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체리

파리의 안나 22

by Anna

간밤에 비가 내려 조금은 선선한 아침을 맞았다. 오늘은 계획대로 바스티유 시장에 가기 위해 조금 일찍 일어났다. 아마 혼자 산 일주일 중에 가장 일찍 집을 나선 날인 듯. ‘bastille’ 역에 내려 바스티유 광장 사진을 찍고, 시장 탐방을 시작했다. 미리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보고 간 거라 그다지 새로울 건 없었다. 모두 다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본 사진 속 풍경 그대로였다. 다만 프랑스에서도 냉장고 바지를 판다는 것은 놀라웠다. 5유로였는데 색감이 예뻐서 하나 살까 하다가 그냥 구경만 했다.

내 목표는 체리였기에 과일 가게만 눈에 들어왔다. 초입의 가게들은 시장치고는 꽤 비싼 가격을 받고 있었다. 조금 안쪽으로 가니 1.99유로와 2.50유로짜리가 있었는데 고민하다가 그냥 더 싼 1.99유로짜리 상점에 갔다. 1킬로를 사고 2유로를 지불했다. 0.01은 팁인가. 시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고, 사람들은 많았으며, 난 목표를 달성했으니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체리를 가방에 넣고(이것은 크나 큰 실수였다.) 오늘도 마레지구로 향했다.

아마 이제 에펠탑 매일 보러 가기와 같이 마레지구 프리피스타 방문도 함께 하게 될 것 같다. 길바닥엔 어제의 시위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깨진 유리 조각들을 보며 아직도 해소하지 못한 궁금증을 안은 채 1호점으로 갔다. 하지만 가게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dimanche 14~21’라는 종이가 한 장 붙어있었다. 일요일은 두시부터 하는구나. 2호점도 마찬가지로 문을 열지 않았다. 괜히 왔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알마 역에 내려서 에펠탑에 눈도장 쾅 찍고 왔다.

집에 도착해 가방을 열었는데 체리가 다 뭉개져 있었다. 너무 익어서 그런 건지 내가 무의식 중에 가방 안의 체리를 누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2유로짜리 체리는 몇 개 못 구하고 다 전사하고 말았다. 이제 가방에 넣지 말고 손으로 봉지 채 들고 와야겠다.


배가 고파 스파게티를 해 먹고, 조금 쉬다가 청소를 했다. 먼지가 장난 아니게 나왔다. 이런 곳에서 여태 먹고 자고 했다니. 아마 내가 들어오기 전 계속 비어 있던 집이라 청소를 안 한지 꽤 된 것 같았다. 그래도 쓸고 닦고 하니 깨끗해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고, 저녁으로는 닭볶음탕을 만들었다. 많이 부족한 재료로 많이 부족한 맛이 났지만 꽤 배불리 식사를 했고, 쌓아 두었던 쓰레기를 비우러 갔는데 갑자기 폭우가 내려서 재활용품은 못 버리고 다시 가지고 올라왔다. 내일 나갈 때 버려야지. 목욕 후 지금은 빨래를 돌리고 있다. 완전한 일요일의 한가로운 일상이다.


오늘은 일찍 일어난 만큼 일찍 잘 거다. BONNE NU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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