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만신 프로젝트 008]
“그러니까 말이야, 그 시절에는 그런 게 없었어. 해방에 피난에, 놀이라고 할 게 따로 있나.
그냥 감자 캐서 구워 먹고, 조약돌 주워다 공기놀이하고, 이파리 틀어서 풀피리 불고.
주변에 보이는 자연이 다 놀이지 뭐.”
“저도 공기놀이하면서 자랐어요. 고무줄도 잡고 머리 높이까지 같이 뛰어놀았고요.
초등학교 앞 개울가에서 컵으로 송사리를 건지기도 했고, 무더위가 지나 이맘때면
고추잠자리들이 날아다니면 손으로 잡았다가 놓아주고 그랬어요.”
“오재미라고, 주머니에 콩이고 팥이고 넣어서 꿰맨 후 던지는 거야.”
“아 맞아요, 체육대회 때 박 터트리기 했었어요. 그게 오재미라고 하는군요.”
“밀사리라고, 5월쯤 밀 이삭을 불에 그슬려서 후~ 불면 껍질이 날아가. 손으로 비벼도 돼.
밀알 갱이 건져서 먹는 거지.”
“자연이 정말 훌륭한 놀이터네요. 요즘도 하천 산책할 때면 철새들이 조금씩 보이고
얕은 물에 물고기들이 지나가곤 하는데, 예전에 아카시아 꽃 꼭지를 따서 꿀 핥아먹던
그 시절 기억들이 생각나네요.”
각자의 기억을 더듬어, 그 시절 놀았던 추억을 떠올려 본다.
나이 듦에 따라 최근의 기억은 점점 잊어가는데,
또렷이 기억나는 때는 인생에서 행복했던 시절, 보통 평균적으로 20~30대라고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한지는 너무도 아득하지만, 학교 앞 등굣길은 개울물과 논두렁을 지나
낡은 판자 지붕이 덮여 옹기종기 모여있는 구멍가게를 지나, 불량식품과 뽑기를 하던 문방구와
컵볶이를 팔던 분식점의 유혹을 뿌리치면 나무와 뒷산이 둘러쳐진 학교에 도착하기까지는 긴 여정이었다.
할머니들에게는 최소 60여 년은 전의 이야기들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는 건,
지금은 보기 흔치 않은 보물 같은 추억들이기 때문이겠지.
동네의 하천은 새벽 4시 무렵만 돼도 노인분들이 부지런히 산책하고 있다.
저녁 무렵 퇴근 후 가족단위로 몰리는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시는 노인들에게는
그 시간이 아침을 맞이하는 시간이다. 나도 자주 걷는 편이라 새벽시간대와 저녁 시간대 둘 다 산책해보니
확실히 주변의 소음이 적은 편이 차분히 생각에 집중할 수 있다.
요즘은 시중에 워낙 다양한 장난감들이 나와있고, 소꿉놀이 세트나 블록, 미끄럼틀 등
아이들이 직접 손으로 만지거나 닿는 장난감, 의류들은 KC 안전 인증마크를 달고 나온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다치거나 세균에 노출되지 않도록 세심한 돌봄을 한다.
나나, 더 오랜 연배의 분들은 자연이 곧 놀이터가 되어 하교 후 저녁시간까지는 탐험대처럼
여기저기 모험을 하고, 넘어지고 까지고 헤지며 놀았던 추억들 역시 있을 것이다.
지금은 덜하지만 나는 어릴 때 자주 넘어지던 아이라 40여분의 등하굣길 동안 무릎이 까져서
피가 발목까지 흘러서 집에 돌아온 적도 있고, 중간쯤 친구네 집에서 소독을 받았던 적도 있다.
그 시절에는 겨울날 참 눈 오는 날이 싫었다. 빙판길이 되면 꼭 엉덩방아를 찧어야 했으니까.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은 천천히 흘러간다. 오히려 엊그제 내가 뭘 했었는지,
요 1년 새 만났던 분들의 성함이 가물가물하다. 얼마 전 만났던 지인 분은 올 한 해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양 시간이 무섭다고 했다.
벌써 추석도 한 달 남짓 남았고, 연휴를 지나면 어느새 연말이 코앞으로 다가오더라.
노인분들에게 시간은 어느 정도의 속도일까. 쏜살같았을까. 냇물처럼 잔잔했을까.
다음에 만나게 되면, 꼭 여쭤봐야겠다.
ⓒ 美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