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를 떠난 비행기는 새해가 되기 두 시간 전에 파나마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서둘러 입국 수속을 마치고 미리 예약해둔 호텔로 가기 위해 승합 택시를 타러 갔다. 파나마 공항은 새해 전야라서 그런지 더 분주하고 사람들이 많았다. 승합 택시는 목적지가 비슷한 네다섯 명의 사람들을 태우고 떠났다. 나는 올드타운도 아니고 시내도 아닌 어정쩡하게 공항과 가까운 곳이 목적지라 내 차례가 되어도 여러 번 거절당했다. 파나마 공항의 택시들은 이상한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나는 거절당할 때마다 가볍게 항의했지만 그들은 기다리라는 말만 했다. 이러다 새해를 공항에서 맞이할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러다 해가 바뀌기 20분 전에 겨우 택시를 타고 공항을 떠날 수 있었다.
2019년 1월 1일
내가 호텔에 막 도착해 체크인을 할 때 새해가 밝았다. 나는 졸다가 일어난 듯한 호텔 직원과 새해를 맞이했다. 그녀는 새해를 축하하는 폭죽 소리를 듣더니 나에게 말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당신이 올해의 첫 손님이군요."
그녀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우리는 불꽃 구경을 한 후에 체크인을 진행하기로 하고 정원으로 나가서 하늘에 번지는 온갖 모양의 불꽃들을 보며 새해를 맞이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감탄하며 기도를 하는 듯했다. 정원의 불빛이 어두워 그녀의 하얀 이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불꽃놀이는 10분이 넘게도 계속되었다. 충분히 구경했고 더 이상 화려한 불꽃이 퍼지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들어가자고 했다.
내가 파나마에 온 이유는, 그리고 4성급의 호텔에 체크인하게 된 것은 내일 친구 가족과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 혼자였다면 아마 올드타운의 호스텔로 갔겠지만 내일 오전에 친구네가 도착하니 굳이 다른 곳에 묵을 이유가 없었다. 친구네 가족은 이 호텔에 일주일간 머물며 골프 경기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친구의 아이들이 둘 다 주니어 골프 선수라서 경기 때문에 오는 것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친구의 얼굴도 보고 골프 경기 직관도 할 좋은 기회라 그들을 만나기 위해 파나마에 온 것이었다. 사실 같은 호텔에 일주일간 머물면서 골프장만 갈 것이라 여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골프 관광이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러해서 나는 혼자라면 절대 오지 않았을 호텔에 극적으로 새해가 되기 몇 분 전에 도착했던 것이었다.
새해 첫새벽, 나는 낯선 땅에서 낯선 피부색의 여인과 새해를 맞이하고 그녀가 안내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안내받은 방은 약간 고급스러우면서도 심플하고 깨끗했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넓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보았다. 오랜만에 혼자 쓰는 욕실에서 느긋하게 샤워를 하고 새벽이어도 불을 켤 수 있는 혼자 쓰는 방에서 여유롭게 책을 꺼내 들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 첫 독방이었다. 방안을 눈으로 둘러보다 문득 나의 배낭에 눈길이 멈추었다. 방바닥에 기울어져있는 나의 힘없는 배낭이 처량해 보였다. 그리고 이 방과 참 어울리지 않았다. 한 번도 내 배낭이 초라하거나 부끄럽지 않았는데 이 방에서는 조금 이질적으로 보였다. 나는 배낭을 세웠다가 다시 캐리어를 놓는 자리로 마련된 긴 의자 같은 곳에 눕혔다. 그러고 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좀 나아졌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휴대폰을 꺼내 15일 만에 전원을 켰다. 아니 정확하게는 12일 만이었다. 바라데로에서 K와 만나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 딱 한번 인터넷을 연결한 이후로 한 번도 휴대폰을 켜지 않았다. 쿠바에 있는 내내 나에게 폰이 있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배낭의 아주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었다. 그렇게 2주 만에 세상과 연결이 되었는데, 내가 단절되었던 세상은 아무 일 없이 잘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처리해야 할 몇 통의 메일과 지인들로부터 온 몇 개의 메시지가 전부였다. 급한 연락이나 나쁜 소식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다시 디지털 세상에 접속함으로써 쿠바 배낭여행을 완전히 끝낼 수 있었다. 혼자 떠난 배낭여행을 또 한 번 무사히 잘 다녀온 것에 대해 감사하며 이번 여행을 마무리했다.
