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속으로 #10. Viñales(비냘레스)
비냘레스로 가기 위해 우리는 먼저 버스표를 예매해야 했다. 비아술(Viasul, 쿠바 시외버스)도 있지만 우리는 호텔에서 운영하는 관광버스를 이용했다. 플라자 호텔의 1층에서 비냘레스로 오가는 버스를 예매하고 탈 수 있었다. 까사 호아끼나에서 같은 방을 쓰는 한국인 여자애가 함께 가자고 제안해서 우리는 꼬히마르에서 돌아온 저녁에 플라자 호텔에서 만나서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가 표를 예매할 수 있었다. 우리는 표를 예매한 후에 플라자 호텔의 루프탑에 올라 가서 모히또를 마시며 하바나의 석양을 보았다. 쿠바에서 모히또를 이렇게나 즐겨마시다니...
"나의 다이끼리는 여기 있다."
"나의 모히또는 여기 있다."
헤밍웨이가 어느 가게에서 했다는 말인데, 이 말 때문에 유명해진 다이끼리 바(Bar)와 모히또를 파는 식당이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상술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쿠바에서 정말 이 두 칵테일이 유명해서인지 흔하기도 했고 덕분에 많이 마셨다. 나는 모히또는 몰디브에서나 마시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비냘레스로 떠나기 위해 우리는 간단한 짐만 챙기고 나머지 큰 배낭은 까사 호아끼나에 맡겼다. 비냘레스에서 1박 2일을 보낸 후에 다시 하바나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L과 내가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옆 침대의 여자애가 부스스 일어나더니 말했다.
"저는 아무래도 비냘레스로 같이 못 갈 것 같아요."
"왜요?" L이 물었다.
"다시 트리니다드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쿠바를 떠나기 전에 다시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요."
그녀는 아무래도 트리니다드에 끊어내기에는 미련이 많이 남은 인연을 두고 온 듯했다. 나는 직접적으로 그녀와 별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 잘 몰랐지만, L에 의하면 그녀는 살사를 배우며 알게 된 쿠바노(쿠바 남자)가 있는데 아마도 그를 만나러 가는 것 일거라고 했다. 여행 중에 아주 깊은 인연을 만난 것 같다며 그렇게 그녀는 트리니다드로 가고 L과 나는 다시 둘이 되어 비냘레스로 떠나게 되었다.
비냘레스로 가는 버스는 표를 예매한 플라자 호텔에서 탈 수 있는데, 10시에 출발하기로 했던 버스가 11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이제는 버스가 제시간에 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출발 시간이 지연되는 것에 이력이 났지만, 한국인인 우리는 안절부절못하며 몇 번이나 사무실을 오가며 버스의 행방을 물었다. 그러나 우리 외에도 분명히 버스를 기다리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느긋하게 로비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며 기다렸다. 조금 늦었지만 버스는 결국 왔고 기다리던 여행객들은 '버스가 왔으니 됐다.'며 웃으며 탔다.
불안하게 기다리던 우리는 굳은 얼굴로 버스에 올랐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버스에 탄 이들 중에 나만큼 굳은 얼굴을 한 사람은 찾아보지 못했다. 한국인인 L을 제외하고는 내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1시간이나 늦게 온 버스에 전혀 유감이 없는 듯했다. 모든 한국인이 그렇지 않겠지만 유독 정해진 시간에 민감하고 여행 와서도 느긋하지 못하는 게 한국인들의 습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나 우리나 같은 상황에 같은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는데, 그들은 상황이 어떠하든 그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여행자들 같았다. 버스가 조금 늦게 온다고 해서 그렇게 큰 일인 것도 아니고 버스가 왔으니 예정대로 가면 되는 것인데, 버스가 늦게 온다고 화를 내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었다. 여행자로서 좀 느긋해지고 상황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장착해야 했다. 다시 한번 느긋해지기로 나에게 주문을 걸었다.
