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쿠바 #11. Habana 또다시 하바나
하바나에 돌아온 L과 나는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하고 호스텔에서 쉬었다. L은 내일 오후에 쿠바를 떠나기 때문에 사실 오늘이 쿠바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그녀는 혼자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며 숙소를 나섰다. 그래도 저녁식사는 같이 하자며 저녁에 하바나에서 맛집으로 유명하다는 식당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도 해가 지기 전에 다시 말레꼰으로 나가보았다. 하바나에서 여러 날을 머물렀지만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시간이 나면 말레꼰 해변으로 갔다. 숙소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바다가 있고 쿠바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에 더 자주 갔던 것 같다.
나는 텀블러에 커피 대신 어제 사놓고 마시지 못한 럼을 가득 담았다. 말레꼰에 앉아 석양을 보면서 혼자 쓰디쓴 럼과 고독을 함께 씹어보고 싶었다. 해 질 녘의 말레꼰은 아주 평화로웠다. 낚시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고, 춤추고 노래하는 무리들도 보였다. 나는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천천히 럼을 마시며 그 모든 광경들을 보았다. 가끔씩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순간이 있는데 딱 그 순간에도 그랬다. 너무 평화롭고 마음이 따스해지는 순간이었다. 가끔 살랑이는 바닷바람이 이 순간이 현실임을 일깨워 주었다.
"Hola! Chinita"
어떤 쿠바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Chinita(치니따:중국 여자아이)라는 말이다. 보통 중남미 사람들이 아시안 여자를 귀엽게 부르는 말로 쓴다는데 가끔씩 좋지 않은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뜻이 어떻든 나는 중국을 의미하는 단어로 나를 부르는 것이 상당히 불쾌했다.
"나는 한국 사람이야! 치니따라고 부르지 마!"
나는 그에게 인사도 생략하고 쏘아 붙이 듯 말했다. 그는 미안하다며 뭐라 뭐라 중얼거리더니 들고 있던 낚싯대에 미끼도 끼우지 않고 던지고는 내 옆에 아예 자리를 잡았다. '이런 불청객 같으니라고!' 나는 속으로 짜증이 났지만 이곳이 내 땅도 아니니 그를 쫓아낼 수도 없었다. 자리를 옮길까 하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가 그렇게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고 또 낚시하는 모습을 보니 호기심이 생기기도 해서 그냥 앉아 있었다. 그는 낚시를 하면서 가끔 나를 돌아보며 한국에 대해 묻고 쿠바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는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무슨 회사인지는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다.) 5시에 퇴근해서 거의 매일 이곳에 와서 낚시를 한다고 했다. 물고기는 많이 잡지 못하는데 가끔 물고기를 잡으면 그걸로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해 먹는다고 했다. 결혼은 안 했는지 아이는 없는지 묻고 싶었지만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질문은 하지 않고 나는 그냥 듣기만 하는 쪽을 택했다. 그도 쿠바를 아주 사랑하는지 쿠바에 대한 애국심이 가득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는 참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뭐라 뭐라 떠드는데 난 반은 알아듣고 반은 흘려듣고 반은 날려버려서 대충 호응을 하며 럼을 홀짝거렸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해가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지고 있었다.
"넌 아까부터 뭘 그렇게 마시니?" 그가 나의 텀블러를 보면서 말했다.
"이거? 론이야. 너 컵 있어? 컵 있으면 좀 줄게." 그는 컵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럼 어쩔 수 없지라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후에 더 자주 그는 나의 텀블러에 눈길을 주었다. 나는 남아있던 마지막 몇 모금을 그에게 주었다. 그가 한 모금 마시고 돌려주었으나 마저 마시라고 했더니 홀짝홀짝 금세 비웠다. 어느새 주위는 어둠이 깔렸다. L과의 약속 시간이 다 되기도 해서 나는 일어섰다. 그도 낚싯대를 접었다.
"나는 내일도 여기에서 낚시를 할 거야. 내일 시간이 있으면 또 여기에서 만나자."라고 그가 말했다.
