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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나 Oct 11. 2021

쿠바에 오기를 참 잘했다

쿠바 속으로 #8. Giron _히론에서의 3박 4일

바닷가 마을인 히론은 아침이 일찍 시작되는 듯했다. 나도 덩달아 7시도 안 되어서 일찍 눈이 떠졌다. 커튼 사이로 빛이 들어왔고 침대 끝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는 L은 뒤척이지도 않았는지 어젯밤에 자던 모습과 똑같았다. 안뜰로 나가니 주인아주머니가 아침을 차리고 있었다. 나는 달달한 커피를 한잔 받아 들고 어제 아저씨가 자랑하던 텃밭으로 내려가 보았다. 안뜰 바로 옆에 붙어있는 작은 텃밭에는 각종 허브들이 이슬을 머금고 있었다. 내가 노후에 살았으면 하고 꿈꾸는 집의 형태였다. 집이야 크든 작든 상관없는데 안뜰이 있고 텃밭이 있는 집에서 텃밭을 가꾸며 노년을 보내고 싶다. 이곳 히론처럼 바닷가가 가까운 마을에서. 


우리는 주인 부부가 정성껏 차려준 아침을 먹고 숙소를 옮기기 위해 짐을 싸서 나왔다. 더 머물고 싶은 집이었지만 그 방은 이미 예약이 되어 있어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더블 침대라 서로에게 불편한 것도 있었다. 우리는 '까사 모야'로 갔다. 이곳도 한국인들에게 꽤 유명한 민박집인데, 어제는 만실이었지만 오늘은 방이 하나 빈다고 해서 오늘부터는 모야네에서 묵게 되었다. 아직 체크인 시간이 멀어서 우리는 짐을 맡겨 놓고 '깔레따 부에나'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갔다. 


깔레따 부에나는 올 인클루시브가 제공되는 작은 리조트인데 가격이 15 쿡 밖에 하지 않아서 히론에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하루를 보내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스노클링이나 스쿠버 다이빙을 할 수 있고, 칵테일을 마음껏 마실 수 있으며, 점심으로 제공되는 쿠바 음식들을 무한으로 먹을 수 있다. 가성비가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버스에 타니 M과 그녀의 동행인 S가 타고 있었다. M과 S는 어떻게 보면 남매 같기도 했는데 그들은 하바나에서 동행했다가 다시 히론에서 재회하게 되었다고 했다. 물론 어디서 어떻게 만날 것인지 미리 약속을 하고, S는 이틀 전에 히론에 왔다고 했다. 그들과 우리는 자연스레 합류했고, 버스 뒤쪽에 앉아있던 연인으로 보이는 한국인 커플과도 합류하게 되었다. 쿠바에선 신기하게도 한국 사람들과 동행하는 일이 아주 쉽게 일어났다. 아무래도 아날로그 세상이라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려고 자주 소통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았다. 또 한국인들에게 쿠바 여행이 유행처럼 번진 시기라서 한국 사람들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그 커플은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부부나 마찬가지로 보였다. 둘은 2개월 동안 남미만 배낭여행하기 위해 왔는데 멕시코를 거쳐 쿠바까지 3주가 걸렸다고 했다. 아무래도 여행기간이 더 늘어날 것 같다며 두 사람은 행복하게 웃었다.


10시쯤에 버스는 깔레따 부에나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만난 커플은 스쿠버 다이빙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곳이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스쿠버 다이빙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며, 같이 할 것을 적극 추천했다. 그들은 무슨 레벨인지 자격증인지를 따기 위해 또는 즐기기 위해 스쿠버 다이빙이 가능한 곳에서는 거의 다 경험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들의 열띤 권유로 우리 넷은 미어캣처럼 그들의 말을 듣고 있다가 결국은 모두 다 함께 스쿠버 다이빙을 하기로 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할 수 있는 35 쿡(35 USD)이라는 가격은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싼 것일 거라며 장담했다.



나는 수영을 못해서 무척이나 걱정이었지만, 다이빙 강사가 함께 들어가서 끌어줄 것이기 때문에 수영 실력은 상관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고무 슈트로 갈아입고 산소통을 등에 메고 물속으로 차례차례 뛰어들었다. 가장 겁을 먹고 수영을 못하는 나와 L에게 강사들이 한 명씩 붙어서 팔을 잡고 끌어주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의 강사가 M과 S를 케어했다. 커플은 스쿠버 다이빙 레벨(?)이 높기 때문에 따로 강사가 붙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조금 멀리 가고 싶어 했는데 거긴 배를 타고 가야 해서 가격이 더 비싸다고 했다. 우리는 리조트에 붙어있는 큰 어항 같은 바닷속만 구경할 수 있는 것이었다. 


