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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나 Nov 07. 2021

하바나에서 마지막 춤을

안녕. 나의 쿠바 #12. Habana 마지막 밤과 낮

숙소에 돌아오니 주방이 왁자지껄했다. 주방 식탁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내 방은 주방 바로 앞이라 방에 들어가며 언뜻 보니 아침식사 때 봤던 몇 명과 D도 보였다. 그러나 그 무리에 끼어들어 함께 술을 마실만큼 넉살이 좋지 않았기에 나는 혼자 테라스에 앉아 어제 먹다 남은 럼을 마셨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주인아저씨에게 럼을 좀 마시겠냐고 병을 들어 보였더니 그는 얼른 컵을 가져다 대령했다. 럼과 콜라를 그에게 반쯤 따라주고 남은 반은 나의 텀블러에 마저 따르고 다시 테라스에 앉아 어두운 거리와 까삐톨리오를 바라보았다. 조용하고 쓸쓸하게 쿠바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다시 말없이 TV를 보았다. 나는 그의 그 말없음이 편했다.


테라스의 의자에 기대앉아 쿠바리브레를 마시며 거실의 불빛에 의지해 일기를 썼다. 2주 동안 쿠바를 돌아다닌 나의 흔적들이 노트에 빼곡히 남아 있었다. 불과 며칠 전이지만 벌써 추억이 되어 아주 오래전 일 같기도 했다. 그렇게 나름의 정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주방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거실로 나왔다. 아침 식사 때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던 S가 말을 붙였다.


"선생님, 이따가 11시쯤에 재즈 바에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D보다 나이가 좀 더 있어 보이는 서른 초반의 S는 아주 깍듯하게 항상 선생님을 붙여 나를 불렀다. 나와 띠동갑도 넘는 D도 '누나'라고 부르는데, 나는 어느새 호스텔의 친구들에게 '슨생님'이 되어 있었다. 예의 바른 것도 좋지만 차라리 D처럼 '누나'라고 터무니없이 불러주는 게 더 편했다. S와 동행은 아니지만 친해 보이는 여자애들도 함께 가자며 친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아주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가보면 분명 좋아할 것이라고 했다. 20 대인 그들과는 확연히 연배 차이가 날 텐데, 선생님이라 부르면서도 나를 끼워주니 내심 고마웠다. 나는 나의 마지막 밤을 그들과 함께 재즈 바에서 보내기로 하고 외출 준비를 했다.


모두 7명의 한국인들이 하바나의 밤거리로 나왔다. 우리는 처음에 택시를 타려고 했으나 멀지 않으니 차라리 걸어가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길을 잘 아는 S가 선두에 서고 그를 따라 어두운 길을 걸어 나갔다. 우리는 자연스레 둘셋씩 짝을 지어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모두 각자 다른 상황과 다른 히스토리를 갖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S는 한국에서 대기업에 다니고 있으며 열흘 휴가를 아주 어렵게 내어 멕시코와 쿠바를 후딱 돌고 있다고 했다. 멕시코의 한국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M은 회사가 파업으로 셧다운이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이참에 여행이나 하자 싶어 짐을 싸서 곧바로 쿠바로 날아왔다고 했다. 쿠바에서 이 주일을 보내고 내일 멕시코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들은 근무하는 나라와 회사는 다르지만 직장인으로서의 고충을 토로하며 아주 공감했다. 나도 예전에 회사 다니며 직장생활을 이골 나게 한 적이 있어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고, 세월이 지나도 직장인의 고충은 거기서 거기로 여전하구나 싶었다.  



그들이 말한 유명하다는 재즈 바는 생각보다 멀었다. 우리는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어서 재즈 바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이미 줄이 길게 있었다. 엄청 길지는 않았지만 우리 앞에는 대여섯 무리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줄이 언제 줄어들지 알 수 없으니 무턱대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S는 그나마 우리가 시간 맞춰 잘 온 것이라고 아마 곧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 뒤로 계속 줄이 늘어났다.