"그래. 좋아." 나는 웃으며 대답하고 그에게 얼른 "Chiao(안녕)"하고 안녕을 고하며 그가 악수라도 하기 위해 다가오기 전에 등을 돌려 빠르게 걸었다. 나는 거짓으로 대답했고 내일 또다시 말레꼰에 오더라도 그를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L과 저녁을 먹기로 했던 식당인 Los Nardos 앞에서 L을 만났다. 식당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줄을 서 있었다. 아무리 맛집이라지만 무슨 줄이 이렇게나 길까... 알고 봤더니 이 건물에 세 개의 식당이 있는데 앞사람에게 무슨 식당 줄인 지 물어보고 서 있어야 했다. Los Nardos 식당의 줄이 제일 길었다. 그렇게 줄을 한참 서 있는데 나를 향해 누군가가 다가오면서 영어로 해맑게 인사했다. 바라데로에서 함께 택시를 타고 같은 리조트에 갔던 쿠바 여자애였다. 그녀의 옆에는 여전히 마르고 말이 없는 그녀의 남자 친구가 있었다.
"안녕. 반가워. 여기에서 만나네? 여행 잘했어?"
그녀는 여전히 귀에 거슬리는 억센 억양의 영어로 반갑게 물었다. 나는 스페인어로 인사를 했다. 그녀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조금 더듬거리며 말하면서 머릿속으로 계속 그녀의 이름을 찾았다. 사실 그녀도 내 이름을 잊어버렸을 것이기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왔다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아빠와 삼촌들 이모들까지 대가족이었다. 그들은 아무래도 쿠바에서 부자에 속하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녀는 내일 다시 남자 친구와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녀의 남자 친구는 쿠바 사람인지 아니면 미국 사람인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별로 말이 없고 그녀만 따라다니는 걸로 봐서는 쿠바 남자는 아닌 듯싶었다. 그녀는 여긴 유명하고 맛있는 식당이라며 맛있게 먹으라고 인사하고 앞쪽의 자기 가족들 무리로 돌아갔다. 나는 그녀가 더 길게 말하지 않아서 안도감을 느꼈다.
"언닌 어쩜 저런 사람들도 알아요?"
L이 신기한 듯이 물었다. '그러게 나는 어떻게 저런 사람들도 알게 되었을까...' L에게 길게 설명하는 대신 그냥 바라데로에서 택시를 같이 탄 사이라고만 말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녀는 내가 만난 쿠바 사람들 가운데 쿠바를 폄하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분명 그녀의 남자 친구는 미국인일 것이다'라고 혼자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쿠바 여행을 하면서 줄곧 한국인들과 동행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게나마 알게 된 쿠바인들이 있고 그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확실히 내가 쿠바 속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했다. 유창하진 않지만 그런대로 써먹을 수 있는 나의 스페인어 실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스페인어를 그런대로 써먹을 수 있게 된 이후로는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아서 실력이 더 늘지 않는다. 특히 영어를 쓸 일은 극히 드물어서 영어 실력은 항상 바닥에서 맴돈다. 그러니 저 쿠바 여자애가 스페인어 억양으로 영어를 해대니 급 피곤해져 피하고 싶기만 했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줄을 서서 들어가게 된 식당은 너무 어두웠다. 어둠 속의 은은한 노란색 조명 아래서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우리보다 앞서 들어온 아까 그녀의 가족들은 한껏 들떠서 건배를 하고 뭔가를 마셔대고 있었다. 우리는 어떤 음식이 맛있는지 전혀 정보가 없었기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생선 구이를 시키고 L은 돼지고기를 시켰다. 주문하기 전에 그녀에게 가서 음식을 추천받아볼까 하고 잠깐 생각했지만 그녀의 끔찍한 영어를 떠올리고는 이내 말 걸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생선 구이는 그냥 평범한 생선 구이였다. L은 돼지고기 구이가 맛있다며 접시를 다 비웠다. 평소 식사량이 적은 편이어서 항상 음식을 남기던 것에 비하면 정말 맛있었던 모양이었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말레꼰을 걸었다. 그리고 몇 번이나 가려고 했으나 항상 문이 닫혀 있어서 못 갔던 수제 맥주집을 향해 걸었다. 말레꼰 동쪽 끝에 있는 그 맥주집은 역시나 문이 닫혀 있었다. 맥주집인데도 가게 문을 일찍 닫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우리가 처음 만났던 플라자 비에하에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갔다. 골목을 테라스처럼 꾸민 카페들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우리는 카페 종업원이 추천하는 화려한 장식의 칵테일을 한 잔씩 하고 쿠바 여행을 소회 하며 서로에게 감사하며 건배했다. 쿠바 여행을 하는 동안 반 이상을 L과 함께 했다. 그것은 L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렇게 길게 함께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서로에게 좋은 동행이었던 것 같다. 함께 다니면서 불편한 점이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L과 마지막으로 하바나 거리를 산책했다. 우리는 익숙한 길을 걷기도 했고 새로운 길을 걷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가보고 싶었던 헤밍웨이의 집필실이었다는 호텔에 갔다. 하필 일요일이어서 집필실 방문은 할 수 없다고 했다. 대신 우리는 호텔의 루프탑에 있는 카페에서 멀리 보이는 검푸른 바다를 보면서 모히또를 마셨다. 오전 시간인데도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히또를 마시고 있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덕분에 이미 충분히 더웠기 때문이었다.
