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rn Black : 026]
돌에게 물었다.
왜 네가 아니면 안되냐고.
돌이 답했다.
너가 너이기에 그렇다고.
다시 물었다.
두렵지 않냐고.
다시 답했다.
두렵다고. 하지만
내일의 나는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기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고.
언젠가 물었다.
그 담은 언제쯤 허물어지는 것이냐고.
언젠가 답했다.
담은 무너지는 것이 아닌, 넘어서는 것이라고.
숨죽여 말했다.
서로에 대해 무엇을 아냐고.
너가 너의 시선으로만 보는 것,
내가 나의 시선으로만 보는 것만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텅 빈 껍데기 속 그 끝을 알 수 없는 허무함은
눈물을 마르게 하지 못한다고.
너를 생각하면 언젠가부터 근본없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고.
너를 알고 난 뒤로
내 안의 칠흑 같은 공허함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그 공허함의 근원을 알기 전에는 채울 수 없다고.
꽉 막힌 가슴이 숨쉬기 힘들게 하고
그 속에 얹힌 돌이 가슴을 친다.
돌은 심장을 짓이기고 데굴데굴 굴러가
오장육부를 뒤틀어버린다.
더, 더, 더욱.
나는 이것으로 채워지지 못해.
보는 것만으로는 절대 만족할 수 없어.
만지고 나누고 내뱉고 감싼들
정말로 존재한다고 단언할 수 있나?
내가 보는 너는 정말로, 너일까?
너는, 우리는,
존재하는 허상이 아닐까?
찢겨진 심장 밖으로
혈관을 타고 올라가
내 몸 전체에 솟아나는 피로 뒤덥히게 되면,
이것이 현실임을 인지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게 되면
이 허무함도 끝이 날까-
거기에 너의 기억만 가지고 갈 수는 없을까라는.
돌의 시간
인내의 시간
끝없는 자신감과 오만함과
박살난 껍데기로 줄줄이 엮어 감싸고
어쩌면 더 내려놓을 수 있을 지도 모르는데
즐거움과 가능성이란 이름 아래
이 모든 것들을 흐트려 버린다.
새로움은 알 수 없음을 설레임으로 바꾸어놓는다.
그런 나를 믿고 달려가본다.
행복하고 행복하지 않은 날들
빛이 보이고 어두컴컴한 방에서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날도
아무것도 없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한면에 벽을 바른다.
그 벽에 완벽을 기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여러 빛을 한 곳으로 모아
그림자를 지워놓는다.
보여지는 허상에는 다가가지 않아.
네가 지워버린 그림자가 나에게는 진실일 테니까.
다시 물을게.
너, 나에 대해 무얼 알고 있어?
네가 보고 듣고 지니고 있는 것들?
거기에 따른 네 서툴렀던 판단?
아니면, 이미 알고 있기에
더 이상 알 필요가 없었던 것들?
네가 나를 아는 것은 정보에 지나지 않아.
그게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정보는 작고 연약하고 꼭 쥐면 부서지기 쉬운 것들이야.
나를 안다고 하지마.
이해한다고는 더더욱 말하지마.
나는 언제든 꺼낼 준비가 되어 있어.
네가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대답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인생의 의미를 찾는 모든 것이 의미 없는 짓이라면,
어떤 방향으로 갈지 선택하는 것은 내 자유야.
난 두려웠어.
모든 것이 부정당하기만 했던 현실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던 그 시절
몰라도 되는 것들까지 알아야만 했던,
모르는 것 자체가 죄라는 걸 강요당했던 그 순간들이.
제발 누군가가 이 비참한 현실에서
나를 구해주기를 빌었던 멍청함이.
끝끝내 참고 또 참다
더 이상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지는 순간,
내 눈을 도려내 파버리겠다는 멈출 수 없는 잔인함이.
내일 내가 사라진대도
삶은 또 흘러갈 테니까.
손을 언제든 놓고 싶었어.
인생이 행복하다는 건 거짓말.
삶이 불행하다는 건 선택의 결과.
삶은 절대 아름답지 않지.
앓고 울부짖고 목을 조이는 전쟁속에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았어.
아무 시도도 하지 않았다면
나는 너를 만날 수조차 없었겠지.
네 속의 불안함과 공허함과 연약함,
이성과 감성의 경계에서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충동,
언제든 넘어버릴 수 있는 선, 광기,
네가 나에게 일으킨 것, 일으키지 않은 것,
가능성, 욕망, 보이지 않은 밑바닥의 그림자까지도 사랑해.
나는 너를 발로 차지 않을게.
때로는 굴러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비 맞은 날에는 물기가 마를때까지 햇볕을 쬐게 하고,
어딘가로 불쑥 떠나고 싶은 날 아무 이유 없이 같이 가줄게.
깎여지고 다듬어진다해도 너는 너니까.
길가의 흔한 돌멩이가 아닌
나만의 소중한 돌.
ⓒ 美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