"선생님, 저쪽에서 조금 앉아서 기다리세요. 줄은 저희가 서 있을게요." 예의 바른 S는 나에게 경로우대도 해주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으나 그들은 한사코 앉아 있으라고 계단이 있는 곳으로 나를 떠밀었다. 어쩔 수 없이, 그럼 돌아가면서 앉아 있자고 내가 제안했다. 우리는 2조로 나누어서 한 팀이 앉아서 쉬면 다른 팀은 줄을 서고 수시로 교대해 주기로 했다. 먼저 나와 D, M이 계단에 앉아서 쉬었다. D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누나, 트리니다드에서 만났던 십 대 소녀 기억나요? 왜 깡마르고 혼자 여행 왔다던 애 있잖아요."

"응. 기억나지. 근데 왜? 걔도 하바나에 있어?"

"아뇨. 그게 아니라... 걔랑 클럽 갔을 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어서요."

"클럽에서 무슨 일 있었어? 뭔데?" 내가 궁금해하자 D는 마른침을 삼키며 살짝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걔, 레즈비언이래요. 사실은 여자 친구랑 헤어지고 충동적으로 혼자 여행 온 거래요..." D는 이 말을 하고는 내 반응이 어떨지 살피는 것처럼 내 표정을 보았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그 이야기가 '충격적'이라고 말하는 D가 더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그게 뭐 어땠다고 충격적이기까지 하니?"

"아니... 뭐... 이상하다거나 한 것이 아니라 너무 의외라서 제가 좀 놀랐어요."

"그래. 그럴 수 있지. 뭐. 걔는 아직 어린애잖아. 아직 미성년이라 자기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시기라서 동성이 끌리기도 하고 나중에는 이성에 눈을 뜨면 또 달라지기도 할 거야. 요즘 세상에 동성애가 뭐 별거니?"

"그렇긴 그렇죠..." D는 머쓱한지 말끝을 흐리며 덧붙였다. "걔가 이상하다는 것은 아녜요."

"그래. 이상한 것도 아니고 비정상도 아니야. 그리고 그건 어쩜 페이크일 수도 있어. 자기 방어를 위해 일부러 그렇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남자들이 귀찮게 하거나 피곤하게 하면 말이야. 나도 옛날에 클럽에서 남자들 떼어낼 때 써먹던 수법이었는데."


D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다른 사람에게 또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했지만 그에게 말하지는 못했다.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지만 진실이라고 해도 그것에 대해 뒷담화하듯 말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꼰대 포스가 나올까봐 그러지 못 했다. 또한 그것은 그의 자유이기 때문에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었다. 정말로 나는 예전에 남자애들이 귀찮게 따라다니면 '나는 여자를 좋아한다. 여자 애인도 있다.'라고 진지하게 고백을 하기도 하고, 믿지 않는 애들에게는 친구를 데리고 가서 애인이라며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면 아주 쉽게 그들은 떨어져 나갔고, 또는 아주 기분 더럽다는 듯이 욕을 해대기도 했으나 다시는 나를 쫓아다니지 않았다. 물론 이후에 의도치 않은 소문으로 약간 곤란하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여하튼, 그 아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든지, 그 사랑이 어떻든지 그건 그 아이의 사정이고, 물론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우리가 그 아이의 사랑에 대해 떠들 권리는 없었다.


우리는 두세 번 정도 교대해가며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30분 전쯤에 한차례 앞 줄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갔다. 그 후로 한참 잠잠하던 문이 열리고 드디어 우리 팀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전화부스 같은 빨간 문을 지나 지하로 내려가니 좁은 카페가 나왔다. 내부에 들어가서야 줄이 왜 그리 길고 빨리 줄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재즈 클럽이라는 거창한 이름에 비해 내부는 좀 좁았다. 음료를 받을 수 있는 바가 있어고 작은 테이블들이 다닥다닥 있었다. 우리는 7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을 안내받아 앉았다. 그리고 맥주와 와인, 모히또 등 각자의 취향에 맞게 음료를 주문하고 무대에 집중했다.



