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26
숙취에 시달렸다. 맥주 두 캔에 머리가 아프다니. 술이 많이 약해졌나 보다. 정신력이 약해진 건가? 점심때까지 정신 못 차리다가 배가 고파 스파게티로 해장을 하고 물이 새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뒤 어제 보다 끊긴 드라마를 봤다. 우선 이걸 다 봐야 내 속이 시원하겠어.
그렇게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12학번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내 프사가 예쁘다며. 친하지도 않은 후배가, 평소에 연락도 안 하고, 학교에서 봐도 인사만 하던 후배가 갑자기 카톡을 하니 적잖이 당황하긴 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우선 그녀의 칭찬에 기분이 좋았고, 본인도 “갑자기 연락해서 놀라셨죠.” 하며 쑥스러워해서 그 모습이 귀엽고 조금은 대견했다. 나도 선배들한테 연락 안 하고 사는데 뭐.
몇 마디 카톡을 주고받다가 갑자기 먼저 연락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친구 미래한테 연락했다. 사실 아침에 눈을 뜨니 보이는 ‘내일 어디서 만나자’는 동기들의 카톡을 보고 조금 쓸쓸함을 느꼈다. 하지만 파리에 온 건 내 선택이기에 당연히 감수해야 할 감정이기도 했다. 미래와 메일을 주고받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우리 동네에서 버스 타기 도전! 27번 버스를 타니 얼마 안 가 뤽상부르 공원에 도착했다. 저번에는 너무 더워서 둘러보지 못했던 공원의 곳곳을 걸으며 많은 사람들을 봤다. 재미있어 보이는 그네도 있고, 아이들 전용 말 타기 체험도 있었다.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멀리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에펠탑 꼭대기를 바라보며 쉬었다. 한 끼밖에 안 먹은 상태라 금방 배가 고팠다.
다시 버스를 타고 루브르를 지나 피라미드에 내렸는데 바보같이 ‘오페라’ 역까지 걸어가서 지하철을 탔다. 마트에 갔는데 한국말을 하는 프랑스인이 말을 걸었다. 결론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거였다. 얼굴은 한 30대 돼 보였다. 싫다고 웃으며 거절하고 살구를 고르는데 옆에서 같이 살구를 고르던 아줌마가 말을 걸었다. “Il est???”라고 했는데 아마 이 살구가 괜찮지?라는 뜻인 것 같다. 하지만 순간 뭐라 말해야 될지 몰라서 그냥 하하하 웃고 말았다.
장을 보고 집에 와서 밥을 안치고 미래에게 온 메일을 읽었다. 많은 일이 있었구나 생각했다. 저녁으로 소고기를 구워 먹고, 설거지를 하고, 씻고, 답장을 쓴 뒤 이렇게 하루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