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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왕국

한밤중에 펼쳐지는 마을의 또 다른 풍경. 배달음식의 세계.

by 송형선 daniel
배달 오토바이들의 전성시대.


자정이 다 되어가지만 거리에는 질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배달 라이더들이다. 대부분 오토바이(스쿠터)지만, 때로 전기자전거들도 간혹 보인다.

모두가 잠이 들거나 혹은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할 그 시각에도 골목과 거리거리를 누비는 움직임은

잦아질 줄 모른다. 라이더들의 배달 상자에는 삼겹살, 치킨, 피자, 햄버거, 마라탕, 감자탕, 주꾸미볶음, 떡볶이, 족발 등등 야식을 넘어선 거의 모든 음식들이 담겨 있다. 그 음식들을 싣고 라이더들은 밤중이라 훨씬 한가해진 도로를 질주한다. 도로와 골목골목 모두를 라이더들이 점령했다. 어떤 이는 신호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도며 차도며 어디든 가리지 않고 질주할 수 있는 길이라면 어떤 길이든 구분 없이 내달리기도 한다. 그 내달리는 와중에도 한쪽 눈은 핸들 위에 장착된 스마트폰에 고정해야 한다. 새로운 오더를 놓치면 안 된다. 누구든 나와 같은 어떤 사람이 오더를 낚아채 가버리면 내가 할 일이 줄어들고, 내 수입도 줄어든다. 그러니 도로를 질주하는 그 순간에도 스마트폰 메시지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KakaoTalk_20250812_013436323.jpg 밤을 달린 배달 기록


배달 음식 전문 식당들

그 밤중에 어디에서 이런 음식들이 만들어지고 있나. 골목 귀퉁이를 다니다 보면 간판하나에 주방만 있는 식당이 있다. 식당이라기보다는 음식 공장이다. 좁은 주방에서 한 명, 혹은 2명이서 푹푹 찌는 열대야의 여름밤보다 더 뜨거운 열기 속에서 부지런히 음식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식당에는 주방 외에 손님을 받는 홀도 없고 여분의 테이블이나 의자도 없다. 그저 카운터 같은 곳에 배정된 라이더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번호표가 붙은 음식들이 있을 뿐이다. 화구들에서, 무엇인가 끓이거나 볶는 냄비며 프라이팬에서 뜨거운 열기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지만 그 열기를 버티게 하는 것은 먼지를 등에 이고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가 전부이다. 그리고 새로운 주문이 나왔다고 알리는 배달 플랫폼의 안내음이 쉬지 않고 새로운 지령을 내린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는다. 입을 열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말을 할 에너지도 아깝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달된 지령 하나하나 신속정확하게 완료해 내야 하는 임무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배달음식의 소비자들

이렇게 만들어진 음식들을 받아먹는 최종 소비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누구길래 이 늦은 한밤중에 온갖 야식을 주문하여 기다리고 있는 걸까. 대부분 이런 새벽 배달 음식의 종착지는 외로운 사람들이다. 오래된 빌라나 오피스텔이거나 닭장 같은 원룸촌이거나 대부분 혼자 사는 이들이 배달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1인분 음식이 주로 배달된다. 이 야심한 밤에 무슨 연유로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걸까. 바쁘게 일을 하다 저녁 식사를 놓쳤을 수도 있고, 밤새 야간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밤새 게임을 하는 게임 마니아 혹은 중독자일수도 있다. 소위 일본의 히끼꼬모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 배달하고 있다는 그 사실에 위로를 느끼는 외로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배달 라이더가 자신의 주거 공간에 방문한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밤중에 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 대부분은 외로운 사람들이거나, 그 시간이 아니면 무언가 먹을 만한 것을 먹을 수도 없이 정신없게 사는 사람들일게다.

KakaoTalk_20250812_011413627.jpg 감옥을 생각나게 하는 원룸촌에 사는 사람들.

이렇게 마을의 한밤중은 외로운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외롭게 나르는 라이더들과 어느 후미진 골목 한편에서 그 외로운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조용히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만드는 침묵의 소란함이 점령한다.


인간의 몸에 있는 생체 시계는 밤이 되면 잠을 자고 다시 아침이 되면 눈을 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일상으로 프로그램화돼 있다. 수만 년 자연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방식이 프로그램화된 것이다. 그러나 마을의 한밤중은 그런 자연의 법칙과 상관없이 돌아간다. 그러나 몸은 안다. 생체리듬을 거스른 한 밤중의 노동은 육체에 고스란히 남아있기 마련이다. 한 밤중의 노동은 사람들의 생명을 갉아먹는 독약과도 같다.


밤의 왕국을 지배하는 것은 누구일까. 뜨거운 열기를 참아내며 음식들을 만들어 내는 이들일까. 거리를 외롭게 질주하는 라이더들일까. 그렇게 배달된 음식을 고독하게 먹는 외로운 사람들일까. 사람들로 하여금 잠 못 이루고 음식을 만들게 하고, 지친 몸으로 거리를 질주하게 하고, 한 밤중 식사로 끼니를 해결하게 만드는 세상의 질서 일까. 이 요란한 마을의 한밤중을 지배하는 것은 누구이고, 누가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일까.

KakaoTalk_20250812_013202226.jpg 해 질 무렵 도심의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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