좁은 무대에서 네 명의 연주자가 재즈 연주를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연주자들은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들이었다. 그들의 연주는 정말 장인이라고 칭송할 수 있을 만큼 훌륭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재즈 연주만 해 온 듯 보였다. 그리고 연세가 지긋할 때까지 이렇게 연주를 하기 위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런 광경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광경인 듯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나는 아직 실제로 보지는 못했다.) 할아버지들이 연주하는 재즈이기 때문에 더 유명하고 그들의 연륜이 묻어난 연주이기 때문에 더욱 훌륭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되었다.


우리는 한 시간 정도 재즈바에서 놀다가 나왔다. 시계는 새벽 두 시가 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흥이 가시지 않은 우리는 걸어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번에도 S가 경로우대 차원에서 나에게 힘들면 같이 택시를 타고 가자며 택시를 권했으나 나는 같이 걸어가겠다고 나의 에너지를 보여 주겠다고 그의 예의 바른 호의를 뿌리쳤다. 그리고 그에게 농담 삼아 웃으며 덧붙여 말했다.


"경로우대 그만 좀 해~"


새벽 공기로 상쾌해진 하바나의 밤거리를 떼 지어 걸어가는 기분은 최고였다. 우리는 일부러 말레꼰을 찾아 해변 도로를 걸었다. 바닷바람으로 약간 쌀쌀하긴 했지만 새벽의 말레꼰을 걸어보다니! 그들이 아니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함께 걷는 이들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모두 신이 났다. 앞서 가던 D가 춤을 추며 걸었다. 옆에서 걷던 애들이 박수를 쳐주며 깔깔거렸다. 뒤에서 걷던 여자애들 무리 속에서 환호와 박수가 나왔다. D는 다른 애들에게도 춤을 추라며 부추겼다. 내 옆에서 환호를 보내며 걷던 J가 갑자기 폴짝폴짝 뛰어 나가며 춤을 추는가 싶었는데 D의 등을 때리고는 '나 잡아봐라~'를 외치며 멀리 달아났다. D가 코믹스럽게 그녀를 쫓아가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세상에! '나 잡아봐라'는 남녀 사이의 국률이 되었는가? 어떻게 MZ 세대가 저 말을 알고 행동하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까르르 대며 새벽 공기를 한껏 마시고 숙소로 돌아갔다. 짧게나마 함께 했던 그들 덕분에 나의 쿠바 여행의 마지막 밤은 완벽하게 즐거웠다.




다음날 아침, 짐을 싸서 데스크에 맡기고 체크아웃을 했다. 그리고 다시 하바나 거리를 걷기 위해 나갔다. 딱히 할 것은 없지만, 어제 들어가지 못한 암보스 문도 호텔에 있는 헤밍웨이의 집필실에 가 보고 하바나 클럽 박물관에 가서 좀 괜찮은 하바나 클럽 럼을 한 병 사는 것으로 여행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사실 하바나에서 안 가본 곳도 많지만 그저 발길 닿는 데로 걷는 것이 더 좋았다.


오비스포 길은 이른 오전인데도 벌써 여행객들로 활기찼다. 먼저 암보스 문도 호텔을 찾아가 어제 못 들어갔던 헤밍웨이의 집필실에 들어갔다. 이곳은 헤밍웨이가 머물며 글을 썼던 곳인데 지금은 호텔방 하나 전체를 박물관으로 꾸며서 5 쿡의 입장료를 받았다. 좁은 방이라 한 번에 두 세명 정도만 들어갈 수 있었다. 방 안은 간소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큰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책 몇 권과 타자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민트색 방 문이 참 예뻤다.