이번 쿠바 여행은 혼자 떠났지만 혼자였던 적이 거의 없었다. 항상 동행이 있었는데 그 동행들이 모두 한국인들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 물론 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여행을 하고 있었겠지만 내가 다닌 루트나 이용한 호스텔, 교통편 등이 모두 배낭 여행족들이 이용할만한 곳이라서 젊은 층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가끔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중장년층을 만나기도 했지만 나는 왠지 그들과 젊은이들보다 더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돌아보니 나이 차이가 많이 남에도 불구하고 스스럼없이 나를 대해준 동행들이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다.
쿠바 여행을 하면서 좋았던 점은 단연 새로운 풍경과 그들만의 문화와 생활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던 것들, 그리고 더할 나위 없는 여유를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기분 좋게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한국 사람들을 만나서 동행하게 된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 같은 언어로 감동하고 감탄할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한 여행이었다. 사실 남미 여행을 다니며 한국 배낭여행객을 만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운이 좋아 동행이 생겨도 유럽인이거나 브라질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쿠바에서 한국사람들과 계속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날로그 세상이 준 선물 같은 것이었다.
몇 년 전부터 쿠바 여행이 한국에 유행처럼 번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드라마와 여행 프로그램의 영향이 크겠지만 반가운 소식이었다. 내 주변에 여행에 관심이 없던 친구들도 쿠바 여행은 가고 싶다며 연락이 오기도 했다. 쿠바는 아직 환상과 미지의 문화권에 있다는 이미지가 큰 것 같았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쿠바가 관광시장개방을 한 사회주의 체제의 공산국가라는 점에서 특히나 호기심이 생길 수 있다.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람 사는 것은 어디나 같은데...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 문화의 차이를 알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조만간 몇 년 후에 다시 쿠바 여행을 하리라고 계획했다. 나를 더없이 편안하게 만들어줬던 아날로그 세상이 그대로이기를 바라지만, 아무래도 그대로 일 수는 없을 것이기에 그들의 변화를 확인할 겸 꼭 다시 쿠바로 떠날 것을 나 자신과 약속했다. 얼마나 많은 문명의 이기가 쿠바를 변화시킬까 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 변화를 감당하며 달라져버렸을 쿠바의 모습이 밉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 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나는 쿠바 배낭여행을 끝으로 배낭을 버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으로써 여행에 대한 의지도 꺾여버렸다. 얼마 동안은 여행에 대한 설렘보다는 움직이는 것이 귀찮아져서 여행을 잊고 살았다. 공교롭게도 그 이후로 코로나 19로 팬데믹 세상이 되어버려서 여행은 자연스럽게 더 멀어져 버렸다.
안타깝게도 팬데믹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은 쿠바든 어디든 여행 가기가 힘들어져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나도 2년 가까이 여행하는 것 대신에 지난 여행을 추억하며 지내고 있다. 다행히도 이 시간 동안 나의 여행 권태기는 지나간 듯하다. 다시 배낭을 메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고, 새 배낭을 마련해야겠다며 인터넷 쇼핑몰을 기웃대기도 한다. 얼른 다시 팬데믹 시대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서 배낭을 메고 떠나는 일이 설렘이 되고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길 바란다.
팬데믹 세상이 종식되고 예전처럼 여행이 자유로워지면 나는 새 배낭을 메고 다시 쿠바로 떠날 것이다. 그리고 지난번보다 더 길게 더 여유롭게 쿠바 여행을 즐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