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18
날씨가 좋다. 이번 주는 토요일까지 내내 맑음이다. 아침 겸 점심으로는 어제 사 온 바게트에 초코가 들어간 버터를 발라 먹었다. 꿀 맛! 시리얼이 들은 것과 초코가 들은 것 중에서 뭘 살까 한참 고민했었는데 초코로 사 오길 잘했다. 하루 지나 딱딱해진 바게트여도 맛있어. 그렇게 배를 채우고 또 한참이나 노트북 앞에 있었다.
어딜 가면 좋을지 고민하다 역시 에펠탑이지, 하고 준비를 했다. 트로카데로는 오랜만에 가는 느낌이다. 가는 지하철 안에서는 정말 심심했다. 어디 눈 둘 곳도 없고. 앞으로는 책을 들고 다녀야겠다. 프랑스에서 읽는 기욤 뮈소의 책이라. 늘 그렇듯 사진을 찍고 트로카데로 옆 공원에 갔다.
햇살이 뜨거워서 늘 앉던 벤치는 지나치고 놀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늘 밑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나무 사이로 에펠탑이 보였다. 자리 잘 잡았네,라고 생각하며 앉아 쉬는데 앞에 있던 가족들이 자리를 뜨고 얼마 있지 않아 에펠탑 파는 사람이 다가왔다. 설마 나한테 판매하려고 하나? 생각했지만 내 쪽은 거들떠도 안 보고 바로 내 맞은편 벤치에 앉아서 쉬더라. 오늘따라 경찰들의 단속이 심한 것 같았다. 그렇게 마주 앉아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한 30분 있다 그는 에펠탑 열쇠고리를 짤랑거리며 사라졌다. 그 이후엔 아줌마들이 하나 둘 몰려와서 나도 그냥 자리를 떴다.
저번에 봤던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역 사진을 찍고 오샹에 가려고 9호선을 탔다. 그런데 그때 본 루즈벨트 역은 아쉽게도 1호선이었다. 할 수 없이 다시 탔는데 한 외국인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해서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프랑스어 할 줄 아냐고 했다. 조금이라고 말했더니 “어쩌고 저쩌고 쇼콜라” 하기에 다시 물으니 영어로 “You like chocolate”이라고 하는 거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 치고 다다음 역에서 내렸다.
‘라파예트’ 역에서 환승해서 어제 간 ‘Le Kremlin bicêtre’ 역에 내렸다. 내려서 쭉 걷다 보니 아주 싼 옷가게가 있기에 들어가서 구경했다. 균일가 5유로였는데 자세히 보니 구제였다. 내 사랑 구제를 프랑스에서 만나다니! 진짜 상태 좋은 겨울 재킷이 많았다. 저번 주의 추위가 떠올라 하나 살까 했지만, 부피가 너무 커서 짐이 될 것 같아 포기했다. 진짜 따뜻해 보였던 귀여운 패딩 점퍼가 눈에 아른거린다. 그 대신 돗자리로 쓸 넓은 천을 3유로에 득템 해 왔다. 털이 수북하게 붙어 있었지만 집에 가서 떼고 세탁기로 빨면 되지, 하고 기분 좋게 사 왔다. 짧은 구제 쇼핑 후 오샹이 자리한 대형 쇼핑몰로 들어갔다.
마트 앞에서 경호원 아저씨한테 소지품 검사도 받고, 쇼핑을 시작했다. 어제 보단 살 것이 적어서 필요한 것만 골라 왔다. 납작 복숭아 1킬로, 돼지고기 간 것인 줄 알았던 베이컨 조각, 레몬이라고 쓰여 있기에 상큼할 줄 알았던 샐러드 소스, 디저트로 먹을 딸기 타르트! 총 7.27유로였다. 계산원이 꽤나 불친절해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하지만 맛있는 저녁밥을 해 먹을 생각에 신이 나서 집에 왔는데, 슬프게도 오늘 장보기의 절반은 실패였다.
위에도 썼지만 돼지고기인 줄 알았던 것은 베이컨이었고, 그래서 짰고, 짠 것에 고추장을 넣으니 더 짰고, 결국 못 먹고 그대로 버렸다. 샐러드 소스도 진짜 난생처음 먹어보는 짜고 신 맛이라서 그대로 쓰레기통에 직행. 기대 가득한 저녁밥이었는데 슬펐다. 그래도 후식으로 먹은 딸기 타르트는 아주 맛있었고, 복숭아는 프랑프리에서 산 것보단 덜 달았지만 싸게 샀으니 만족해야지 뭐.
저녁을 먹고 아까 사 온 천의 먼지 제거를 위해 한국에서 사 온 먼지제거기를 뜯었다. 이거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진짜 굉장한 양의 먼지와 털들이 나왔다. 지금은 내 옷들과 함께 세탁기 안에서 열심히 빨래되는 중. 오늘 땀을 많이 흘려서 샤워하고 자야겠다. 내일은 아침 일찍 바스티유 시장에 갈 거다. 저녁에는 하숙집에서 알게 된 친구 다슬이를 만나기로 했다. 일찍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