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 한 권 완독
시간의 빈틈 찾기, 출퇴근길 독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회사일도 아닌데 나 혼자 사부작 거리며 1월을 보냈다. 1월 중순부터 매일 저녁에 글을 썼다. 책 읽기를 올해의 목표 중 하나로 잡았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이럴 땐 시간의 빈틈을 찾아봐야 한다. 의외로 빈틈이 많았다. 핸드폰을 사용하는 시간대를 ‘책’으로 바꾸면 될 일이었다. 가장 만만한 시간대는 ‘출퇴근’ 시간이다.
빡빡한 지하철도, 흔들리는 버스 안도 아니다. 내 출퇴근 수단은 ‘기차’이다. 처음에는 여행 기분으로 타고 창밖을 보며 갔지만, 어느 순간 기차 출근에 익숙해진 나는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출퇴근 시간에 책을 읽으려고 가지고 다녔지만, 번번이 무거운 책처럼 마음만 무거워져 집에 돌아왔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려 핸드폰을 켜는 순간, 팟캐스트, 유튜브, SNS, 온갖 콘텐츠들이 유혹한다. 잠깐 핸드폰을 보고 나서 책을 보자고 하다가 하이퍼링크를 타고 유영하다 정신을 차려보면 벌써 내릴 시간이었다. 늘 그런 식이었다.
핸드폰 하루 평균 스크린 타임을 켜본다. 5시간 39분이다. 하루의 20% 이상을 핸드폰을 보며 지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중 1/3의 시간을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는 얘기다. 성인남녀 하루 평균 핸드폰 사용시간이 4시간 가량이라고 한다. 이 중에 한 시간 정도는 억지로 떼어 다른 일에 쓸 수 있지 않을까. 성인이 책을 하루 1시간 기준 평균 20페이지 정도 읽는다고 했을 때, 출퇴근 1시간의 경우에는 40페이지가량 읽어나가고, 일주일이면 300 페이지가량의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다.
가방에 책을 넣는 순간 다시 꺼내는 건 두세 배가 아니라 열 배는 어렵다고 깨달은 바이다. 오늘은 핸드폰 대신 책을 쥐고 문을 나섰다. 책은 가급적 가벼운 책이 좋겠다. 들고 다니기 쉽게, 내용도, 무게도 가벼운 책을 골랐다. 아침부터 무거운 내용의 주제나 학술적인 책은 공부하는 느낌이다. 대신 리프레시 느낌의 책을 찾았다.
책을 ‘읽는 것’ 자체를 습관으로 가져가려면, 무엇보다 부담이 적어야 한다. 출근길이 1시간 반 정도 되면 오히려 몰입도가 높은 책들이 좋을 수도 있겠다 싶다. 기차만 25분, 버스만 15분인 나의 출근길엔 소설처럼 리듬이나 흐름을 놓치지 않는 몰입도 높은 책도 출퇴근길에는 자제하기로 했다. 에피소드가 짤막하게 있는 에세이 책이나 자기계발서를 골라 옆구리에 끼고 출근을 했다.
적당한 백색소음은 집중력에도 좋다. 이어폰 대신 백색소음에 귀를 맡기고 책을 펼쳤다. 언젠가부터 책 귀퉁이를 접거나 밑줄을 잘 긋지 않고 책을 다루게 됐다. 다음에 읽을 때 다시 새로운 기분이 들고, 다른 생각이 들기에, 내 생각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빈 상태로 내버려 둔다. 집을 나설 때 포스트잇을 챙긴다. 책을 보면서 인상 깊은 구절, 생각이 들게 하는 문구에는 포스트잇을 붙인다.
퇴근길에도 책을 들고 나왔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내리는 역을 놓치지 않게 가끔 나오는 안내방송에 귀룰 기울이지만, 눈으로는 글귀를 부지런히 따라갔다. 부지런히 읽다 보니, 어느덧 책의 맨 마지막 페이지다. 기차에서 시간을 버린 하루가 아니라 오늘만큼은 시간을 ‘벌은’ 기분이다.
책을 읽는 순간 세상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책을 보던 눈으로 고개를 들어 밖을 다시 내다볼 때 조금이라도 마음이 달라져 있다면 충분히 헛되이 보낸 시간은 아닌 것 같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연습들을 하게 된 건 올해 TV나 핸드폰 대신 책을 조금씩 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틈을 만들어 책을 조금 더 들여다봐야겠다. 오늘의 출퇴근 길이 그랬고, 내일의 출퇴근 길 역시도 그럴 것이다.
“책을 읽는 재미는 어쩌면 책 속에 있지 않고 책 밖에 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창밖의 하늘이나 녹음을 보면 줄창 봐 온 범상한 그것들하곤 전혀 다르게 보였다. 나는 사물의 그러한 낯섦에 황홀한 희열을 느꼈다.”
박완서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