L이 1시에 떠나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정오가 되기 전에 숙소로 돌아갔다. 그 시간에 떠나는 사람은 L 혼자였기에 L은 혼자 20 쿡이라는 택시비를 내고 가야 했다. 거실에서 멀뚱히 앉아있는 우리에게 택시가 도착했다고 주인아주머니가 알려주었다. 나는 L을 도와 배낭을 들고 그녀를 배웅하기 위해 택시가 있는 곳까지 내려갔다. 그녀는 한사코 괜찮다고 숙소에서 인사하려고 했으나 먼 거리도 아니었으므로 길 모퉁이에 세워진 택시까지 함께 갔다. 택시에 탄 그녀가 창문을 내리고 큰 눈을 껌뻑거리며 슬픈 사슴처럼 마지막 인사를 했다.
"언니,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덕분에 편하게 여행 잘했어요. 마지막까지 조심해서 여행 잘하세요."
"나도 너 덕분에 즐거웠어. 함께 해줘서 고마웠고. 몸 건강히 남은 여행 잘하고 항상 조심히 다녀."
우리는 또 보자는 인사를 할 수 없었다. 장기 여행자인 그녀는 아직 3개월이나 더 여행을 할 것이었고, 나는 쿠바 여행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언제 한국에 갈지는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다. 떠나는 택시에 손을 흔들어 주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매일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여행이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을 함께 했던 동행과의 헤어짐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언제나 아쉽고 뭔가 아련하고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나면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에도 정이 많이 든 사람이라면 더욱 허전해진다.
L이 떠나고 혼자가 된 나는 숙소에서 빨래를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나도 내일 쿠바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상기되었다.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어디라도 나가봐야 할 것 같았다. L 없이 혼자 나가는 것이 몹시 허전했지만 나는 혼자 다시 모로성에 가 보기로 하고 간단히 카메라 가방만 메고 방에서 나왔다. 거실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무리에서 머리에 까치집을 한 D가 나를 보고 인사했다.
"누나, 여기에 계셨어요? 우와 이렇게 다시 만나네요! 하하"
'세. 상. 에"
산타 클라라부터 트리니다드까지 함께 동행했던 D는 여전했다. 어젯밤에도 클럽에서 달렸는지 얼굴은 부었고 머리는 까치집으로 헝클러 져 있는 것을 봐서 방금 일어난 듯했다. 우리는 반갑기도 하고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와 간단한 근황과 그간의 여행 이야기를 짧게 나눈 후에 나는 숙소를 나섰다.
나는 일부러 가 보지 않았던 길을 택해서 걸었다. 어느 골목에서 사람들이 손에 커다란 피자를 들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먹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배가 심하게 고팠다. 나도 피자 가게 앞으로 가서 앞사람이 주문하고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나는 가장 흔해 보이는 나폴리탄 피자처럼 보이는 것을 주문했다. 주인은 크게 잘라진 피자 한 조각을 종이 위어 얹어서 나에게 건넸다. 평소에 피자를 즐기지 않는 편이어서 특별히 맛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따뜻하게 구워진 피자는 맛있었고 한 끼 식사로도 충분했다.
