본인도 하고 있고, 아버님 밑에서 같이 하는 일이라 마음이 놓였어.

11월 달까지 예쁘게 일이 잡혀있어서 내 계획에도 딱 맞고.


걱정되는 건 서울 각 지하철 역까지 출퇴근 시간이 한 시간은 넘게 소요되고

밤낮이 바뀌는 걸 내가 잘 조절할 수 있을까 하는 건데..


뭐 어쩌겠어. 이건 해봐야 해.

처음 마주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날 끌어당기는데.

서울 한복판, 맨홀 밑으로 들어가 어두침침한 지하에서 돈을 번다고?

이거 이거.. 살면서 언제 해보겠어?


추가적으로 출퇴근 운전이 필수니까 당분간 술도 안 먹게 될 것 같아서 좋아.

이 일에 관한 이야기도 추후에 전하도록 할게. 크크.



최근에 멍하니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에 갑자기 지역 살아보기 어플에서 알림이 왔어.

이게 웬걸! 관심 있게 지켜보던 지역에서 새로운 참가자를 모집하는 거야.

정신이 번쩍 들어서 바로 신청서 작성에 돌입했지.

간절한 마음을 담아 몇 번씩 지원 동기와 자기소개를 고쳐 썼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나름 엉뚱하고 유치한 맛이 나는 결과물이 나왔고, 그대로 제출했어.

뭐 어디 입사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말야.


다음 주쯤 1차 합격자 발표를 하고, 온라인으로 면접을 본대.

벌써 80명 넘게 지원을 했다는데.. 으으으 제발!


만약 최종 선발이 되면 11월 달에 프로그램이 시작 돼.

그래서 10월 달에 생활비를 충분히 땡겨놓아야 해. 난 아직 배고픈 백수잖아.

아무리 체험비를 지역에서 지원해 준다고 해도 곧 이사도 가야 하고.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이 있으니까.

휴.. 각종 구독이고, 보험, 상조. 다 해지하고 싶다.


날 좀 자유롭게 냅둬!!!!


아무튼 올해 나의 가을은 더욱 빠르게 끝날 것 같아.


비가 온 덕에 공기가 더욱 차갑게 느껴지는 날이야.

난 오늘 얇은 외투들을 꺼냈어.

도이 너도 춥지 않게 챙겨 입고, 좋은 음식 먹으면서 겨울을 맞이하길 바랄게.

혼자 아프면 서럽잖아.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도이 이야기> 다음 편 연휴 기간 동안 꼭 쓰도록 약속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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