좀 늦으면 어때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졸음이 몰려왔다. 버스 때문에 곤두섰던 신경이 한숨 자고 나니까 말끔히 씻어졌다. 훨씬 기분이 좋아졌고 비냘레스로 향하는 길의 풍경들 덕분에 비냘레스가 더 기대되었다. 넓고 푸른 들판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비냘레스에는 자연경관을 볼 수 있는 유명한 관광지가 여러 군데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관광지를 가려고 온 것이 아니어서 가까운 곳만 가보고 동네나 구경하며 다닐 예정이었다. L도 딱히 가 보고 싶은 곳이 있다는 건 아니어서 우리는 도착해서 발 닿는 데로 가보기로 했다.
우선 숙소를 찾아야 했는데, 히론에서 만났던 커플이 알려준 숙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 커플은 지도까지 그려주며 정말 좋은 숙소라며 밤에는 쏟아지는 별들을 볼 수 있고, 아침에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다며 강력하게 추천했다. 우리는 그들이 그려준 지도를 보며 숙소를 찾아 길을 걸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들이 말한 2층 노란 집은 한 두 개가 아니었고 그들의 설명과는 다른 곳에 있었다. 우리는 몇 번이나 같은 길을 오가며 찾아다녔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집에 묵기로 했다. 가격은 거의 다 비슷했다. 아침은 별도였는데 L이 아침을 안 먹는다기에 나도 신청을 안 했더니 그 이후로 주인아주머니의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리고 방에는 더블 침대가 두 개였는데, 우리에게 한 침대를 쓰면 안 되겠냐며 약간 귀찮은 듯 침대를 정리해 주었다. 나는 그럴 수 없다며 침대 하나에 10 쿡이지 않냐고 말했더니 더는 말하지 않았다. 이후로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는 점심을 먹을 겸 동네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나갔다. 동네를 걷는데 보이는 풍경들이 다른 도시들과 또 다른 분위기가 났다. 하바나와도 확실히 달랐고, 트리니다드나 히론과도 다른 느낌이었다. 뭐랄까 이곳이 훨씬 더 쿠바 같다는 느낌이 났다. 물론 번화가인 중앙 공원 근처는 분위기가 좀 달랐지만 말이다. 중앙 공원 근처에는 세련된 식당들이 즐비했다. 장작을 피워 조리를 하는지 매캐한 연기 냄새가 고기 굽는 냄새와 어우러져 거리에 떠 다녔다. 우리는 그 냄새에 이끌려 장작에 구운 스테이크를 파는 집으로 가서 고기를 먹었다. 와인과 곁들여 먹은 장작 숯불에 구운 고기는 훌륭했다.
비냘레스는 작은 동네였다. 늦은 점심을 먹고 동네를 한 바퀴 걸었다. 동네를 걸어 다니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다들 투어를 가는 것인가 보았다. 비냘레스는 관광 상품 투어가 많은 만큼 여행사 사무실도 많았다. 정확히는 비냘레스 외곽으로 떠나는 관광투어들인데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가기는 어려운 그런 곳들이었다. 선사시대 모사 벽화가 그려진 계곡이나 인디오 동굴이 있다는 마을로 말을 타고 가는 투어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상 그건 오늘도 내일도 하지 못하고 콜렉티보에 사람들을 모아서 가는 투어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끌리지 않았다. 나와 L이 가장 잘 맞는 부분이 있다면 우린 둘 다 관광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며, 특히 단체 관광 투어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서 우린 깔끔하게 투어는 하지 않기로 했다.
우린 또다시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걸었다. 동네의 끝에서 끝까지 갔다가 다시 중앙 공원에서 앉아서 쉬었다. L은 인터넷을 쓸 일이 있어서 휴대폰을 하고 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아까 들렀던 여행사 사무실의 호객꾼이 우리에게 다가와 시가 농장에라도 가보지 않겠냐며 자기가 싼 택시를 불러주겠다고 호객을 했다. 나는 시가에 관심 없다며 그의 호객을 원천 차단했다. 그래도 그는 뭐라 뭐라 칭얼거리다가 한참 후에 돌아갔다.
