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61
7시에 눈을 떴을 때 그냥 일어날 걸 그랬다. 항상 8시 알람까지 뻐기느라 괜히 찝찝한 꿈만 꿨다. 뚜왈렛이 조금 늦게 와서 9시쯤 아침을 먹고 임무 수행을 끝마치니 10시였다.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며 예현이를 만나러 갈 준비를 했다. 오랜만의 약속이라 그런지 조금 설렜다. 예현이에게 줄 고추장과 소금을 챙기는데 뭔가 웃겼다. 12시 약속이었지만 미리 가서 기다릴 참으로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출발했다.
생 미셸 역에서 나와 분수대 앞에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구경하고 친구와 카톡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12시에 예현이를 만나 반가운 인사를 하고 노트르담 성당 쪽으로 갔다가 비가 내려서 케밥 집으로 향했다. 박사님께 배운 “Sans tomate”를 써먹었다. 케밥은 생각보다 가격이 저렴했고 가격 대비 훌륭했다. 예현이는 내가 부탁했던 화장품을 사다 주었고 나는 조촐한 고추장&소금 선물을 했다.
그간 있었던 프랑스 정착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며 회포를 풀었다.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떨다가 밖에 나가 시테 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딱히 목적지가 없던 터라 골목 사이사이를 걸으며 눈에 띄는 가게가 있으면 들어가 구경하는 식이었다. 곧 파리를 떠나 리옹으로 갈 예현이가 원하는 곳에 가고 싶었지만 딱히 그런 것도 없다기에 정처 없이 걸었다. 덕분에 샤틀레 역 주변 구제 숍도 여럿 구경했다. 걷다 보니 빙빙 돌아 포 럼 데알도 들어가고 나중엔 다리가 아파 퐁피두센터 앞 니키 분수 앞에 앉아 거리 공연을 구경했다. 카페라도 들어가서 디저트나 할까 했는데 예현이는 파리에 있는 동안 돈을 많이 아낄 예정인 것 같았다. 나는 오늘은 위해 아끼고 살았는데 돈을 별로 안 썼다.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분수에서 일어나 생 미셸 역까지 다시 걸어갔고 지하철역 앞에서 우리는 작별인사를 했다. 일요일 날 TGV를 타고 리옹으로 떠날 예현이었기에 파리에 있는 시간이 적어 아마 다시 만나지는 못 할 것 같다. 그래도 프랑스 땅에 함께 있다는 사실이 어딘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리가 너무 아프고 피곤했다. 오랜만에 수다를 떨어서 체력도 약해진 것 같다.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할아버지를 만나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침대에 누워 조금 쉬다가 오후 임무수행을 마치고 샤워를 했다. 밥 먹기 전까진 ‘기묘한 이야기’를 찾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은 할아버지가 외출하셔서 민향 언니와 둘이 먹었다. 비빔냉면이었는데 먹을 만했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기묘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사실 지금 좀 무섭다. 괜히 봤나 봐. 저녁 임무수행도 끝났으니 일찍 자야겠다. 생각보다 지출이 적었으니 내일은 쇼핑을 좀 해볼까? 오랜만에 베르티옹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