나는 두르고 둘러 버스를 타고 모로성으로 향했다. 버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고 한국의 퇴근시간대에 만원 버스를 연상하게 했다. 모로성이 보이는 정류장에서 거의 3분의 1의 사람들이 내렸다. 대부분 젊은이들이었고 신나게 떠드는 그들을 따라가니 넓은 벌판이 나왔다. 모로성 옆에는 해지기 전에 일몰을 보기 위해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모로성은 내가 쿠바에 도착한 다음날 일행들과 함께 온 곳이어서 감회가 남달랐다. 그게 2주 전의 일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빛바랜 시간으로 느껴졌다. 아직 해지기 전이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일몰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무리의 한국인들이 큰 카메라들을 세워놓고 혹은 메고 사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진 동호회에서 출사 여행을 온 모양이었다. 그들은 온통 사진을 더 잘 찍기 위해 자리를 선점하고 서로 사진에 대한 대화를 큰 소리고 했다. 그들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선뜻 그 무리의 어떤 이에게도 '나도 한국사람이오'하고 인사를 하거나 말을 붙이지 못했다. 아니 말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석양을 보고 싶었는데 분주하게 움직이며 셔터를 눌러대는 그들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해가 지고 하바나에 도시의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쿠바와 안녕을 고했다. 오늘이 마지막 밤이고 또다시 쿠바에 오기 전까지는 이렇게 아름다운 쿠바의 일몰을 볼 수 없을 것이기에 약간 슬퍼졌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만, 잠시만 더 하고 있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어두워지고 있었다. 깊숙이 가라앉고 있던 센티했던 감정이 현실을 깨닫고 확 깨졌다. 돌아갈 땐 페리를 타고 가려고 했던 터라 정신을 차리고 바삐 페리 선착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페리 선착장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기에 이미 길은 어두워졌고 전에 왔던 길과는 또 다른 길이 계속 나왔다. 가로등도 너무 듬성듬성 있어서 어두웠고 사람이 없어서 무서웠다. 이리저리 길을 헤매고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군인 둘이 나타났다. 그들에게 페리 선착장으로 가는 길을 물어 겨우 선착장에 도착했다. 어두워져서 배가 끊어지지는 않았을까 하고 걱정했지만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안도할 수 있었다. 나는 답답한 대기실에서 나와서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을 보며 배가 오기를 기다렸다. 가로등이 하나밖에 없는 어두운 운동장에서도 아이들은 공을 잘 쫓아다녔다.
배가 도착했다. 나는 낡은 배의 뒤쪽에 창 틀만 있는 창가에 기대어 섰다. 빼곡히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분명히 아는 얼굴인데 그쪽에서도 나를 보고 선뜻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어디서 봤더라를 계속 되뇌며 기억을 더듬거렸다. 그때는 분명 혼자였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애인인 듯 보이는 여자와 너무도 닭살스러운 애정행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히론의 모야 아저씨네에서 옆방에 묵었던 무리 중에 한 명이란 것이 생각났다. 그들과 테이블은 달랐지만 거의 저녁 식사를 함께하다시피 했던 터라 그가 곧 애인이 온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던 것이 기억에 스쳤다. 그를 기억해냈지만 굳이 아는 체하기도 뭐하고 모른 체하기 뭐했다. 나는 이내 모른 체하는 쪽을 택하고 아얘 몸을 돌려 그들과 등을 졌다. 이런 애매한 만남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나이 먹고도 아직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넉살과 오지랖이 늘었지만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과 물러나는 법에는 아직도 서툴다. 특히 여행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만남이나 헤어짐에 많이 무뎌지기도 한 것 같았는데 만남이든 헤어짐이든 여전히 어렵다. 오늘 하루만 해도 나는 얼마나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비록 그 깊이와 파장이 다를지라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의 내면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배는 어느새 깜깜한 바다를 지나 밝은 불빛이 있는 도시를 찾아가 멈추었다. 낡은 배의 창가에서 검은 바다에게 안녕을 고하고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다시 하바나의 희미한 가로등 불빛들을 따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