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얼 알 유 프롬?

파리의 안나 13-2

by Anna

개선문에 도착하자마자 배가 고파서 우선 끼니부터 해결하자 싶어 무작정 걸었다. 간단히 crepe를 먹기로 했다. 이전부터 누텔라 크레페의 맛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첫날 치즈 핫도그를 사 먹었던 그 가판대를 찾아가 3.00유로를 주고 크레페를 샀다. 끝부분을 조금 뜯어먹어보니 핫케이크 반죽 맛이었다. 공원 분수대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크레페를 먹었는데, 처음 먹는 누텔라의 맛은 생각대로 무지하게 달았다. 몇 입은 맛있게 먹고, 나머지 입은 너무 달아 속이 느글느글했다.

거의 다 먹어갈 즈음에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우산을 펴고 다시 샹젤리제로 갔다. 이번엔 반대편 길로 가보자는 생각에 한 손에는 천도복숭아를 들고 와그작 베어 물며 거리를 걸었다. 가는 길에 멋진 차량이 전시된 곳도 구경하고, 저번에는 못 봤던 그 유명한 ‘La Durée’ 매장도 보았다.

비 오는 날은 역시 실내지, 하며 라데팡스의 ‘레 꺄르트 떵’으로 향했다. 저번에는 처음 방문이고, 워낙 긴장한 탓에 제대로 구경도 못했는데 오늘은 나름대로 여기저기 잘 다닌 것 같다. 무료로 깨끗한 화장실도 사용하고, 와이파이도 쓰고, 대형 마트 구경도 하고, 0.50유로에 바게트도 사고 재미있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중앙 홀 천장에서 햇빛이 쏟아지기에 날이 개었나 싶어 에펠탑으로 향했다. 어제 본 비보이들이 또 춤을 추고 있었고, 오늘은 마이클 잭슨의 노래에 맞춰 공연을 했는데 정말 잘하더라. 조금 구경하다 오랜만에 에펠탑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 잔디밭 쪽으로 쭉 걸었다.

잠시 해가 비치기에 에펠탑 앞에 앉아 햇살을 마음껏 받으며 바게트를 뜯고 있는데, 한 그림쟁이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말을 거는 것이었다. “Where are you from?” 나는 그냥 고개를 떨군 채 “non”했다. 내가 계속 농, 농 하는데도 그는 끈질기게 나의 국적을 물었고, 결국 자기 입으로 “korea?” 하더라. “안녕하세요, 아름답다.”며 개수작을 부렸지만 난 끝까지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이내 포기한 그림쟁이는 멀리 사라졌다. 오랜만에 햇살도 받고 완전 프랑스 사람 마냥 바게트 뜯고 있는데 좋았던 기분이 급 가라앉았다.

그래서 슬슬 일어나 정리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도 마트에 들려 천도복숭아 2개를 더 사 왔다. 하나는 저녁밥 먹고 후식, 하나는 내일 점심에 먹어야지. 내일은 방브 벼룩시장에 갈 거다. 그러니까 일찍 자고, 오랜만에 일찍 좀 일어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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