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03
날씨가 안 좋다.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나는 최대한 가까운 실내 루트를 찾아보았다. 여기서 3정거장만 가면 ‘La defance’ 역인데 신 개선문을 볼 수 있고, 큰 쇼핑몰이 있다고 해서 구경도 할 겸 숙소를 나섰다.
라데팡스에 내려서 지하철역을 나가는 데, 앞서가던 흑인이 (나와 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갈 때까지 문을 잡아 주었다. 사소한 친절에 감동하여 “Merci”했다.
개선문과 마찬가지로 신개선문도 지하철역을 나가자마자 눈앞에 나타났고, 나에겐 개선문보다 더 큰 웅장함을 선사했다. 현대식으로 만든 건축물이라 그런지, 개선문보다 훨씬 더 와닿았다.
한 십분 있었을까,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바로 쇼핑몰 안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브랜드 옷들을 구경하고, 이리저리 걷다 보니 여기가 어딘지. 안내도를 봐도 모르겠어서 힘들 때마다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슬슬 배가 고팠는데 점심시간이 되자 사람이 급속도로 많아졌고, 어딜 가나 붐볐다.
간단한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려는데, 주문하려고 안경을 끼고 보니 죄다 불어고 내가 못 읽는 (발음은 읽어도 뜻을 모르는) 말들뿐이었다. 갑자기 너무 두려웠다. 점원이 내 말을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서 나만 멈춰있는 기분이랄까.
결국 이지오더 기계가 있는 맥도날드로 향했다. 인기 메뉴 중에서 치킨 어쩌고 세트를 시켰는데, 생각보다 금방 나왔고,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하지만 햄버거 세트를 무려 7.70유로나 주고 사 먹은 것이 아까워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에펠탑에 들렸다.
이제부터 ‘매일 에펠탑 보기’가 나의 첫 번째 목표다. 0번째 목표는 ‘파리에서 6개월 이상 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