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양 Sep 24. 2020

새로 쓰는 관계와 소통, 그리고 노인이야기

[경사:만신 프로젝트 011]

경사:만신 프로젝트 011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 무탈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지난주, 약 한 달 만에 워크숍을 재개했다. 행여나 잊으실까 연락을 꾸준히 드렸던 덕인지 약속된 시간이 되자 한분씩 도착하셨다.
할머니들과 함께 오늘의, 일상의 행복은 어떤 것이었을까 담소를 나눴다. 늘 부지런하신 율리아 할머니는 새벽부터 산책을 갔다 옥상텃밭을 가꾸며 찍은 사진들을 보는 것이 낙이라고 하셨다. 배추와 무, 익어가는 토마토와 상추들. 햇빛을 직접 받는 만큼 더 자주 물을 주고 돌봐주는 애정이 없다면 이렇게 건강한 아이들로 자랄 수 없으니, 나 포함 주변 친구들은 식물 키우는 재능은 없는 건지 키우는 족족 시들어가기 일쑤라며 요새는 옥상에 잡초를 키우고 있다는 자조적인 농담을 늘어놓는다. 그동안 관상용으로 키우기 쉬운 종을 몇 개 들여놨는데, 계속 키우기를 시도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꾸어 나가는 중이다. 잎사귀의 푸름이 주는 위안도 있고.

워크숍을 몇 차례 진행하면서 가위질의 재미에 눈을 뜬 할머님은 투명 안대를 쓰고 오셨다. 최근 백내장 수술을 하셔서 문자를 못 보셔서 나와 전화로 몇 번이나 밀당을 하시느라 고생하셨던 할머님은 수술하는 시간 동안 속으로 나는 행복하다, 행복하다를 계속 되뇌셨다고 했다. 자식 며느리 손주들이 무탈하고, 수술이 잘 끝나서 매사에 감사함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셨다고 한다. 눈도 쉬는 시간이 필요한대도 수업은 늘 빠지지 않으셨던 그 열정에 박수를 보내드렸다.

뜨개질과 만들기를 유달리 잘하시는 멋쟁이 할머님은, 산책을 아침저녁 두 번씩 다니고 계시다고 했다. 몇 년 전 무릎 관절이 안 좋아 무사히 수술을 마치시고 부지런히 걸어 다니시며 새로운 산책로를 발견하고 친구분들과 꾸준히 만나는 것, 늘 어머니의 건강을 챙겨드리는 따님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행복함을 느끼신다고 하셨다.

노인이 되어간다는 것,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노화가 되면서 하나둘씩 내려놓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좀 다르게 해석이 되었다. 나이 든다는 것은 나에게 가장 알맞은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각자의 속도에 맞게 하나씩, 정말로 소중한 것들을 안고 가는 여정.

언젠가 내가 눈을 감게 되는 순간이 올 때는, 이 모든 기억들, 사랑했던 추억들만이 남을 것이기에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사랑할 것을 다짐해본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한 사랑도 느낄 수 없을 테니. 분명 행복은 여기도 저기도 아닌 거기에 존재할 것이다.

美量

이전 10화 새로 쓰는 관계와 소통, 그리고 노인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