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rn Black : 016]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재능 많고 꿈 많고 총명한 소녀는
곧바로 가정을 꾸리고
학문의 아쉬움을 남겨둔 채 전업주부가 되었다.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첫 아이를 잃고
피난을 가고
몸도 마음도 약해져 가고
아이들은 제 품을 떠나고
요양을 이유로 산 좋고 공기 좋은
지금의 동네로 이사를 왔다.
“얼마나 울었던가”
노래하고 책 읽는 것이 유일한 소일거리였던
그녀의 목소리는 세월의 무게와 함께 아련함을 더해갔다.
일요일 점심마다 경쾌한 딩동댕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노래자랑 시간은 일주일 중 유일한 삶의 낙이었으리라.
생전 그녀의 꿈 중 한 가지는 노래자랑에 나가는 것이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쯤은 나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모시고 나가기에는 이제 그녀의 몸은 너무나
작아지고 누워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동백 아가씨”
지금은 만날 수 없는 나의 할머니,
한평생 곱고 천진난만하고 지혜로웠던
할머니의 노랫소리를 떠올리며
그런 할머니를 그리워하던 어머니에게
동백 아가씨를 불러드렸다.
애달프고 아름답던 그 소리를.
노래를 듣는 시간만큼은
그 시절을 추억하며 함께일 수 있을 테니까.
ⓒ 미양(美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