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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나 Oct 19. 2021

노인과 바다의 그 마을은 어디로?

쿠바 속으로 #9. 다시 하바나 그리고 꼬히마르(Cojimar)

히론에서 하바나까지 버스로 세 시간 정도 걸렸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한번 쉬기는 했지만 계속 앉아있었더니 허리와 엉덩이가 아팠다. 버스에서 트리니다드의 차메로 아저씨네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했던 신혼부부를 우연히 다시 만나서 우린 터미널에서 함께 택시를 타고 숙소까지 갔다. 숙소는 각각 달랐지만 근처였기 때문에 10 쿡에 흥정할 수 있었다. 나는 다시 '까사 호아끼나' 호스텔로 갔고 L은 '까사 요반나'에서 Y를 만나기로 해서 그쪽으로 갔다. 우린 저녁에 호아끼나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까사 호아끼나에 예약을 해 두었기 때문에 비록 푹신하진 않지만 내 침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짐을 내려두고 잠시 쉬었다. 그리고 거실에서 L과 신혼부부를 기다리다 해지는 말레꼰을 걸어보고 싶어서 혼자 길을 나섰다. 그들이 올지, 또는 언제 올지 모르기에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어쩌면 길을 걷다가 하바나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밖은 어둑어둑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말레꼰을 걷다가 지나가는 기차에 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차 같은 것이었는데 말레꼰을 따라 운행하는 관광용 전차로 왕복 1 쿡이었다. 우연찮게 타게 되었지만 가성비 좋은 관광열차였다. 낮에 타도 좋겠지만 밤이어서 감성적이라 더 좋았다. 그나저나 L도 함께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호아끼나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내 오늘은 그녀에게 Y가 있으니 되었다며 걱정을 떨쳐냈다. 


어두워진 골목길을 걸어가다 정신을 차리고 밝고 사람들이 많은 골목길만 찾아 걸었다. 그러다 음악 소리가 흥겨운 바(Bar)를 찾았다. 무대도 없는 곳에서 쿠바 전통 타악기와 기타로 연주하는 연주자와 가수가 노래하며 춤추고 있었다. 가게의 내부도 무척이나 좁아서 테이블이 5개 정도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이 있는 테이블에 합석했다.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 중년 남자와 젊은 여자가 피냐콜라다같은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간간히 물어오는 한국과 북한에 대한 질문에 답하며 맥주를 마셨다. 세 곡정도 노래를 듣고 나니 연주나 노래가 비슷한 것 같았고 춤추는 이들이나 가게 안의 사람들이 잘 즐기고 노는 것에 비해 나는 별로 즐기지 못해 이질감이 느껴졌다. 나는 약간의 팁을 주고 가게를 나왔다.


숙소로 가는 길에 광장에서 페스티벌을 하는지 아주 큰 무대에서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광장에 있는 조형물의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 앉아 멀리서 공연을 보았다. 조금 전에 보았던 가게에서의 공연이나 이렇게 큰 무대에서의 공연이나 세션의 화려함의 차이일 뿐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멍하니 공연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언니! 아 하하하 오랜만이에요!" 바라데로에서 함께 있었던 Y 였다. 잇달아 L도 나타났다. 

"내가 발견했지. 멀리서 보니 익숙한 검은 실루엣이 보이더라고." Y는 L에게 자랑처럼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까 언니 찾으러 까사 호아끼나에 갔었는데 없더라고요." L이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나는 배가 고파 기다리다가 나왔다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Y는 반갑게 웃었지만 나는 둘과의 갑작스러운 재회에 조금 당황했다.  


쿠바에선 이렇게 의도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높다. 반대로 약속하면 만나기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Y와 짧게 그간의 근황 인사를 하고 Y는 다른 일행이 있다며 광장의 관객들 무리로 들어갔다. L도 뭔가를 망설이다가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하고 Y를 따라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떠나고 경찰이 내게 다가와서 여기에 앉아있으면 안 된다고 내려오라고 말했다. 그제야 나는 그녀들보다 1m는 더 높은 조형물에 앉아서 그녀들을 내려다보며 이야기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라데로에서 Y와 작별인사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 내내 마음에 걸렸으면서도 정작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는 "그래" 또는 "그렇지" 정도로만 대구를 하다니... 왜 반갑게 내려가서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나도 내가 모를 일이었다. 그녀들이 사라진 곳에서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며 불과 몇 분 전의 일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 일은 쿠바에서 가장 찝찝하고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Y는 떠나고 L이 까사 호아키나로 와서 우리는 다시 합류했다. 이날 나는 꼬히마르(Cojimar)라는 작은 어촌 마을에 가 볼 작정이었다. L은 아무 계획이 없다며 나를 따라나섰다. L은 사흘이나 더 하바나에 있을 건데 특별히 계획한 일은 없다고 했다. 이렇게 여행에 소극적이면서 장기간 여행하는 사람은 처음 본 것 같아 그것이 L의 매력이라면 매력이었다. 모든 것에 별 감흥이 없는 듯한 그녀의 무표정과 무심함까지도. L의 무계획 덕분에 나는 내가 하려고 계획했던 것을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꼬히마르로 가는 버스는 중앙 공원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광장에서 탈 수 있었다. 까삐톨리오 뒤쪽에 있는 이 작은 광장 주위로 대부분의 버스가 정차했다. 꼬히마르 가는 버스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각각 다른 정류장에서 다양한 버스가 정차했다가 떠났기 때문이었다. 길에 있는 사람들이나 정류장에서 표를 팔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엉뚱한 곳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헤매고 있는데 다행히 버스기사 한 분이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꼬히마르로 가는 버스는 시내버스 크기에 좌석만 많이 붙여놓은 좌석버스였다.   


