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63
다음 주 목요일이 할머니 생신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족 분들이 함께 점심을 하러 오신다고 하셨다. 가족끼리의 식사에 끼고 싶지 않아 그냥 나갈까 싶었지만 준비를 마치고 얼마 있지 않아 인기척이 들려 나가 보니 둘째 가족들이 오셨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둘째 아들과 며느리, 손녀였다. 인사를 드리고 다시 방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은 뒤 무한도전을 보는데 왠지 찝찝했다. 그래서 다시 주방에 나가 혹시 도와드릴 거 없냐고 물으니 음식은 이미 다 해 오신 상태라 식탁을 차릴 때만 도와주면 된다고 하셨다.
그렇게 찜찜한 시간이 지나고 민향 언니의 목소리에 나가보니 음식들이 가득 준비되어 있었다. 살롱에 음식들을 나르고 세팅을 했다. 사실 나는 주방에서 따로 먹는 줄 알았는데 어색하게도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해야 했다. 차려진 음식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할아버지께서 떡도 해 오셨다. 할머니를 휠체어에 옮겨 살롱으로 모시고 음식들이 다 차려진 뒤 가족사진을 찍어 드렸다. 할아버지께서 나와 언니도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지만 그건 좀 오버인 것 같아서 거절했다. 식사를 하는데 굉장히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나는 여기 왜 끼여 있는 거지. 그래도 음식들이 너무 맛있어서 남기지 않고 싹 다 먹었다. 며느리 분께서 해 오신 도미찜이 정말 맛있었다. 요새 고기를 너무 자주 먹어서 그런지 생선이 더 맛있다.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후식을 위해 식탁을 치우는데 그릇들이 넘쳐났다. 그것들을 치우면서도 나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배가 빵빵하게 채워졌지만 케이크도 사 오셔서 함께 생신 축하 노래를 불러 드리고 할머니께서 초도 끄셨다. 케이크는 달디달았다. 할아버지께서 내려주신 에스프레소는 쓰디썼지만, 케이크와 함께 먹으니 적당했다. 그렇게 두 시간에 걸친 긴 식사를 마무리하고 가족 분들은 떠나셨다.
식사를 함께 하며 느낀 건데, 할아버지네 가족도 그리 화목한 편은 아닌 것 같았다. 특히 아들 분께서 너무 무뚝뚝했다. 게다가 손녀도 애교 하나 없었다. 부녀 사이는 굉장히 좋아 보였지만 그 모습을 보니 ‘아들은 보고 싶지 않아’라고 하셨던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가족 분들이 가시자 할머니는 금세 얼굴빛이 다시 어두워지셨다.
오후 3시였다. 외출하기엔 매우 어정쩡한 시간이라 그냥 집에서 인터넷 서핑을 좀 하다가 방에서 단어 공부를 했다. 그리고 5시쯤 임무 수행을 마치고 집을 나섰다. 사실 조금 피곤해서 잘까 싶었지만 내일이면 8월도 끝나고 내 나비고 한 달권의 가치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나갈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에펠탑에 갔다. 날씨가 흐려서 모든 풍경이 흐리게 보였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샹 드 막스 공원에 다다르자 멀리서 노랫소리가 들렸고 가까이 가보니 일본 사람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어제부로 6호선 공사가 끝났으므로 조금 더 쉽게 집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샤요궁을 지나 트로카데로 역에서 나티옹 방향의 6호선을 탔다. 집까지 가는 구간은 지상철이라 바깥 풍경도 보고 좋았다. 다만 공사를 왜 한 건지 모를 정도로 지하철이 마구 흔들렸다. 집에 도착해서 비빔냉면을 먹고 간단히 씻은 뒤 운동을 했다. 배가 너무 나온 것 같다. 다리도 좀 두꺼워진 것 같고. 정말 프랑스 와서 한국에서보다 더 잘 먹고 잘 살 다니. 공중 자전거 타기와 윗몸일으키기를 했는데 좀 힘들었다. 정말 난 운동부족인 것 같다. 내일은 오랜만에 벼룩시장에 갈 예정이다. 몽트뢰유 가는 길에 입장료가 있는 벼룩시장도 들러 볼 계획이다. 퀵 보드가 다시 사고 싶어 졌다. 내일 구할 수 있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