스쿠버 다이빙 강사가 팔짱을 굳게 끼고 이끌어 주었지만 바닷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다. 조금만 아래로 내려가려 해도 공기압 때문에 귀가 아파서 몇 번이나 실패를 했다. 물속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수신호에 대해서도 교육을 받았는데, 쉬워 보였으나 물속에서 당황해서 잊어먹고 몇 번이나 실수했다. 특히 좋아서 엄지척을 했더니 강사가 나를 끌고 다시 물 위로 쏜살같이 올라갔다. 어렵게 아래로 내려갔는데 수신호 하나로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도 화내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이끌어주었던 그 강사 덕분에 나는 비교적 깊은 곳까지 내려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TV 화면으로만 보던 산호초와 떼를 지어 다니는 무늬가 예쁜 작은 물고기들도 보았고, 특히 사람 얼굴만 한 살아서 움직이는 킹크랩을 보았다. 잡아가고 싶었지만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서 어획하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 


쿠바 바다에서 생애 처음으로 바닷속 세상을 본 것만으로도 내게 아주 값진 경험이었다. 바닷속 세상은 생각보다 아름다웠고 포근했다. 침착하고 인내심이 많은 강사 덕분에 그곳에서 갈 수 있는 최대치까지 다 가보고 둘러보고 올라왔다. 바닷속에서 가끔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궁금해서 돌아보기도 했는데, L은 결국 바닷속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물 위에서 구조대원에게 구조당하는 모습으로 끌려다니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한 번도 물 밑으로 내려가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 외의 친구들은 다행히도 그런대로 잘 즐겼다고 했다. 


스쿠버 다이빙을 마치고 우리는 칵테일을 마시며 썬배드에 누워 쉬었다. 칵테일은 작은 일회용 컵에 제공되었는데 나는 종류별로 다 마셔보고 나중엔 그중에서 가장 나은 쿠바리브레와 모히또만 집중적으로 마셔댔다. 내가 몇 잔이나 마셨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폐장 시간까지 줄기차기 마셨다. 물론 중간에 점심 식사도 했지만 맛은 모두 그저 그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요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가운데 그나마 닭고기는 맛있었다. 


4시 반에 마지막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모야 아저씨네에서도 랑고스타 요리로 저녁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모두 다 같이 저녁을 예약하고 저녁 식사 시간에 다시 모이기로 했다. 그 사이 L과 나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해변으로 갔다. 어두워지기 전, 노을이 깔리고 있는 코코 해변에 도착하니 바다로 넘어가는 해넘이가 장관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해변에 앉아 일몰을 바라보았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모인 우리는 큰 테이블 두 개중에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았다. 모야네에는 마당 옆에 별도로 식당으로 만들어둔 공간이 있었는데, 보통 여행객들에게 저녁 식사를 판다고 했다. 우리 외에도 옆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한국인들이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는데 사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건배하며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쳤으나 크리스마스트리도 음악도 없는 한 여름밤의 크리스마스라서 전혀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사실 나에게 크리스마스가 중요한 것도 아니었으니 분위기가 그래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여느 날처럼 그날도 우린 먹고 마시고 떠들며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에 혼자 자전거를 타고 동네 산책을 나갔다. 비포장 골목길이 많아서 자전거 타기가 좀 힘들었지만 작고 아담한 이 바닷가 마을이 참 마음에 들었다. 다른 동네와 다르게 문을 열어 놓은 집들이 많았고 가게에 철망을 쳐 놓지도 않았다. 사람들도 많이 보이지 않았으나 가끔 보이는 사람들이 인사를 해주기도, 아니면 그냥 모르 척 지나치기도 했다. 마을을 둘러보며 한 달 살기 하기에 딱 좋은 마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먹고 딱히 할 일이 없었지만 심심하지 않았다. L은 빨래를 했고 나는 마당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아침부터 더웠기 때문에 오전에 맥주를 마셔도 전혀 양심에 가책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제 밤늦게까지 시끄럽게 춤추며 놀던 옆방의 사람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기에 신경 쓰이는 시선들도 없었다. 더군다나 쿠바에서만 마실 수 있는 쿠바 맥주가 매력적인 맛이 났다. 쿠바에서도 구하기 어렵다는 '부카네로' 맥주가 모야 아저씨의 냉장고에 잔뜩 쟁여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수시로, 틈 나는 대로 마셔주었다. 



L이 빨래를 끝내고 우리는 코코 해변으로 향했다. 해변 가는 길에 버스터미널(사실 터미널이라기보다 정류장 같은 곳이었다.)에 가서 내일 하바나로 떠나는 버스를 예약하러 들렀다. 그러나 무슨 버스 파업인지 뭔지 때문에 오늘은 아예 버스가 없고 내일도 버스가 떠날지 확실히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예약자가 너무 많아서 버스표를 구하기도 힘들 거라고 했다. 나는 버스표를 미리 샀기 때문에 명단 확인만 하면 되었는데, L은 예매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이때부터 예약 명단에 L의 이름을 올리기 위해 우린 틈나는 대로 버스 사무실에 들렀다. 그러나 버스 사무실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에 문이 닫혀 있었다. 


