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전시 VR로 즐기기
혼자 미술관에 가는 게 좋았다.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가 없어도, 미술관 주변을 걷던 날들이 있었다. 미술관에 가는 건 공연장이나 영화관을 가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결로 느껴졌다. 단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보러 가는 것 외에, 일상에서 벗어나 예술적 공간을 마주하며 느끼는 신선한 낯섦이 주는 설렘 때문이었다.
미술관에서는 차분한 공기를 느끼며 괜스레 생각에 잠겨보게 된다. 작품을 보는 특별한 눈이 없어도 미술관에 다녀온 날엔 왠지 집에 있는 작은 물건 하나도 다르게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휴관과 개관이 반복됐다. 마스크를 벗고 편히 관람을 할 날을 기다렸지만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온라인 마술관들은 잠깐의 이벤트가 아니라 이제 문화 산책에 굶주린 사람들을 계속해서 온라인 미술관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직접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기는 경험파 이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온라인 관람객의 일원이 되기로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http://www.mmca.go.kr/main.do ) 에서 제공하고 있는 ‘집으로 온(On) 미술관’의 온라인 전시들을 구경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개방 수장고 VR
온라인 미술관에 입장하자 다양한 조각품이 맞아준다. 정제된 전시실 공간보다 작품들을 오래 보관하는 수장고가 주는 느낌 때문인지 작품이 보다 날것 그대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수장고에 있는 조각상들은 시대별로 재료별로 나뉘어 있었다. 전시실에서 마련한 테마로 꾸민 미술 작품들은 작가의 주제의식에 관람객들이 구애받을 수 있겠지만, 좀 더 자유로워지는 기분이다.
내 마음대로 보고 느끼다가 문득 조각상의 내용이 긍금하면 전시기획을 담당한 학예사의 설명을 누르면 된다. 1970년대 흐릿한 조각상의 얼굴의 내용이 궁금해 설명을 해주는 영상을 보았다. 대학시절 작가가 만나던 연인의 얼굴이라고 한다. 또렷한 얼굴보다 흐릿한 조각이 어떤 그리움을 자아낸다. 전시품을 360도 각도에서도 바라본다. 길 안내도를 따라 걸어본다.
미술은행 소장품 기획전시도 온라인으로 진행 중이었다. ‘풍경을 그려내는 법’이라는 주제로 여러 작가가 큰 화폭에 그려낸 풍경들을 모아둔 전시관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작가의 세계가 오롯이 담긴 풍경들이 전시돼있다. 얇은 화선지를 여러 개 덧대어 붙여 구름의 질감을 표현하거나 화선지를 두껍게 만든 후 긁어내고 먹물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복잡함을 드러내고, 디지털로 인화된 풍경에 수채화로 색채를 덧입혀 디지털 사진과 아날로그 그림 세계를 오간다. 다양하게 표현된 풍경들 앞에 가만히 서 본다. 그림 자체를 들여다볼 수 있지만, 그 풍경들의 질감을 온라인으로 오롯이 느낄 수 없다는 점은 못내 아쉽다.
작품에 대해 관장님이 직접 설명해주는 영상도 있다. <빨래터>로 유명한 박수근 화백이 그린 <할아버지와 손자> 그림이다. 투박하게 보이는 그림들의 질감은 화강암의 질감을 드러낸 것으로, 마치 바위에 각인된 것 같은 느낌이다. 건장한 사내는 없는 대신 주로 등장하는 아낙네와 할아버지 아이의 그림은 전후 시대 우리의 일상을 보여준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신다. 선함과 진실함을 놓지 않는 시선이 있다고 덧붙인다. 잠깐 동안의 교양 미술 수업을 듣고 나면 작품이 더 가까이 느껴진다.
하지만 역시나 아쉬움은 남는다. 작품 앞에 서서 작품과 대화해보고 질문도 해보고, 나를 다시 돌아보며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새로운 숨을 들이마시고 오는 기분을 느끼지 못해 아쉽다. 머지않아 모든 질감과 공간을 더 자연스럽게 구현해 내서 360도 고화질 VR 체험으로 온라인 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더 해도, 미술관 산책을 포기할 순 없을 것 같다. 작품들은 아직 수장고에서, 전시실에서 우리를 만나길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