30분쯤 지났을까... 사람들이 거의 다 내리고 얼마 남지 않았다. 기사에게 분명 꼬히마르에서 내릴 거니까 알려달라고 했는데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버스에 안내 방송도 없어서 버스 기사 말고는 의지할 데가 없었다. 기다리다가 기사에게 가서 물어보니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번에 내리라고 했다. 우리가 내린 곳에서 버스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다 내렸다. 마지막 정류장이었던 것이었다. 의심스러워 함께 내린 아줌마에게 다시 물어보니 꼬히마르가 맞단다. 우리가 내린 곳은 생각보다 번화가였고 차도 많고 노점상이나 가게도 드문드문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무슨 쇼핑몰 같은 큰 건물로 일제히 걸어갔다. 우리는 바다가 있을 것 같은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꼬히마르는 아주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정류장에서 내리면 아무것도 없고 바로 바다가 보이고 바닷가에는 선착장도 없이 작은 나무배들이 쓰러지듯 쉬고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차들과 사람들 그리고 번지르르한 집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분명 정류장에 내리면 아무것도 없다고 했는데... 


꼬히마르는 헤밍웨이의 소설「노인과 바다」의 모티브가 된 곳이며 그가 긴 시간 머물며 소설을 완성한 곳이기도 하다.「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주인공인 노인의 모델이었던 헤밍웨이의 친구가 2002년까지 살면서 여행객들에게 헤밍웨이와의 추억의 썰을 풀어주기도 했다는, 그래서 여행객들에게 유명해진 아주 작은 마을이다. 헤밍웨이의 동상과 그가 자주 갔다는 카페 외에는 볼 것이라고는 없고 할 것도 없다는 곳이었다. 


사실 나는 쿠바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곳이 바로 꼬히마르였다. 헤밍웨이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노인과 바다」는 좋아했기에, 이번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노인과 바다」를 e-book으로 다운받아 여행하는 중간중간 다시 읽었다. 소년이 노인의 집으로 달려가던 그 언덕길을 상상하며 그 길을 나도 소년처럼 달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노인의 배가 메어져 있을 법한 낡은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나가서 낚시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마을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바닷가가 있다는 곳을 향해서 한참을 걸었더니 조금은 한산해진 마을 분위기가 나왔다. 그리고 멀리 바다가 보였다. 그러나 선착장도 없었고 해변도 없는 검은 바위들 위로 험상 굿은 파도가 덮쳐대는 그런 바닷가였다. 우리는 다시 집들이 보이는 마을길을 따라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작은 신전 같은 것이 보였고 그 안에 헤밍웨이 흉상이 있었다. 그 옆에는 무슨 궁전인지 성인지 모를 오래된 건물이 보였다. 그 성안에 들어가면 뭔가 볼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동네 사람의 말을 듣고 우리는 높은 계단을 올라갔다. 어두컴컴한 실내에 박물관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사실 뭘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성의 양 옆으로 말레꼰이 길게 이어져있었다. 그늘이 없는 곳이지만 우린 그곳에 좀 앉아 쉬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대기도 했다. 성 앞에는 선착장이 있었는데 콘크리트로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 놓았다. 선착장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도 보여서 가 보았으나 선착장 위의 발판을 나무로 듬성듬성 놓아둬서 몇 걸음 걷다가 위험해서 돌아왔다. 그래도 우리는 검푸른 바다를 보며 여기가 노인이 배를 끌고 나갔을 '멕시코 해협'이라며, 멀리 보이는 배들에 혹시 '산티아고' 할아버지와 소년이 타고 있지 않을까라며「노인과 바다」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어디서 보든 역시 바다를 보는 것은 좋았다. 