심심해진 우리는 유명한 호텔의 전망대에라도 다녀오자며 의견을 모았다. 택시를 타면 10 쿡 이내로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택시를 잡아서 흥정을 하니 웬걸 왕복 6 쿡에 갈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착한 택시기사를 만나서 분홍 호텔로 유명한 쟈스민네스 호텔 전망대까지 갔고 그는 30분간 우리를 기다려 주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비냘레스의 듬성듬성한 산들을 보고 왔다. 분홍 호텔이 예쁘다고 했는데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내려오는 길에 택시 기사가 시가 농장은 가 봤냐며, 자기가 아는 시가 농장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시가도 피워볼 수 있고 농장도 볼 수 있다며 우리를 꼬셔댔다. 나는 살짝 '시가 농장으로 한 번 가봐?'라는 마음이 들었다.
"비냘레스가 시가의 원산지라는데 농장에 가서 시가라도 하나 사가야 하는 거 아닐까요?"
L이 내 마음을 읽었는지 시가 농장에 한번 가보자는 듯이 말했다. 우리는 택시 기사와 흥정을 해서 모두 15 쿡에 다녀오기로 했다.
택시 기사는 시가 농장 앞에 우리를 내려주고 안내하는 사람을 불러주었다. 황토색 흙길을 따라 농장으로 들어가니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넓은 담배밭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맨발로 흙을 밟으며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그들은 농장 가까운 마을에 사는데 둘은 형제고 키가 큰 아이는 이웃에 산다고 했다. 아이들은 동양인인 내가 신기한지 부끄러워하면서도 자꾸 나를 힐끔힐끔 보았다. 그러나 나와 눈이 마주치면 얼른 얼굴을 돌려버렸다.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들이 예뻐서 뭐라도 주고 싶었지만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괜히 미안했다.
농장은 나름 시스템적이었다. 우리를 안내하는 남자가 농장의 이곳저곳을 안내해 주었다. 담뱃잎을 말리는 곳과 그 잎을 말아서 시가로 만드는 작업대가 있는 곳이 신기했다. 남자는 우리를 카페 옆의 테이블에 앉히더니 시가를 피워보라고 권했다. 난 담배 냄새를 싫어해서 피워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L이 먼저 피워보더니 달달하다며 한번 피워보라고 했다. 시가에 꿀을 발라주기 때문에 입에 대자마자 살짝 달콤한 맛이 느껴졌지만 이내 꾸리꾸리한 담배 연기가 입속으로 들어왔다. 순간 나도 모르게 연기를 삼키고 말았다. 이런! 시가는 연기를 삼키는 것이 아니라 입에 머금고 있다가 그대로 뿜어내는 것이었는데, 이십여 년도 전에 젊은 패기에 멋으로 몇 번 피워 본 담배 피우는 방법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지 연기를 빨아들이자마자 목구멍으로 들어갔다가 코로 입으로 나왔다. 당황스러웠다. 남자는 연기를 삼키지 말고 머금고 있다가 뿜어보라고 다시 권했다. 이번엔 의식적으로 연기를 머금고 있다가 한꺼번에 뿜었다. 그런 내 모습이 웃기는지 남자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시가는 멋으로 피우는 거라 했는데, 멋을 부리기엔 연기가 너무 성가셨고 연기를 머금은 입속의 이가 누렇게 변하는 느낌이어서 두 번 다시 피우고 싶지 않았다. 두 세 모금 빨았지만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릴 때도 느꼈지만 나는 체질상 담배랑 맞지 않는다. 내가 담배를 좋아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우리는 시가를 두 묶음씩 사서 나왔다. 쿠바에 왔으니 시가를 사 가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그 어떤 선물이나 기념품보다도 두둑이 샀다. 시가 농장에 오기 전에는 이렇게 우리가 시가를 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홀리듯이 충동구매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매우 기분 좋게 두 꾸러미씩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옥상에서 비냘레스의 나지막한 산 너머로 해지는 모습을 보며 맥주를 마셨다. 여기에서 보는 별이 예쁘다길래 별을 보려고 기다리다가 배가 고파진 우리는 다시 중앙공원이 있는 메인 거리로 나가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나는 이번에도 숯불에 구운 소고기를 먹었고, L은 파스타를 먹었다. 하우스 와인을 시켰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세 잔이나 마셔버렸다. 