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rn Black : 014]
덩그러니 놓인 화분 사이에
스며들듯 일렁이는 그림자
나는 물을 줄 수 없었지
그 잎은 너무 푸르러서
감히 만질 수도 다가갈 수도 없어서
바람에 놔두면
그 마음도 영원하지 않을까 싶었지
그 빛이 노랗게 익어갈 때쯤에서야
앞을 흐리는 흘러넘치는 물을
줄 수가 있었네
그저 너무나도 소중한 그 빛을
간직하고 싶었을 뿐인데
제발 그 빛을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신에게 빌고 또 빌었는데
작지만 단 하나의 바람이었지
이제와 그 빛은 나를 사정없이 찌르고
발가벗겨 지옥불 속을 걷게 하네
어디에도 뿌리내릴 수 없던 그 빛은
단단한 바위틈에서 안식을 원하네
모진 비바람과
살갗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견디고
둥글어지고 단단해지기까지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켰던 그 품에서
꺼지지 않는 불길 속에서
나는 다시 그 빛을 잡을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 미양(美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