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ça va?”

파리의 안나 20

by Anna

덥다. 창문을 열고 자도 덥다. 또 새벽에 일어나서 선풍기를 틀고 잤다. 2층까지 오게 하는 법을 알아낸 건 좋았지만 바람이 아주 미약하게 왔다. 그래도 안 틀고 자는 것보단 열 배 나았다. 아침으론 시리얼을 먹고, 파리에 와서 처음으로 반바지를 입고 마레지구로 향했다. 점찍어둔 빈티지 숍 ‘free p star’에 가기 위해!


처음으로 5호선을 탔는데 지하가 아닌 지상으로 가서 좋았다. 얼른 버스 타기에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St-paul’ 역에 내려서 저장해 둔 약도를 보고 이리저리 길을 헤매다 발견한 프리피스타는 생각보단 작은 규모였다. 마레지구에 매장이 3개 있다고 하는데 처음 간 곳은 손님이 별로 없었다. 직원이 나에게 “ça va?” 해서 “Oui, ça va.” 했는데 더 말을 걸까 봐 괜히 혼자 쫄아 있었다. 열심히 찾다 보면 꽤 쓸 만한 옷이 많을 것 같았지만 너무 더워서 결국 얼마 못 버티고 나와 버렸다.


거울을 보니 땀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바깥도 너무 더웠다. 외국인들은 안 덥나? 길거리에서 집어 온 엽서 크기의 팸플릿으로 열심히 부채질하며 생각했다. 그다음으로 찾아 간 프리피스타엔 사람이 너무 많았고 역시나 너무 더웠기에 또 얼마 못 있고 금방 나와 버렸다. 내가 상상한 오늘은 이런 그림이 아닌데. 더위 때문에 다 망쳤다. 3군데 중 2군데를 갔기에 나머지 1군데도 찾고 싶어서 왔던 길로 되돌아갔지만 전혀 엉뚱한 길이 나와서 헤매던 중 눈앞에 퐁피두센터가 보였다. 나 어디까지 걸어온 거지? 어쩐지 발이 무지하게 아팠다. 그래서인지 우연히 만난 퐁피두센터는 전혀 반갑지 않았다.


역시나 더위 때문에 머릿속엔 얼른 역 안으로 들어가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사진 한 장도 찍지 않고 그냥 지나쳐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가 된다. 왠지 다시는 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포럼데알에 들어가 H&M을 잠깐 구경했는데 솔드 기간이 끝나가서인지 세일 상품이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비키니가 굉장히 싸고 예뻤는데 내 사이즈는 없었다. 다리가 너무 아파 의자에 앉아서 와이파이를 켜고 친구와 카톡을 하며 쉬고 있는데 지나가던 꼬마 여자아이가 나를 보고 “니하오~” 했다. 내가 서양인을 보고 프랑스인, 영국인, 미국인 등등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외국인들도 동양인을 보고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구분을 못하는 것 같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야지.


원래 계획은 마레지구 다음에 에펠탑이었는데 너무 더워서 트로카데로까지 갈 힘이 없었다. 게다가 9호선은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그냥 저녁 장을 보기 위해 나의 사랑 오샹으로 갔다. 오샹은 시원하다 못해 추웠다. 딱히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대형 냉장고들이 뿜어내는 한기는 금방 땀을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한국은 초복이라서 나도 더위 좀 물러가라는 뜻으로 백숙을 해 먹기로 하고 닭다리를 골랐다. 닭 한 마리는 양이 너무 많으니 맛있는 닭다리 살만! 그냥 끓이면 아무 맛도 안 날 것 같아서 마늘도 샀다. 깐 마늘을 사고 싶었지만 없었다. 내가 프랑스에 와서 마늘까지 깔 줄이야.

계획에는 없던 천도복숭아가 너무 싸서 3개만 골라 담았고, 백숙의 필수 아이템 소금과 저번부터 먹고 싶었던 크로와상+초코 빵도 골랐다. 총금액은 10.59유로였는데 계산할 때 15.90유로로 착각해서 10유로 지폐 한 장과 2유로 동전 두 개, 1유로 동전 하나를 주고 90성팀을 만들기 위해 동전지갑을 여니 계산하던 점원이 “non, non” 하며 내 손에 2유로 동전 두 개를 다시 쥐어주었다. 처음엔 “왜지?” 의아했지만 10.59라는 숫자를 보고 뒤늦게 “아~” 하며 머쓱하게 웃었다.

집에 와서 창문을 활짝 열고, 선풍기를 틀고, 저녁 준비를 했다. 귀여운 미니 밥솥에 밥을 하고, 닭다리의 비계는 제거한 후 한번 푹 끓여주고 물을 갈아 다시 끓였다. 마늘도 한통 까서 넣어주고 팔팔 끓이니 냄새부터 비주얼까지 완벽한 백숙이 완성!

백숙엔 김치를 먹어야 제 맛이지만 나는 외국에 있기에 아쉬운 대로 샐러드와 함께 먹었다. 이제 샐러드 소스는 따로 사지 않기로 했다. 그냥 액티비아 과일 맛을 사서 버무려 먹는 게 맛도 좋고 안전한 방법인 것 같다. 오늘은 키위 맛을 사 왔다. 배불리 저녁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한 후 오늘 찍은 몇 안 되는 사진을 옮기고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다.


어제보단 덜 더운 것 같은데 날씨를 찾아보니 기온이 34도다. 내일은 최고 기온이 36도. 미친 거 아니야? 파리 플라쥬나 가서 선탠이라도 하고 와야 하나. 무사히 잘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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