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60
오늘 아침도 역시나 강제 기상. 정신없이 임무 수행을 끝마치고 달걀 프라이 하나로 다른 날보다 더 든든한 아침식사를 했다. 드디어 가을 겨울옷을 보내주었다는 반가운 엄마의 소식! 운송장 번호를 조회해보니 아직 접수만 된 상태였다. 배송을 받기까지 빠르면 4~5일 길게는 일주일 정도 소요된다고 하니 다음 주 말쯤엔 올 것 같다.
그런데 EMS 후기들을 찾아보니 아무리 헌 옷가지여도 관세를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여 괜히 피가 말렸다. 아직 통관되기 훨씬 전이지만 주기적으로 배송 조회를 하며 초조해했다. 배송비도 비싼데 통관세까지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정말이지 옷 때문에 다시 한번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렇지만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에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지! 나의 운을 믿으며 배송을 기다려야겠다.
오전에는 예현이와 은나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예현이는 오늘 내가 갔던 마들렌의 Free매장에 가서 핸드폰을 개통할 거라고 했다. 오늘은 작은 엄마와 친척 동생과 함께 파리를 구경할 예정이라 나와는 내일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 같이 생 미셸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다닐 것이다. 은나 언니는 프랑스에 오기 전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위암 1기 진단을 받고 수술 후 현재 회복 중이라고 하셨다. 결국 언니는 완쾌를 위해 6개월 정도 더 한국에 있다가 프랑스로 온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건강이 최우선이니 조금 아쉬웠지만 내년에 건강한 모습으로 뵈자고 말씀드렸다.
배부른 점심을 먹고 외출을 할까 잠시 고민하였지만 오늘도 꿀꿀한 하늘에 나갈 기분이 아니었다. 또 쇼핑몰을 가기엔 지름신이 날 괴롭힐 것 같아 포기하고 침대와 합체되어 인터넷 서핑을 즐겼다. 조금 졸렸지만 낮잠을 자면 저녁에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꾹 참고 영화를 봤다. 그렇게 오후 시간도 흐르고 뚜왈렛이 예상보다 조금 늦게 도착해서 조깅은 포기했다. 저녁 먹기 전 할머니의 머리를 잘라주러 미용사 아주머니께서 오셨고, 나는 미용 보조를 자처하여 그녀를 도왔다. 깔끔하게 할머니의 머리가 정리되고, 아주머니께선 성당에 오라며 나보고 성당 스타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종교적으로 엮이는 건 별로 원하지 않지만 추석 즈음에 할아버지와 같이 얼굴이나 비추고 오면 될 것 같다.
저녁도 배불리 먹고 잠시 걷기 위해 나가려 했지만 왠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가기 싫은 거다. 결국 오늘은 집에 박혀 있기로 했다. 프랑스에 온 지 60일이 되는 날이지만, ‘며칠 째’라며 특별한 일을 해야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100일이면 몰라도. 곧 이곳 생활도 두 달이 되어 간다. 너무 잘 적응하여 살고 있어서 문제다. 좀 더 현지인스러운 생활을 위해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자기 전에 복근 운동이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