코코 해변은 마을에서 멀지 않았지만 걸어가려면 한참이 걸려서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갔다. L은 걷는 것이 더 편하다며 걸어갔다. 해변에는 이미 사람들이 해수욕이며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해변은 그렇게 깨끗하진 않았지만 바닷물은 정말 맑았다. 우린 썬배드를 빌려 야자나무 아래 누워서 책도 읽고 낮잠도 자고, 맥주도 마시고, 점심도 해변의 매점에서 파는 생선구이를 먹으며 하루 종일 해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수영을 즐길 수 있다면 분명히 수영을 했을 텐데 우린 둘 다 물속에 들어가는 것보다 그저 바라보는 것을 더 좋아해서 한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느끼며 야자나무 아래서 그 어느 때보다 꿀맛 같은 휴식을 했다. 유명한 휴양지의 고급 리조트보다 훨씬 좋았다. 썬배드에 누워 바다를 보면서 쿠바에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변의 그늘에 누워서 책을 읽다 문득, 매일의 일상이 이렇게 바다나 바라보며 베짱이처럼 놀고먹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된다면 휴식의 달콤함이나 감사함을 느낄 수 없겠지. 매일이 이렇게 한가롭고 평화롭기만 하다면 아무래도 삶이 식상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나는 가능하다면 한가롭게, 느리게 살고 싶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이제 바쁘게 살지 말라고 느리게 살기를 권장하지 않는가!


우리는 버스표를 알아보기 위해 또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를 뜨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썬배드에 눕거나 앉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어제 함께했던 일행들이 궁금해져 잠시 M의 숙소로 가보기로 했다. 그녀는 오늘 떠난다고 했지만 버스가 없으니 가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M과 S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아무래도 올드카 택시를 타고 하바나로 갔을 가능성이 컸다. 미처 작별인사도 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해변으로 다시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었는데 그 맛이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모든 것에 별로 반응을 하지 않던 L까지도 한껏 입꼬리를 올린 채로 감탄하며 맛있게 먹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물고 동네 길을 걸어 다녔다. 그렇게 어슬렁 거리며 동네를 배회하다 오후 5시쯤에 혹시 나하고 버스 사무실에 다시 들렀는데, 계속 닫혀있던 문이 무슨 마술처럼 열려있었고 직원이 떡하니 앉아 있었다. 다행히 L은 예약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버스 예약을 하고 나오니 정류장 앞에 아까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비하니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이곳이 와이파이존이었는데, 아무래도 저녁 시간대가 되니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었다. 이런 풍경은 쿠바 곳곳에서 저녁에 볼 수 있는데 쿠바만의 저녁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린 다시 코코 해변으로 갔다. 일몰을 보기 위해서였다. 대단하진 않지만 고즈넉하고 포근한 분위기가 좋아서 매일매일 봐도 질리지 않을 풍경이었다. 그리고 일몰의 노을은 어제와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 엄마와 아이가 손을 잡고 해변을 걷고 있었다. 한가롭고 따뜻한 풍경이 내 마음까지 따스하게 물들였다. 노을 지는 해변을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감성이 올라오게 만든다.  


그렇게 어제와 같은 하루가 저물었고, 저녁에는 어김없이 또 몇몇의 여행객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여행 이야기며 삶의 이야기를 하면서 밤 시간을 보냈다. 크리스마스 밤이어서 우리는 그냥 자기 아쉬운 마음에 술집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10시도 안된 시간에 이미 거리는 너무 캄캄했고 문을 연 식당이나 카페를 찾지 못했다. 쿠바에서 크리스마스는 나에게만큼이나 의미가 없는 것인가 싶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다시 여유롭게 한적한 길을 걸으며 산책을 하고 버스 정류장 옆의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또 아이스크림을 물고 동네를 거닐었다. 모야네 마당에서 한가롭게 피자에 맥주를 먹으며 점심을 때웠다. 그리고 우리는 3박 4일간의 히론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짐을 정리했다. 오후에 배낭을 메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을 걷는데 그 어떤 곳에서도 느껴보지 않았던 너무나 큰 아쉬움이 밀려왔다. 더 이상 이 길을 한갓지게 슬리퍼나 끌면서 아이스크림을 물고 어슬렁거리며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슬펐다. 


한적한 마을에서 한가롭고 여유롭게 굳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들은 이후에도 나에게 가장 그리운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히론에서의 며칠간의 삶처럼 꾸미지 않고, 단순하고 한가롭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주 단순한 의식주 생활만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게 만들어주었던 것은 그곳의 풍경과 삶의 분위기, 곁에서 아무래도 좋다며 함께해주었던 L이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한 줄의 시구 덕분에 더 여유로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윤도현 시인의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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