우리는 점심을 먹을 겸 헤밍웨이가 자주 갔다는 그리고 소설에도 나오는 La Terraza(라 테라사)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매우 깔끔했고 약간 고급스러운 느낌이 났다. 안쪽 홀에는 헤밍웨이를 위한 영원한 예약석인 창가 자리와 그의 사진들로 벽면이 가득 차 있었다. 음식 값도 그렇게 비싸지 않아서 우리는 식사를 했다. 나는 생선요리를 주문했다. 맛은 깔끔했고 웨이터는 친절했다. 식사하고 있는데 악사들이 들어와서 음악을 연주했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연인들이 일어나 흥겨운 쿠바 특유의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어 댔다. 여자는 긴 머리를 날리며 빙글빙글 돌기도 했고 남자는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삼바인지 살사인지 어디서 본 춤인 것 같았다. 쿠바에 살사가 유명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쿠바인들도 흥이 참 많은 민족이라는 것이 다시 확인되었다. 이로써 왁자찌껄한 분위기가 되어 헤밍웨이와 함께 떠오르던 나의 문학적 감성은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동네를 조금 더 걸었다. 작은 카페도 있었고 현지인 식당도 있었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정돈된 집들과 넓은 길들이 이어졌고 청새치를 그린 벽화들도 자주 보였다. 화가들이 많이 사는지 그림을 내놓은 곳이 드문드문 보였다. 우리는 걷다가 우연히 그림을 전시해 놓은 곳이 있어서 들어가서 구경하다가 작은 그림을 하나씩 구매했다. 약간 경사진 마을길을 걷다가 혹시 이 근처에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집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두리번거리며 찾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소년처럼 뛰어올라가다가 L에게 '자중하시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한참을 깔깔거리며 웃었다. 태양이 뜨거워서 걷기에는 조금 힘든 날이었지만 우린 다행히도 걷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고 뙤약볕에 천천히 걷는 것도 좋아했다. 


그러나 아무리 걷는 것을 좋아하더라도 뙤약볕은 힘들었다. 우리는 카페를 찾아 들어갔는데 우연히 들어간 그곳은 유명한 카페인지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루프탑에서 맥주를 마시며 꼬히마르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맥주를 주문하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바다까지 탁 트인 풍경이 펼쳐졌다. 옥상에 올라가서 보니 꼬히마르는 역시 내가 생각했던 마을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헤밍웨이가 1950년대에 쓴 소설이니 당연히 그때의 마을 분위기나 바다 분위기는 남아 있지 않고 달라졌겠지. 난 무엇을 기대했던 것인지. 쓰러져가는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오두막이라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많이 실망스럽지 않았다. 지금의 꼬히마르는 그 나름대로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여행지인 것이다. 내가 상상했던 곳과 다르다고 해서, 소설의 장소와 분위기가 남아있지 않다고 해서 꼬히마르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편협한 나의 사고를 탓해야 했다. 꼬히마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촌 사람들의 삶의 변화에 따라 그에 맞는 분위기를 갖게 되었고 지금의 꼬히마르가 꼬히마르 그 자체인 것이다. 



루프탑에서 맥주를 마시고 나서는 더 이상 할 것이 없어서 우리는 다시 버스에서 내린 곳으로 돌아가 버스를 타고 조금 일찍 하바나로 돌아왔다. 하바나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꼬히마르가 정말 조용하고 아담한 동네였다는 것을... 잠시 벗어났던 하바나로 돌아오니 번잡스러운 움직임들과 도시의 소음이 정신을 어지럽혔다. 다른 나라의 대도시보다 덜 혼잡한 하바나인데도 잠시 벗어났다 돌아오니 이곳도 도시의 멋을 부려댔다.


나는 언제부턴가 몸은 생활이 편한 도시에 살면서 마음으로 지향하는 삶은 한적한 시골에서의 전원생활이 되었다. 뭔가 불일치하다는 것을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 항상 어촌 마을에서 한갓지게 낚시나 하며 세월을 보내는 것이 바람이 되었다. 꼬히마르도 어쩌면 그런 나의 로망을 잠시나마 실행할 수 있는 곳이지 않을까 했는데 너무나 단정한 동네여서 '작은 어촌 마을'을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이 좀 아쉬울 뿐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꼬히마르라는 곳을 알게 되어서 또 잠시나마 소설 속의 길들을 상상하며 걸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히마르의 바다는 그때의 그 바다와 지금의 바다가 결코 달라지지 않았기를... 노인과 소년이 물고기를 잡으러 나가던 그 바다와 다르지 않기를 나직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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