와인 덕분에 살짝 기분이 올라간 우리는 숙소에 가서 마실 요량으로 '하바나 클럽'론 한 병과 콜라를 사들고 갔으나 피곤해서 바로 잠들고 말았다. 비냘레스에서의 첫날은 하루가 정말 길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다음날 우리는 여전히 할 일은 없었지만 일찍 일어나 동네를 또 배회했다. 예쁜 카페에서 아침을 먹고 어슬렁거리다 우연히 토산품 시장을 발견해서 기념품을 몇 개 사기도 하고 동네 구석구석을 다 살피기라도 하려는 듯이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보며 걸었다. 걷기에 편한 깔끔하고 잘 정돈된 길도 있었지만 시멘트가 깨지고 웅덩이가 패인 길들도 더러 있었다. 신기하게도 비냘레스 아침의 풍경은 거의 대부분의 집들이 물청소를 열심히 해대는 것이었다. 나는 중남미의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여기처럼 거실 전체에 물을 부어서 청소를 해대는 곳은 처음이었다. 보통 한국사람들이 화장실 혹은 가게 바닥을 물청소하듯이 물을 끼얹으며 청소를 했다. 여긴 물이 부족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이 동네에도 쿠바 사람들의 애국심을 드러내는 곳들이 더러 보였다. 쿠바 국기를 걸어놓은 집들이나 벽화로 체 게바라나 피델 카스트로를 그려놓은 곳도 있었다. 벽화들이 지저분하지 않고 깔끔해서 보기에 좋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Yo soy Cuba(나는 쿠바다. 혹은 내가 쿠바다.)'라는 문구가 그려진 곳이었다. 하바나에서도 본 듯하지만 여기처럼 강렬하지는 않았다. 내가 사진을 찍고 있으니 그곳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할아버지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큰 소리로 말했다.
"Yo soy Cuba!(내가 쿠바다!)"
L과 나는 깜짝 놀라 그를 한 번 힐끗 보고는 시선을 거두고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가 다시 말했다.
"이봐, 아가씨들! 내가 쿠바야. 나를 찍어. 돌을 찍지 말고."
순간 나는 그 할아버지가 정신이 나간 사람인가 싶었다. 아니면 아침부터 술에 취했나 싶을 정도로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자신을 찍으라고 어필하는 할아버지는 처음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할아버지는 약간 수줍은 듯이 웃었다. 사실 그를 정확하게 볼 수 없었기에 그가 수줍게 웃었는지 호탕하게 웃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하얗게 드러난 이만 기억에 생생했다. 우리는 약간 겁이 났기 때문에 감사하다는 말만 남기고 얼른 그 자리를 떴다. 그렇게 겁내 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는데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으나, 지금 돌이켜보니 그늘에 앉아 있던 그의 얼굴이 그늘에 가려져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쿠바를 여행하면서 쿠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볼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호스텔이나 민박집주인들과 짧게 나눈 대화가 전부이지만 그 짧은 대화 속에서도 그들의 쿠바에 대한 애국심이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쿠바에서 사는지는 그런 짧은 대화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얼마나 나라사랑이 지독하면 '내가 쿠바다'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로 '내가 대한민국이다'라는 말은 못 할 것 같다. 물론 나도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남들 못지않은 애국심을 갖고 있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해외에 나오면 모두가 애국자가 됨에도 불구하고.
L과 나는 다시 비냘레스의 예쁜 길들을 배회하다 점심까지 여유롭게 먹고는 오후 2시에 오기로 했으나 2시 반이 넘어서야 도착한 버스를 타고 기분 좋게 하바나로 돌아왔다. 다시 하바나로 돌아오니 이젠 뭔가 집 같은 포근함과 안락함마저 느껴졌다. 돌아갈 곳이 있어서 다시 돌아온 곳은 뭔가 이처럼 안식처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쿠바 여행을 끝내고 진짜 나의 집으로, 나의 안식처로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겨우 하바나에서 보낼 이틀만 남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벌써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