호텔에서 나와서 다시 오비스포 거리를 지나는데 어디서 신나는 음악 연주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가보니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신나는 쿠바풍의 카리브 음악이었다. 옆에서 구경하다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었다. 버스킹은 젊은이들이나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들이 길에서 버스킹을 하다니 놀라웠다. 어제 재즈바에서 연주하던 할아버지들도 그렇고 나이 들어서도 자기가 해오던 일을 놓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 생소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물론 그들에게는 생계가 걸린 일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들의 바구니에 동전 몇 개를 넣고 다시 길을 걸었다.


나는 어제도 걸었던 길을 걷기도 했고 또 새로운 길을 걷기도 하면서 하바나 클럽 박물관에 들러 구경하고 럼을 한 병 샀다. 럼은 생각보다 비쌌지만 나를 위한 기념품이라고 생각하며 큰 마음먹고 구매했다. 박물관의 기프트 샵에는 잘 포장된, 질이 좋아 보이는 쿠바 시가도 있었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피웠다는 시가가브랜드 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비냘레스에서 시가를 구매하지 않았더라면 여기에서 사도 좋았겠지만 가격은 두 세 배 이상이었다. 포장 값인지 질이 다른지 모르겠으나 엄청 고급스러워 보였다.


마지막으로 점심을 먹기 위해 이전에도 갔었던 일본 식당에 갔다. 그곳의 미소 된장국이 너무나 먹고 싶었다. 나의 주머니에는 생선 덮밥과 맥주를 한 병 시키기에 딱 맞는 돈이 남아 있었다. 택시비는 미리 지불했기 때문에 더 이상 돈 쓸 일도 없었다. 나는 마지막 한 톨의 밥알까지 그리고 마지막 한 모금의 된장국까지 맛있게 먹고 일어났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약간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다시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그만큼 후회 없이 재미있게 즐겼던 하바나였다.



숙소로 돌아가 다시 배낭을 찾아 메고 택시를 기다렸다. 오후 4시 비행기라 1시에 택시를 예약해 놓았다. 다행히 나 외에도 2명이 함께 타고 가게 되어서 10 쿡에 예약할 수 있었다. 어제 함께 재즈바에 갔던 M과 함께 택시를 타게 되었다. 다른 한국인 여자애 한 명도 호스텔에서 봐서 안면이 있었다. 우리는 올드카 택시에 짐을 싣고 택시에 탔다. 젊고 흥이 많은 올드카 주인이 메랭게 음악인지 살사 음악인지 여하튼 쿠바의 곳곳에서 자주 듣던 음악을 크게 틀고 출발했다. 쿠바와 헤어지기 위해 공항 가는 길마저도 신이 났다.


공항에 도착한 우리 한국 여자 셋은 각각 출국 수속을 하고 다시 출국장에서 만났다. 그리고 M은 멕시코로 C는 페루로, 나는 파나마로 뿔뿔이 헤어졌다. 다시 볼 수 없는 인연들이라 짧고 간결하게 서로 '건강하게 여행 잘하기'를 바라며 인사했다. 그렇게 나는 무사히 쿠바 여행을 마치고 파나마로 갔다. 물론 마지막에 비행기 탑승수속 체크인할 때 내가 예약한 비행기가 아니고 노선도 다른 비행기 여서 놀랐지만, 다행히 탑승수속에는 문제가 없어서 그대로 체크인했다. 덕분에 출발 시간이 조금 늦어졌지만, 더 이른 시간으로 바뀐게 아니어서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으니 그저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쿠바에서 비행기를 탈 때 가끔씩 이렇게 항공사에서 마음대로 예약을 바꾼다고 하니 마지막까지 주의하고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이륙한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쿠바는 2주 전에 내가 도착하면서 본 쿠바와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그땐 쿠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약간의 선입견과 부정적인 편견까지 있었지만, 떠나면서 본 쿠바는 더없이 편하고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조만간 꼭 다시 올게. 그러니 그때까지 안녕. 나의 쿠바!'라고 구름 속으로 사라진 거대한 섬나라를 다시 그리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Hasta luego Cu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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