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14-1
파리에 온 지 벌써 2주째! 정말 오래간만에 7시 30분에 일어나 씻고 아침을 먹었다. 계획대로 오늘은 ‘방브’ 벼룩시장(Vanves Flea market)에 갔다. 햇살이 조금 비치기는 했지만 매일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대비하여 우산도 챙겼다. 벼룩시장 전용 백팩에는 잡다한 내 소지품과 점심에 먹을 바게트 반, 천도복숭아 한 알.
지하철을 타자마자 졸음이 쏟아졌지만 무사히 환승하여 ‘Porte de vanves’ 역에 내렸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대로 2번 출구로 나가서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사진에서 봤던 벼룩시장이! 초입부터 흥미롭고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오른쪽부터 쭉 구경하고 돌아오면서 왼쪽 보고, 한 바퀴 다 돌고 나서 건너편도 알차게 구경했다. 나만의 에스프레소 컵을 사고 싶었지만 프랑스다운 컵을 찾기는 힘들었다. 예쁜 건 또 너무 비싸. 마음에 들었던 컵 하나가 있었는데 ‘made in taiwan’이라서 포기했다. 파리에 와서 태국 걸 살 수는 없잖아. 우리나라에서 중국산 사는 기분이야.
사진 찍고 싶은 신기한 물건도 많았는데, 경험상 벼룩시장에서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대는 건 판매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디카는 가방 속에 꽁꽁 숨겨두었다. 가는 길에 아쉬워서 문에 비치는 내 모습을 찰칵.
방브에서 재미난 아저씨 두 명을 만났는데, 한 분은 내가 바게트를 뜯으며 걷고 있으니 갑자기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달라는 뜻인가 해서 선뜻 내어주니 장난이라며 웃고 가버렸다. 그 때문에 나도 덩달아 하하 웃었다. 두 번째 아저씨는 벼룩시장 옆 공용 화장실을 기다리다 만났는데, 내가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다음이 네 차례냐면서 같이 들어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그니까 말로만 하면 좀 변태 같아 보이는데 그 상황은 그냥 유쾌한 농담이었다. 내가 웃으며 “oh~ non, non”하니 “싫어? 난 괜찮은데?” 이런 식으로 계속 장난을 쳤다. 그리고 그는 잘 쓰라며 먼저 자리를 떠났다.
어쨌든 방브를 떠나 다음으로 간 곳은 지하철 노선도를 보다 즉흥적으로 정한 콩코르드 광장이었다. 날씨가 계속 안 좋아서 루브르 쪽은 한 번도 안 갔는데 오늘은 가볍게 산책할 정도의 기온은 되는 것 같아 선택했다. 역에 내려서 출구로 나가니 튈르리 정원이 보였다. 구름 사이로 살짝 해가 비치고, 사람들은 여유로이 쉬거나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끼여 자리를 잡고 앉아 멀리 보이는 에펠탑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트로카데로에 안 가도 되겠구나.
사진도 몇 장 찍고, 살살 부는 바람에 조금 으스스한 느낌도 즐기며 혼자 앉아 복숭아를 먹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익숙한 멘트가 들렸다. “익스큐즈 미, 두유 스피크 잉글리시?” 난 듣자마자 “non”했지만 이번엔 떼거지였다. 무려 3명의 여자가 나를 둘러싸고 영어를 할 줄 아냐며 서명 종이를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순간 너무 짜증 나서 인상을 쓰며 노 하자, 그들은 갑자기 내 손에 들려있는 복숭아에 집중을 했다. “food?” “manger” 어쩌라는 건지. 내가 “이거?”라는 뜻으로 복숭아를 흔들자 고개를 끄덕이기에 손 사레를 치니 이내 포기한 듯 그들은 멀리 사라졌다. 기분이 좋았는데 또 급격히 다운됐다.
짜증을 가라앉히고 조금 쉬다 놀이기구가 보이는 쪽으로 걸었더니 작은 놀이공원이 나왔다. 구경하는데 생각보다 재밌어 보이는 게 많았다. 동전을 계속 집어넣어 상품을 따는 기계나, 총을 쏴 풍선을 터뜨려 경품을 받는 게임 등.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무시무시한 놀이기구다. 딱 봐도 무서운데 그런 걸 왜 타는지 모르겠다. 한 명당 10유로나 했다. 구경하는 건 재미있었다. 외국인들은 무서 워도 소리를 잘 지르지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